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쟁에 '나몰라라' 뒷전…정치 신인들 '분통'
선거일 임박해 또 '벼락치기' 획정 가능성…관성화된 '유권자 무시'
여야, 획정안 입장차…획정 과정서 '텃밭 사수전' 전망도
대화하는 여야 원내대표 |
(서울=연합뉴스) 홍지인 설승은 안채원 정수연 기자 = 내년 4월 총선에 출마할 예비후보자 등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으나 국회가 선거구 획정 작업조차 마무리하지 못해 '깜깜이 선거'가 되풀이될 것이란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여야 간 극한 대치와 더불어 현역의원의 기득권 유지라는 암묵적 담합 속에서 선거구 획정이 기약 없이 늦춰지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치 신인 등 예비 후보들의 피선거권과 유권자들의 참정권만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5일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국회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구획정위가 마련한 선거구 획정안을 토대로 선거일 1년 전까지 국회의원 지역구를 확정해야 한다. 지난 4월 10일까지 선거구 획정 작업을 끝냈어야 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여야는 데드라인 이후 8개월이 되도록 위법 상황을 방치했다. 선거구 획정은커녕 의원 정수 등의 획정 기준조차 제대로 논의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김진표 국회의장은 국회의원 총정수(300명) 및 지역구 국회의원 정수(253명)를 유지하는 등 손보지 않은 현행 선거구 획정 기준을 지난 1일 그대로 획정위에 제출해야 했다.
획정위 역시 이 같은 국회의 태도에 불만을 드러내면서도 어쩔 수 없이 데드라인인 이날 오후 전국 선거구를 현행대로 253개로 하는 내용의 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획정위가 제출한 획정안 검토에 착수한다. 이의가 있을 경우 정개특위는 한 차례 획정위에 재획정을 요구할 수 있다.
이런 절차를 거쳐 획정안이 반영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돼야 비로소 선거구 획정 작업은 마무리된다.
그러나 여야는 현재 내년도 예산안 내용과 특검·국정조사 도입 여부를 둘러싸고 날카롭게 대치하고 있어 선거구 획정은 내년 선거일이 임박해서야 '벼락치기'로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그래픽] 22대 총선 선거구 합구·분구 예상 지역 |
획정안에 따르면 6개 선거구가 통합되고 6개 선거구가 분구됐으며, 결과적으로 서울과 전북에서 각 1석이 줄고, 인천·경기에서 각 1석 늘었다.
경기 하남, 경기 화성을·병, 인천 서구을, 경기 평택갑·을. 부산 북구강서구갑·을, 전남 순천시광양시곡성군구례군갑·을이 인구가 늘어 선거구가 쪼개진다.
반대로 서울 노원, 경기 안산 상록, 경기 부천, 부산 남구, 전북 남원·임실·순창 등은 다른 지역구와 합구된다.
이에 이 지역 출마를 노리는 후보자들, 특히 정치 신인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으로 분구 지역인 평택갑 출마를 준비하는 한 인사는 "가장 큰 문제는 유권자가 후보를 알지 못하는 상태서 선거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획정이 늦어지면 선거비용을 어느 정도까지 써도 되는지가 불확실해지고, 잘못하면 회계에서 상당한 문제 발생 소지가 생긴다"고 토로했다.
역시 분구 대상인 화성을 출마를 준비 중인 민주당 소속 한 예비후보는 "1년 전에는 선거구가 획정돼야 총선에 나오려는 사람들도 미리미리 준비하고 대응할 수 있는데 이렇게 막바지에 확정되면 현역에겐 좋지만, 신인에게 상당히 불리하다"고 호소했다.
이 같은 획정안을 두고 여야는 셈법에 따라 엇갈린 반응을 나타내 향후 정개특위의 획정 논의 과정에서 적지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획정안에 대해 "당리당략적 요인이 개입될 여지가 없는 조정안으로, 큰틀에서는 동의를 해야할 것 같다"고 평가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상훈 의원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정당별 유·불리 문제가 아닌 인구 변화에 따른 상·하한 기준에 맞춰 획정된 안"이라며 "다만 경계 조정은 여야가 같이 고민해볼 문제"라고 설명했다.
반면, 민주당은 입장문에서 "획정안은 국민의힘 의견만이 반영된 편파적인 안으로 결코 수용할 수 없다"며 "선거구 획정안을 균형적이고 합리적으로 조정할 것"이라면서 재획정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
자당이 비교적 강세인 호남에서 1석이 줄어든 반면, 여당의 텃밭인 영남의 의석수는 유지되는 데 대한 반발로 풀이된다.
여야 간 획정 논의가 결국엔 '텃밭 지키기' 싸움으로 흐를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선거구 획정이 늦춰지는 것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지난 2020년 21대 총선 당시에는 선거일을 불과 한 달 남짓 남긴 3월 6일에야 선거구 획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된 바 있다. 17대 총선 때는 선거를 37일, 18대 47일, 19대 44일, 20대 42일을 각각 앞두고 선거구 획정을 마쳤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깜깜이 선거'는 사실 선거마다 반복되는 문제"라면서 "예비 출마자조차도 모르는데 유권자는 자기 동네에 누가 나올지 예상할 수 있기나 하겠나"라며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gee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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