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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4 (월)

"'서울의 봄' 정해인 실제 인물 김오랑, 참군인으로 교재 돼야"[한판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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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랑, 어린 시절부터 불의에 타협하지 않아

특전사 홈페이지, 어디에도 김오랑 기록 없어

추모비 건립 요구 중이나 아직 정부 응답 없어

12.12 김오랑 추모식, 덕분에 열기 뜨거울 듯

CBS 박재홍의 한판승부
■ 방송 :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 FM 98.1 (18:00~19:30)
■ 진행 : 박재홍 아나운서
■ 패널 : 진중권 작가, 김성회 소장
■ 대담 : 김준철 참군인 김오랑 추모사업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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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박재홍> 12.12 사태를 조명한 영화 '서울의 봄'이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죠. 지금 500만을 돌파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는데 저도 그래서 보고 오늘 방송을 준비했습니다. 너무나 익숙해서 모두들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또 그날 자신의 자리를 지켰던 우리 군인들의 삶을 또 새롭게 조명한 것이 눈에 띄고 큰 호평의 요인이기도 합니다.

영화 속에서 배우 정해인 씨가 연기를 했던 오진호 소령의 실제 모델이죠. 당시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비서실장으로 쿠데타 세력과 끝까지 맞서다 전사했던 김오랑 소령. 그 명예회복을 위해서 오랜 시간 노력하신 분을 모셨습니다. 김오랑추모사업회 김준철 사무처장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 김준철> 반갑습니다.

◇ 박재홍> 우리 사무처장님도 특전사 대위 출신이시죠?

◆ 김준철> 학군 28기로 특전사 대위 출신입니다.

◇ 박재홍> 목소리가 벌써 자부심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 진중권> 공중강하 이런 거 다 하셨겠네요?

◆ 김준철> 오브 코스. (Of Course)

◇ 박재홍> 오브 코스, 물론이다라는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웃음) 대위로 전역하시고 직장생활하시면서 대한군인기념사업회 회장도 맡고 계시죠?

◆ 김준철> 네. 전역할 때 제가 무릎을 다쳐서 특전사 있을 때 1990년 초에 스키교육이 부활을 해서 제가 스키를 잘 타지를 못 하더라고요.

◇ 박재홍> 스키?

◆ 김준철> 네, 스키. 그래서 무릎을 다쳐서 상이로 전역했고 그 이후에 뭔가 이렇게 부족한 게 있다라고 생각이 들어서 군 자살자, 의문사 유가족을 돕는 활동을 하는 게 아마 김오랑 사업하고 연결고리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대개 전역을 하시면 비상기획관이라든지 그런 활동을 통해서 살게 되는데 우리 또 사무처장님은 그런 의문사라든지 그런 것에 좀 어떻게 매진을 하시게 되셨어요?

◆ 김준철> 다른 특별한 이유보다는 아마 개인적인 성격 같아요. 성격이 아마도 시골에서 자라면서 우리 할머니 손에 자라고 했던 것 때문에 아마 어려운 게 있으면 조금 눈이 더 가고 그런 것 같아요.

◇ 박재홍> 그렇군요. 영화 '서울의 봄'이 또 우리 사무처장님 오랜 시간 활동해 온 것을 조명하기도 했기 때문에 영화 어떻게 보셨어요?

◆ 김준철> 영화를 제가 3번 봤습니다.

◇ 박재홍> 3번 보셨어요?

◆ 김준철> 3번 봤는데 첫 번째는 22일 상영 전에. 16일 시사회, VIP 시사회라고 했는데 좀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전부 다 제한구역으로 저희를 초청을 해서 제작사하고 배급사가 회의를 했던 모양 같아요. 아마 저를 초청하기가 좀 부담스러웠던 모양입니다.

◇ 박재홍> 그래요?

