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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가자 남부는 '종말론적 상황'... "피란민 180만 명, 갈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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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군, 가자 남부서도 지상전 확대
북부 자발리야 난민촌 급습... '북부 청소'
"대량 학살 멈춰라" 인도주의 위기 심화
이 "하마스 1명당 민간인 2명 사망" 인정
한국일보

5일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 동쪽의 학교를 공격한 뒤, 팔레스타인인 부상자가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가자=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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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에서도 지상전을 본격화하고 나섰다. 개전 후 최고 강도의 공습도 퍼부었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근거지였던 가자 북부를 장악한 데 이어, 이제는 남부로까지 총부리를 돌린 것이다. 이 지역에 몰려 있는 피란민 180만 명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상태로, 밤낮없이 울리는 포성을 견딜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대량 학살, 인종 청소를 멈추라"는 절규가 터져 나오지만, 이스라엘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7일간의 위태롭던 일시 휴전이 끝난 이후, 가자지구 전역이 이번 전쟁의 가장 격렬한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이, 남부 지상전 확대… "가장 격렬한 전투 단계 돌입"


4일(현지시간)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 이스라엘 하레츠,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이날 가자지구 남부에서 지상 공격을 단행했다. 가자지구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남부의 중심인 칸유니스 동쪽 외곽에선 이스라엘군과 무장 단체인 팔레스타인 해방민주전선 간 교전이 벌어졌다. 남부 곳곳으로 대거 진입한 이스라엘군 탱크도 목격됐다. 이스라엘 기갑부대 사령관인 히샴 이브라힘 준장은 이날 군 라디오에서 "가자 북부에서 목표는 거의 달성했다"며 "우리는 이제 하마스 테러 단체를 무너뜨린다는 한 가지 목표를 갖고 가자의 다른 지역(남부)으로 지상 작전을 확장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 전투기는 칸유니스 북쪽과 동쪽을 집중 폭격했다. 이집트와 접경한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에서도 공습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공격은 사나웠다. 영국 BBC방송은 이날 밤부터 5일까지 이 지역에서 50회 이상 이스라엘군 공습이 있었다며 "개전 후 최고 강도의 공습"이라고 보도했다.

이스라엘군이 칸유니스를 공격 타깃으로 삼자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쟁이 가장 격렬한 전투 단계로 돌입했다"고 짚었다. 칸유니스마저 이스라엘군에 장악될 경우, 하마스는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되는 탓이다. 이스라엘은 최우선 제거 대상인 야히아 신와르 등 하마스 고위지도부가 칸유니스 지하에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마스에 끌려간 나머지 인질 140여 명 중 상당수도 이곳에 억류된 것으로 전해진다. WSJ는 "칸유니스에서의 싸움은 이스라엘 입장에선 가자지구 통제를 위한 마지막 대규모 전투이자 가장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스라엘군은 이와 함께, 가자 북부에서도 팔레스타인 최대 규모인 자발리야 난민촌을 완전 포위하고 급습에 나섰다. 하마스 잔당 색출을 위한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상 '북부 청소' 작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일보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 주민들이 지난 3일 이스라엘의 피란 통보에 따라 시 서쪽 외곽 또는 이집트 국경 인근 라파로 대피하고 있다. 가자=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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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갈 데 없는 180만 명… "종말론적 상황"


가자지구 남부에서도 이스라엘군의 지상 작전이 개시됨에 따라, 민간인 희생은 눈덩이처럼 더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가자지구 주민 230만 명 중 80%(약 180만 명)가 집을 잃었고, 이 중 대부분이 남부로 탈출한 상태다. 이스라엘군은 지상전을 앞두고 칸유니스 주민들에게 피란을 권고했지만, 안전이 담보되는 곳은 이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가자지구가 점점 더 종말론적 상황에 처하고 있다(마틴 그리피스 유엔 인도주의·긴급구호 사무차장)"는 비관적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노르웨이 난민위원회의 얀 에겔란 사무총장은 엑스(X·옛 트위터)에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을 킬링필드(대량 학살 현장)에서 '다음 킬링필드'로 이동하도록 강요하고 있다"며 "대량 학살을 멈추라"고 촉구했다.

가자지구 남부의 인도주의적 위기도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WHO는 4일 성명을 통해 "대피 명령을 받은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좁은 지역에 몰리고 있는 반면, 해당 지역의 병원은 충분한 연료, 의약품, 음식, 물, 의료인 없이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이날 X에서 "이스라엘군이 '지상작전으로 인해 사용할 수 없게 될 테니 24시간 내 가자지구 남부의 의료 창고에서 보급품을 치우라'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스라엘군은 이를 부인했다.

이미 가자지구의 인명 손실은 막대하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10월 7일 개전 후 이달 4일까지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 1만5,899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이 중 약 5,000명이 하마스 대원으로 추정됐다. 하마스 대원 1명당 민간인 2명꼴로 사망한 셈이다. 이스라엘 고위 당국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이를 인정하면서 "민간인 사상자를 줄이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전쟁의 결과 중 일부"라고 말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한마디로 하마스 섬멸을 위해 무고한 민간인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게 이스라엘 입장인 셈이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가자지구의 모든 테러 기반 시설이 제거될 때까지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쟁 수행 의지를 다졌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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