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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3 (금)

‘이-팔 전쟁 책임’ 서로 겨눈 증오심…지인들 죽음엔 무력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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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하마스 전쟁 2개월

고통받는 당사자들에게 묻다


한겨레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난민 살레(27)가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 사옥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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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삶은 크게 변했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 가족을 남겨두고 온 키리아(29)는 10월7일 전쟁이 터진 뒤 “모든 삶이 정지된 것 같다”고 말했다. 벌써 두달이 지났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생방송 뉴스채널이 전해오는 전쟁 속보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스라엘 유학생 리즈(27)도 비슷한 증상을 겪는 중이다. 그는 “(이스라엘) 현지 국경에서 경보가 울리면 내 폰에도 알림이 온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주변 사람을 여럿 잃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 유학생 다나(24)는 “고교 동창인 쌍둥이 형제는 납치됐고, 또 다른 남성 동창은 노바 음악 축제 현장에서 살해당했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출신 난민 살레(27)도 “옛 동네가 다 파괴됐다”며 “결혼을 앞둔 친척 예비부부와 옆집에 살던 일가족 12명이 모두 죽었다”고 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대규모 기습공격으로 전쟁이 시작된 지 7일로 두달이 됐다. 하마스의 공격으로 이스라엘인 1200명, 두달에 걸쳐 진행된 이스라엘의 보복으로 5일(현지시각) 현재까지 팔레스타인 사람 1만6248명이 숨졌다. 양쪽이 저지른 끔찍한 만행에 전세계가 경악했다.

당사자들은 이 비극을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한겨레는 지난 3일부터 나흘 동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가족을 남겨둔 채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을 2명씩 만나 이들의 생각을 들었다. 현지 상황을 넘어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갈등의 원인과 해법에 대해 물었지만, 상대에 대한 증오로 점철된 감정의 골이 너무 깊어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갑작스레 닥친 비극에 잠 못 이루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 둘 사이 공통점은 사실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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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 출신 난민 살레는 이스라엘의 잔인한 공격으로 인한 인명 피해가 너무 크다고 했다. 길이 41㎞, 너비 6~12㎞인 가자지구(총면적 365㎢)엔 무려 220만~230만명이 모여 살고 있다. 하마스가 2007년 6월 이곳을 장악한 뒤 이스라엘의 봉쇄가 이어지고 있어 ‘지붕 없는 감옥’이라 불린다. 땅이 좁고 경제 사정이 어려워 6~7명씩 되는 형제가 몇 대에 걸쳐 함께 모여 사는 경우가 흔하다. 살레는 그래서 가자지구에선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식구 전체가 죽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내 친구 무스타파는 배우자와 딸, 부모, 형제까지 17명이 한꺼번에 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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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유학생 리즈(27)가 5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 사옥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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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왜 시작된 것일까. 이스라엘인 리즈는 “하마스의 이기적인 반유대주의”가 원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마스가 외부에서 들여오는 돈을 터널·미사일이 아닌 가자 주민을 위해 사용했더라면 (이런 전쟁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스라엘이 2020년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모로코 등 아랍 국가와 관계를 회복하고 역내 강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 정상화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이란의 선동”이 이번 전쟁의 발단이 됐다는 말도 보탰다. 이번 공격의 배후에 ‘숙적’ 이란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다나의 생각도 엇비슷했다. 그는 “하마스는 아이들에게 이스라엘과 유대인을 증오하도록 교육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둘 사이의 갈등은 인종적인 혐오에 기반한 것으로 “단순한 영토 분쟁이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갈등의 본질적 원인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당시 이뤄진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영토 점령과 식민지화”(키리아)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건국과 함께 원래 이곳에 살던 이들을 내쫓았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말하는 ‘나크바’(대재앙)다. 이스라엘은 또 2007년 이후 17년째 가자지구의 전기·물·식량·의약품을 통제하고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 가자지구에서 태어나고 자란 살레는 “평생 서안지구나 예루살렘에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건국 이후 네차례에 걸친 중동전쟁에서 모두 승리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땅을 침식하기 시작했다. 1993년 ‘오슬로 합의’에 따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두 국가 해법’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는 독립하는 팔레스타인 국가의 영토가 되어야 하지만,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에서 유대인 정착촌을 확대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불법으로 규정하는 행위다. 양쪽의 거주지가 섞이다 보니, 서안지구에는 이스라엘군이나 민간 보안업체가 운영하는 검문소가 188개(상시 근무 검문소 49개 포함)나 된다. 예컨대 서안 북부 나블루스에서 남부 라말라로 가려면 이런 검문소를 통과해야 한다. 키리아는 수십년 동안 이어진 이스라엘의 점령으로 합당한 이유 없이 체포돼 고통받는 팔레스타인인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키리아와 살레는 2018년 벌어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향 귀환 투쟁인 ‘위대한 귀환 행진’ 당시 평화시위를 하던 이들이 희생됐던 사건을 언급했다. 살레는 “1만명 이상이 다치고 적어도 600명 이상이 죽었다. 상당수가 아이들이었다”고 했다. 키리아는 “가족, 형제, 자매를 이렇게 빼앗는 건 삶의 의지를 앗아가는 것이다. 어떻게 복수할지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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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출신 이주민 키리아(29)가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 사옥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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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극명히 갈린다. 이스라엘인 다나는 “하마스는 이슬람국가(ISIS)와 같은 테러 그룹일 뿐”이라고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생방송을 통해 동창생의 부모가 살해당하고 친구가 엄마의 피 위에서 7시간 동안 구조를 기다리며 누워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큰 충격이었어요.” 그는 “하마스가 ‘자유 투사’라면 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인간 방패’로 쓰느냐”고 꼬집었다.