◆ 김준철> 내용을 알면 혹시라도 팩트와 다르다라는 이유 때문에 행여 그런 부분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가니까 정중하게 감독님이 소개도 해 주시고 그다음에 배우들 불러가지고 인사도 시키고 그렇게 대우받고 시사회 시작하기 전에도 별도로 멘트를 또 하더라고요. 시사회 상영하는 데는 영화배우들만 참여 했던 배우들만 객석에 앉아 있는데 '여기에는 12.12 당시에 이 영화에 두 명이 사망하는 걸로 나오는데 그 사망한 장병의 장병 측 가족들이 와 있습니다'라고 하고 또 무대를 비워주면서도 와서 또 90도로 감독님이 인사까지 하니까 혹 그냥 당황했습니다, 사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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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홍> 영화 내용에 우리 김성회 소장님 할아버지가?

◆ 김성회> 엑스트라로 등장하십니다.

◇ 박재홍> 엑스트라로 등장하세요?

◆ 김성회> 저희 외할아버지가 그 당시 군수참모부장이셨는데 이제 장태완 장군이 싸우자고 할 때 인사참모부장했던 참모소장이 '이거 세밀하게 준비된 쿠데타인데 어려울 것 같다'라는 얘기했을 때 '아니, 그래도 국민 세금받고 하는 국민의 군대가 숨어만 있으면 되냐. 싸워야 된다' 장태완 장군한테 싸우자라고 찬성을 했다고 장태완 장군이 말씀하신 수기를 읽어봤고 저희 할아버님은 저한테 따로 말씀을 안 해 주셔서 저도 책에서만 읽었습니다.

◇ 박재홍> 그러셨군요.

◆ 김성회> 뒤에 엑스트라로 한 장면 나오신다고. 보니까 사진은 있더라고요.

◇ 박재홍> 사진으로. 사무처장님 그래서 영화 실제로 보고 나시니까 어떠셨어요? 정해인 씨가 김오랑 당시에는 소령이었고 중령이 되셨는데.

◆ 김준철> 처음에 볼 때는 분석이 들어가더라고요. 그리고 또 맨 앞에 배치를 해서 한눈에 안 들어오니까 사실은 팩트와 영화 차이가 있는지를 분석하다 보니까 몰입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면이 있었고 두 번째, 세 번째를 볼 때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더라고요, 교전 장면에서. 그래서 두 번째에도 지인, 세 번째에도 지인이었는데 세 번째 지인은 유승민 씨하고 같이 영화를 봤었죠.

◇ 박재홍> 유승민 씨면 유승민 전 의원과 보셨던 건가요?

◆ 김준철> 네.

◇ 박재홍> 유승민 전 의원과는 또 어떤 인연이 있으셨던 겁니까?

◆ 김준철> 유승민 전 의원은 사실은 17대, 18대, 19대 3회기 동안 제가 훈장하고 추모비를 건립해 달라라는 건의안을 제출했는데 그때 유승민 의원이 17대, 18대 때는 본인이 크게 역할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19대 때는 또 용케 국방위원장을 맡으셨어요. 그래서 접촉을 하니까 유승민 의원이 장문의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본인도 12.12 당시에 수방사 본진 헤드쿼터에 있는 33단의 일병으로 근무를 했다' 이거죠. 그래서 그 당시 기억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본인이 17, 18대 때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었는데 19대 때 본인도 국방위원장이고 하니까 할 수 있는 역할을 최대한 다하겠다'라고 해서 그 글에 상당히 진정성이 묻어 있었고 해서 깊이 두고 있었고.

이후에 그 과정의 활동이라든지 그다음에 김오랑 평전을 써서 법안 통과의 수단으로 활용할 때도 전달해 드리면서 이후에도 어떤 상징적인 패를 한 두 차례 정도 더 전달했죠. 그래서 법안 통과 과정을 소위 영상으로 봤는데 인간적으로 정치적인 부분은 모르겠는데 유승민이라는 의원한테 사실은 아주 감사했던 장면이 영상에 보이더라고요. 김종태 기무사령관 출신의 의원하고 그다음에 김성찬 육군참모총장 출신의 의원이 당시에 한나라당 의원이었는데 그 두 분이 아주 부정적인 입장에서 언급을 했는데 그걸 용케 피해 가더라고요.

