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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미술로 보는 세상] "거울아, 거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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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화가들은 대상을 비추는 도구인 거울을 자주 그림 제재로써 사용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그려 '결혼의 증인'으로 삼으며 서양 회화사에서 거울이 가지는 효과를 처음으로 일군 작품은 '아르놀피니의 결혼'(1434)이며, 얀 반 에이크(1395~1441)가 그렸다. 중앙 거울 속에 화가 자신을 매우 작지만, 세밀하게 그려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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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놀피니의 결혼'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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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놀피니의 결혼' 거울 확대 부분



이 작품이 '불후'로 인정되는 이유를 여러 페이지로 쓸 수 있지만, 한 문장으로 간추리면, 그림 속에 당대의 인물과 풍속, 종교는 물론 갖가지 상징을 쏟아 넣었다는 점이다. 사회적 욕망이다.

16세기 플랑드르 화가인 캉탱 마시(퀸텐 마시스. 1466~1530)가 그린 '환전상'(1514)에는 실제와 은유가 묘하게 결합해 있다. 기도서를 제치고 남편이 번 돈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부인 모습에서 신앙보다 물질이 앞서던 당대 풍속을 노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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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전상'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앞쪽에 놓인 거울은 그림 속 주인공이 아닌 바깥 풍경과 인물을 비춘다. 더 넓은 세계를 지시하는 '확장'을 의미하는지, 세태를 돌아보는 '반성'을 뜻하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물질적 욕망이다.

거울은 아니지만, 주인공을 비추는 모습을 그려 뚜렷하게 각인시킨 작품을 남긴 이는 카라바지오(1571~1610)다.

신화 인물인 '나르키소스'(1599)를 그렸는데, 이보다 강렬한 '나르키소스'는 없다. 심리적 욕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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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키소스'
로마 고대 국립 미술관 소장



거울과 거울에 비친 장면 덕에 미술사에서나 철학적으로나 쉼 없이 분석 및 해석되는 그림은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가 그린 '라스 메니나스'(1656)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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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 메니나스'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소장



대형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벨라스케스 주위엔 마르가리타 공주와 시녀 및 시종들이 모여 있다. 작은 거울에 펠리페 4세 부부가 비쳐 있는데, 그림을 감상하는 '현재의 우리'와 벨라스케스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림 주체와 객체가 엉켜버린다.

그림을 감상하는 '현재의 우리' 자리엔 거울 속 국왕 부부가 서 있다. 그림을 그리다 밖을 쳐다보는 벨라스케스 시점은 국왕 부부임과 동시에 '현재의 우리'다.

이 작품에 크게 감흥 받은 피카소는 40점 이상 모방해 그렸으며,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자인 미셸 푸코는 '서구 인식론 근거를 흔드는 전복적 사유의 출현'이라고 분석했다. 권력 욕망이다.

벨라스케스는 거울을 이용해 누드화도 그렸다. '거울을 보는 비너스'(1651)다. 제목만 보면, 신화를 그린 것이지만 실제로는 그가 이탈리아 유학 시절에 그녀 애인을 그린 작품이다. 성적 욕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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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보는 비너스'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대륙을 뛰어넘어 성적 욕망을 농밀하게 거울에 투영시킨 작품은 일본 에도시대 풍속화인 '우키요에' 미인화 대가인 기타가와 우타마로(1753~1806)가 그린 '머리를 매만지는 여인'(1793)이다.

정성 들여 치장하는 이 여성은 유곽 기녀로도 해석할 수 있는데, 남성 종속적이던 당대 일본 여성 풍속과 복장을 잘 드러낸다. 성적 욕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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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매만지는 여인'
뉴욕 공립도서관 소장




인상주의 대표 화가 에드가르 드가(1834~1917)가 그린 거울 속 여인은 기괴한 느낌을 준다. '거울 앞의 장토 부인'(1875)이다.

잔뜩 차려입은 여자를 비춘 거울 속 여인은 다른 인물 같다. '대칭'이 아니라 '대비'다. 하얀 피부 여인을 검게 칠하며, 내면의 갈등이나 단절을 표현한 듯하다. 실제와 가상이 부딪히는 상징으로, 시대 욕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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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앞의 장토 부인'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거울을 수단으로 미와 추, 현실과 환영, 내면과 외면을 표현한 여러 그림을 찾아보며, 각각 사회적 욕망, 물질적 욕망, 심리적 욕망, 권력과 성적 욕망, 시대 욕망 등으로 열거해 봤다.

이렇게 규정하고 보니 억지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후세의 평가다. 그 의도와 답은 화가만이 알 것이다.

다만 하나는 확실하다. 화가의 손과 머리와 가슴은 동시대 역사적 조건과 철학적 사유를 뛰어넘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욕망을 떠날 수 없는 인간은 시대를 벗어날 수도 없다.

doh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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