살레의 생각은 또다시 정반대였다. 그는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의 해방과 저항 운동 과정에서 설립됐다”며 이스라엘인을 인질로 잡은 것은 “(이스라엘에 부당하게 체포된) 6천명 넘는 팔레스타인 수감자를 석방시키기 위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키리아는 “하마스가 한 일은 이스라엘인의 삶 속에 팔레스타인이라는 존재를 환기시킨 것”이라며 “그들의 방식에 모두 동의하지 않지만, 변화를 위해 뭔가 해보려는 것 같다”고 했다.

이스라엘 최악의 ‘극우 내각’이라는 비판을 받는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비판을 피하는 모습이었다. 다나는 “이번 일이 있기 전까지 정부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많았지만, 최근엔 공개적 비판을 피하려는 듯하다”며 “인질의 무사 귀환과 일상 회복에 집중하는 상황에서 정치는 주요 관심사가 아니다”라고 했다. 다나와 리즈는 이스라엘방위군(IDF) 역시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공격을 예고하고 대피를 촉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하마스뿐 아니라 일부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분리 장벽을 넘어 각종 범죄를 저질렀다면서 “총 들고 마스크를 쓴 이들만 테러리스트인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해묵은 갈등의 해법은 있을까. 이스라엘 정부는 하마스 박멸과 모든 인질의 무사 귀환을 전쟁의 목표로 내걸고 있다. 인터뷰에 응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나는 “가자지구를 통제하는 테러 그룹을 제거하는 게 급선무”라고 했고, 리즈도 “모든 인질이 집에 돌아오고 하마스가 권력을 내려놔야 한다”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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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유학생 다나(24)가 4일 오전 서울 성북구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만나 하마스에 납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자신의 동창생에 대한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보여주고 있다.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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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의 참혹한 상황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지만,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폭정’,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억압’을 원인으로 꼽았다. 키리아는 “하마스 박멸은 달성할 수 없는 목표”라며 “하마스에 가입한 사람 중 상당수가 가족과 친구를 잃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견줘 다나는 “부유한 나라들이 가자지구에 많은 돈을 기부하지만 그게 테러에 사용된다는 게 문제”라며 “그 돈으로 상수도와 학교를 짓고 경제를 일으킨다면 (갈등 해소에) 도움이 된다. 제대로 된 집과 삶이 없는 끔찍한 환경에선 테러 그룹에 기울기가 너무 쉽다”고 했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으로 거론되는 ‘두 국가 해법’ 역시 당장 실현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였다. 팔레스타인 쪽에선 “이스라엘의 건국 자체가 올바르지 않았다”(키리아), “우리 영토와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살레)는 반응을 보였다. 수십년 동안 계속된 폭압 속에서 큰 고통을 받은 이들은 이스라엘과의 ‘평화적 공존’을 받아들이기 힘겨워했다. 키리아는 두 국가 해법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억압을 영구화하는 것”이라며 “식민지화를 되돌려 팔레스타인을 치유해야 한다”고 했다.

부정적 입장을 보이긴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다. 다나는 “유엔이 영토 분할 계획을 내놨고 이스라엘이 건국됐지만 아랍은 이스라엘을 원하지 않았다”며 “그들은 여전히 유대인이나 이스라엘 사람이 지금 영토에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리즈는 “하마스는 2017년 ‘이스라엘 제거’라는 목표를 공개했다. 이들과 어떻게 공존하겠냐”며 “하마스 정권 아래서 팔레스타인의 미래는 없다”고 했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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