◇ 박재홍> 지금 말씀하신 건 고 김오령 중령 무공훈장추서 및 추모비 건립 촉구 결의안 추진 당시에 걸린 과정을 말씀하신 거고 그때 그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통과되는 데 유승민 전 의원, 당시 국방위원이 큰 역할을 해 주셨다?

◆ 김준철> 맞습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이제 김오랑 당시 소령 이 얘기를 좀 해 보면 사실 신군부에 저항을 하는 것은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어 보였고. 영화를 봐도 투항 권유도 있지 않았습니까? 끝까지 김오랑 당시 소령이 자신의 자리를 지켰던 이유는 뭐였을까요?

◆ 김준철> 그게 제가 책을 14년 전에 준비하면서.

◇ 박재홍> 김오랑 평전.

◆ 김준철> 고향의 지인분들 선후배 그다음에 같이 당시에 또 김오랑 소령이 재수를 했는데 재수를 같이 했던 친구분하고 만나보니까 이러저러한 애피소드가 있더라고요. 성격이 조금은 우리 진중권 교수님하고 비슷하지 않을까. '아니라면 아니다' 그래서 체구가 크지도 않았는데 김해 시내에서 양아치들하고 1대 몇으로 붙어도 본인이 맞아도 물러서지 않는 그런 부분이 좀 심했다 이거죠. 그래서 그런 성격에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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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500만 돌파(?) (서울=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12·12 군사반란을 소재로 한 김성수 감독의 영화 '서울의 봄'이 손익분기점(460만명)을 넘어 누적 관객 수 500만명 돌파를 앞둔 5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영화관 '서울의봄' 포스터가 모니터에 표시돼 있다. 2023.12.5 seephoto@yna.co.kr (끝)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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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홍> 타협하지 않는다? 자신의 소신이 있으면 아무리 맞을지라도 자기가 끝끝내 소신을 굽히지 않는.

◆ 김준철> 그리고 작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육사에서 기록돼 있는 거 보면 태권도라든지 유도에 또 상당히 유단자라고 돼 있더라고요, 기술이 돼 있더라고요.

◆ 진중권> 애초에 어떻게 김오랑 소령 이분을 갖다 기려야겠다, 이분의 평전을 내야겠다. 어떻게 인연이 닿은 건가요? 계기가.

◆ 김준철> 혈연, 지연 같은 그런 건 없습니다. 뒤에 그런 질문을 하면 저도 특전사 나왔다라는 걸로 하는데 그건 이유가 안 됐고 제가 특전사 있을 때도 몰랐고. 지금 특전사 인연들도 모릅니다, 김오랑 소령을. 김오랑 중령에 대한 기록은 특전사 홈페이지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고 물론 이런저런 기록이 '특전사의 영웅'이라 그래서 많은 게 언급이 돼 있는데 거기에도 김오랑 중령은 빠져 있습니다.

제가 참여한 거는 우연하게, 우연하게 그러니까 한 19년 정도 전에 광주의 시민단체에서 김오랑 추모회를 하고 싶다라고 해서 활동하는 걸 제가 봤습니다. 그래서 그 활동에 제가 후원금을 냈는데 그 후원금이 아까워서 두 달 후에 그 광주 시민단체에서 김해도 가고 서울 현충원에도 왔는데 광주에 있다 보니까 활동이 제한적이다 이거죠. 그래서 두 달 만에 그 조직이 광주에서는 하기 힘들다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러면 서울에 있는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했던 게 그게 시작입니다.

◇ 박재홍> 사무처장님도 대단하신 분이네요. 그렇죠?

◆ 김준철> 그럴까요?

◇ 박재홍> 그런데 김오랑 중령 보면 육사 25기고 베트남전 참전, 특전사 사령관 비서실장. 사실 당시 육사 출신이면 완전 엘리트 코스고 출세가 보장된 분이었고 당시 신군부에 가담했던 장교와 절친한 사이로 묘사됩니다. 박종규 중령이 모델이라고 하는데 실제 또 부부끼리 만남 가질 정도로 친했던 사이라고?

◆ 진중권> 왜 갈린 거예요? 그냥?

◆ 김준철> 친한 정도는 친하고 절친이라는 거는 주관적이니까. 그리고 별도로 그 두 분만 친하지 않다 하더라도 특전사라든지 다른 여타의 조직에서 육사 인원들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영화에서는 1기수 선배라고 나왔는데 실제로는 2기수 앞선 23기. 김오랑은 25기 선배고 박종규 중령은 그 사건이 있기 6일 전에 보직을 3공수 15대대로 보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앞에는 단절돼 있고 그전에는 또 같은 부대 생활을 같이 동 부대에서 하지 않았었지만 지인으로서 알고 있었고 사고 당시에는 박종규 중령은 비호아파트.

◇ 박재홍> 군인 아파트.

◆ 김준철> 김오랑 소령은 사자아파트. 사령부는 사자가 로고고 3공수는 비호, 비호가 로고다 보니까 아파트 명칭도 그렇게 달라지는데 어차피 같은 울타리에 같이 있습니다.

◇ 박재홍> 그러니까 가까웠던 건 맞고.

◆ 진중권> 그러니까 박종규 중령은 그 당시 그때 어떤 역할을 했나요? 그 거사에서.

◆ 김준철> 박종규 중령은 15대대장을 보임을 받고 나서 정확하게 한 6일 만에 사건이 있었는데 역할은 최세창 중령이, 명령을 내릴 만한 사람은 또 역시 육사 출신밖에 없죠.

◇ 박재홍> 최세창 중령이라 함은?

◆ 김준철> 최세창 준장. 명령을 내릴 건 육사 출신밖에 없으니까 최세창 준장이 박 중령을 불러서 '지금 상황이 이렇다. 그래서 네가 사령관을 체포해 와야겠다'라고 명령을 내린 거죠.

◇ 박재홍> 특전사 사령관을.

◆ 김준철> 그래서 3공수하고 특전사는 부지가 꽤 넓은데 지금은 경기도 이천으로 이전을 했지만 그 당시에는 송파 거여동에 있었고요. 15대대에서 사령부 본청까지는 좀 멉니다, 한 1km 정도. 그 거리를 병력들이 47명이 이동하고 그다음에 2층에 올라갈 때는 10명의 대원들이 2층으로 사령관실로 올라갔던 거죠.

◆ 김성회> 그 과정에서 어떠한 저항 같은 건 없었던 건가요?

◆ 김준철> 네, 저항 같은 건 없었고. 지금 이야기하기는 거기에 짧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 그거 이야기하면 너무 길어질 것 같으니까 그래서 저항은 없었고 1층에 통과할 때도 인사처장이, 인사처장 같은 경우는 그때는 대령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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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홍> 특전사 인사처장.

◆ 김준철> 박종규 중령은 중령이니까 대령이 누구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냥 친한 척 인사하는 소리를 들었다라고 하는데 박종규 중령이 이야기하는 중에 나왔고 전혀 제지는 없었고 바로 2층으로 사령관실로 올라갔다 이거죠.

◆ 김성회> 그렇게 되면 거꾸로 말하면 다른 사람들 다 저항을 안 하는데 김오랑 당시 소령만 저항을 하면서 결국은 교전이 있었다는 그런 이야기네요.

◆ 김준철> 네. 김오랑 소령의 역할이 당시 쿠데타가 발생하자마자 일련의 과정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이게 정확하게 이 상황을 직시하고 있었다, 이거죠. 알고 있었고 이 상황을 부분부분 알고 있던 특전사 상황반, 3층에 있었는데 상황반에 있던 이름은 거명하기 힘든데 상황실장으로 있던 육사 출신 중령이 있습니다. 중령이 있고 또 당시 작전처장으로 있던 신 모 대령. 이분은 그날 준장으로 진급을 했는데 이분은 7공수 여단장으로 부임해서 이후에 7공수가 광주민주화운동을 촉발하는 그 계기가 되는 그 당사자인 신 모 대령이 작전 처장으로 있었죠.

그런데 이분들은 그때 재판 기록에 보면 '총소리 때문에 기겁을 해서 캐비넷 밑으로 숨고 책상 밑으로 숨었다' 그래서 '왜 사령관이 체포됐는데 구조할 노력을 하지 않았느냐?' '내 임무가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게 재판 기록에 그대로, 진술 기록에 그대로 노출돼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걸 보니까 참으로 이렇게 인간적으로 '이게 군인인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 박재홍> 그래서 당시에 신군부가 수도경비사령관 그리고 특전사사령관 그리고 헌병단장 이 세 분을 통제하는 게 제일 중요했고 당시 다 특전사사령관을 체포하러 당시 박종규 중령을 10여 명의 공습부대원이 같이 가서 특전사사령관을 연행하려 했고 당시 특전사사령관의 비서실장이었던 김오랑 소령이 맞서싸웠던 겁니다. 목격자들의 진술은 사무처장님께서 인터뷰 통해서 많이 하셨는데 당시 김오랑 소령이 응급처치만 빨랐어도 살 수도 있었다, 이런 얘기가 나와요?

◆ 김준철> 그거 그런 이야기는 저도 봤는데 쉽진 않지 않겠느냐. 6발 맞았고.

◇ 박재홍> 6발 맞았죠. 목도 맞고 배에도 맞았었고.

◆ 김준철> 그래서 그 상황으로 의무대가 후문에 있는데 후문의 의무대까지 이동을 했다가 다시 외곽으로 빠졌다가 그다음에 사망이 확인된 걸 확인하고 나서 사령부 뒷산에 24인용 텐트에 일단 안치를 했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다음에 가족들이 오고. 그래서 당시에 그 군의관하고도 만났는데 군의관은 또 아침에 출근하니까 바닥에 혈흔은 있는데 그때는 벌써 시신은 이동을 했더라라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조 모 군의관으로 알고 있습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당시에 그러면 위생병이라든지 어떤 응급조치를 위한 조치가 전혀 없었던 거죠.

◆ 김준철> 일단 아마 그 사령부의 병력들이 당시 이동한다고 그러면 의무대라고 생각하니까 의무대로 옮겼다가 살아 있든 사망했든 옮겼다가 여기에 두기는 뭐 하다라고 해서 아마 약간 한 단계 높은 데에서 판단을 했겠죠. 그래서 아마 외곽에 바깥쪽에 일반 병원으로 이동했다가 사망이 확인된 이후에 사령부 본청 뒤에 있는 야산으로 이동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 김성회> 이게 그 당시에는 어쨌거나 김오랑 소령이 반란군을 상대로 해서 교전을 한 건데 조금 지나면 전두환이가 역사적으로는 대통령이 되고 정권을 잡는 과정이 있었으니까 이 가족들이 오히려 김오랑 소령이 반란군처럼 혹시 됐는지. 가족들은 또 그 뒤에 어떻게 됐는지 좀 궁금하거든요.

◆ 진중권> 쿠데타에 반대한 세력들 있지 않습니까, 그밖에도.

◆ 김준철> 일단 가족하고 또 반대했던 세력들, 반대했던 세력들을 이야기를 하면 그 스토리가 너무 기니까. 22명이 전두환, 노태우 그다음에 관련 당사자 16명을 상대로 고소, 고발한 인원이 22명입니다. 정승화 총장을 포함해서. 이 인원이 본인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 모이고 어떻게 하겠다는 이런 걸 할 때는 사실은 광주 청문회 전에는 인근 남한산성 아래쪽 백숙집에서 모이고 숨어서 했는데 그나마 광주 청문회 이후에는 육군 회관에서 회의를 하는 상황이었죠.

◇ 박재홍> 그러니까 당시에는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걸어야 되는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고.

◆ 김준철> 김오랑 배우자는 많이들 알고 있는데 배우자는 육대 다닐 때부터 눈이 많이 나빴다 그러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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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홍> 백영옥 여사인데 원래 시각장애가 좀 있으셨다. 원래 간호사 일도 하셨다고.

◆ 김준철> 아니요. 그렇지는 않아요.

◇ 박재홍> 간호사 아니었어요?

◆ 김준철> 신학대학에, 부산에 있는 신학대학에도 갔었고. 그래서 고등학교 때도 그렇고 명문고등학교라 그러더라고요. 고등학교 때도 시라든지 그런 걸 잘 썼는데 이런 질문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이분이 의외로 정치적인 대화가 되고 해서 어떤 판사분하고도 말이 된다 이거죠.

◇ 박재홍> 대화가 된다.

◆ 김준철> 그래서 꼬마 민주당 할 때도 김정길 그다음에 노무현. 노무현 대통령은 그때 가방 들고 다니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러더라고요. 그다음에 장기욱 변호사 통해서 소송을 제기하려고 하던 시점에 꼬마민주당에 여성이고 그다음에 지금 민주화 시대에 걸맞는 사람이 누구냐 해 보니까 백영옥 여사가 적격이라 그래서 그분을 사실 정치에 영입을 하려고 했는데 눈이 안 보이니까.

그런데 대화를 해 보니까 그때 이야기를 전하는 김정길 씨도 그분 대화가 장난이 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예를 들어서 진 교수님같이 강하게 이야기 한다는 것도 그런 차원의 이야기도 아니고 이야기가 색깔 있고 맛이 있다 이거죠. 그리고 그 이후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김대중 대통령하고 90년도에 한광옥 실장이 이렇게 추천해서 독대를 하는데 이야기를 해 보니까 김대중 대통령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수준이 만만치 않다 이거죠. 그래서 그게 아마 그 이전에 학창시절에 시를 쓰고 문학을 했던 소녀였기 때문에.

◇ 박재홍> 지성인이셨다.

◆ 김준철> 맞아요.

◇ 박재홍> 그렇군요. 김오랑 소령뿐 아니라 쿠데타 맞섰던 분들 중에 가족들이 많이 시련을 겪지 않았습니까? 그럼 나중에 그 백 여사님은 어떻게 되셨죠? 많이 어렵게 사셨다고 들었는데.

◆ 김준철> 그렇죠. 사시기는 금전적인 부분은 그렇게 어렵게 살지는 않았습니다. 90년에 요구를 해서 다행히 중령 추서가 됐고 중령 추서는 사실은 인사법상 계급 추서는 그 조항이 없어서 추서는 어렵고요. 그런데 추서가 됐고 1991년도에 4층 건물에서 떨어져서 사망했다고 하는데 의문사라고 하는데 이야기는 있는데 그거는.

◇ 박재홍> 실족사.

◆ 김준철> 실족사인데 현재는 실족사로 확인되고 그렇습니다.

◆ 진중권> 사실 제가 국방부에 근무했거든요. 그래서 그때가 또 직후잖아요. 한 6년 지났을 때인가. 전설적인 얘기를 들었는데 그중에 하나들은 게 뭐냐 하면 '군인은 하나도 없다' 헌병인가 누구인가 하나가 쿠데타 하는 데 길 막고 '비켜, 이 자식아. 쏜다' 하는데 끝까지 막다 총을 맞고 죽었다. 이 얘기를 들었는데 그 이름이 나온 것 같아요. 정선엽 병장이요.

◆ 김준철> 맞습니다.

◆ 진중권> 이분이 작년에 인정이 된 건가요? 너무 늦다.

◆ 김준철> 이분은 작년 인정되고 재작년에 올해 9월에 문을 닫은 군 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를 찾아가서 이걸 조사를 해 달라. 이 사망자에 대해서 조사 보고 행태가 없으니까 그래서 작년, 재작년에 요구를 해서 다행히 거기서 직권조사를 시작해서 기존에 알고 있던 거는 그냥 어느 한 구석에 워딩이 돼 있죠.

'저항하고 도주하는 병력을 사살했다'라고 돼 있는데 조사해 보니까 저항해서 넘어져 있는 병사를 M-16으로 3발을 쏘고 그다음에 사망 직전에 있는 병사에게 확인사살을 했다 이거죠. 권총으로 목에 대고 한 발 더 쐈다라고 조사 결과가 나오더라고요.

◇ 박재홍> 그랬군요. 그래서 이제 명예가 회복이 되어서 전사로 인정이 됐군요.

◆ 김준철> 사망 부분이 격상이 되어서 전사로 이렇게 구분됐습니다.

◆ 진중권> 제가 들은 게 군대 괴담이 아니었던 거예요.

◇ 박재홍> 회장님은 몇 해 전에 김오랑 소령 추모비를 건립해야 된다 1인 시위도 하셨죠. 이 문제는 어떻게 됐습니까?

◆ 김준철> 전혀 움직이지 않습니다. 과거에 있었던 촉구 결의안이 법안이 아니니까 선택은 해당 기관에서 할 수밖에 없는데 역시 해당 기관뿐만 아니라 국방부도 필요하다 그러면 건의한다고 상관없이 추진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국방부도 거기에는 회의적이고 그래서 더불어 작년 김오랑, 정선엽 관련해서 이왕이면 병사 또 박윤관 일병도 있으니까 정선엽 병장이 사망했던 P2벙커. 지금 현재 P2벙커 거기에 세 분과 관련된 조형물을 하나 세워달라라고 요구를, 용산에 요구를 문서로 요청했던 적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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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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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홍> 그런데 아직 거기에 대해서 답은?

◆ 김준철> 답은 없죠.

◇ 박재홍> 그렇군요. 12월 12일 10시에 김해 김오랑 중령 흉상 앞에서 추모식도 있다고 하죠. 그럼 사무처장님도 거기 가셔서.

◆ 김준철> 지금 갈 예정인데 의외로 이번 바람 때문에 기존에는 초창기에는 좀 많이 나오고 중간에 그저 그런 상태로 진행되다가 초창기에는 김해시장 그다음에 민홍철 의원은 주기적으로 나오셨습니다, 지역구인. 그다음에 유승민 의원도 작년에 대선 과정 중에도 거기를 나왔던 걸로 알고 있고. 이번에도 유승민 의원은 참석을 하겠다고 했고 그래서 아마 다른 분들 김해시나 또 이거는 좀 앞서가는 건데 양산에서도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박재홍> 양산 문재인 전 대통령.

◆ 김준철> 제가 일정이 그렇다라고 통화를 비서관하고는 했는데.

◇ 박재홍> 말씀을 들으셨다.

◆ 김준철> 아마 이동하기가 쉽지 않아서 올 수 없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 박재홍> 12.12 사태를 조명한 영화 서울의 봄 이야기. 그중에서도 김오랑 소령 관련 이야기를 저희 짚어봤는데요. 이제 우리 사무처장님이 그동안 많은 노력을 해 오셨습니다. 앞으로 남은 과제가 있다면 또 어떤 게 있을까요? 그 말씀 듣고 마무리하겠습니다.

◆ 김준철> 남은 과제는 사실은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고 군 정신교육 교재에 딱 적합한 인물이다. 현대사에 예전에 교재 보면 과거에 박제화된 전설 같은 우리가 아주 고조선이라든지 그다음에 신라시대, 조선시대 이런 인물들이 나오는데요. 이 문제는 현대사에 봤을 때 군인들이 흥미도 있고 해서 꼭 적합한. 거기에 중간에 요구사항도 있지만 정신교육 교재로써 기억되고 거기에 교훈화될 수 있게끔 하는 게 제일 바라는 바입니다.

◇ 박재홍> 알겠습니다. 오늘까지 열심히 활동하신 이야기 잘 말씀해 주셨어요. 김오랑 추모사업회 김준철 사무처장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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