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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4 (월)

“무대는 엄혹한 수련장… ‘차범석 연극 정신’ 늘 새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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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차범석희곡상 시상식

“언제부터인지 꿈속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꿈속은 춥고 배고픈 곳이지만 마음은 더없이 편했습니다. 우리는 도시 여기저기 지하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깨달았습니다. 그 작은 지하 무대는 현실을 피해 꿈을 찾는 우리에게 현실보다 더 혹독하고 냉엄한 수련장이라는 것을. 무대는 우리들의 삶, 현실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요.”

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조선일보 편집동에서 열린 제17회 차범석희곡상 시상식. 장막 희곡 ‘이장(移葬)’으로 올해 수상자가 된 극작가 겸 연출가 박근형(60) 극단 골목길 예술감독은 “차범석 선생님이 지켜오신 연극 정신 잘 새겨듣고 앞으로 더욱 노력하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시상식의 문은 뮤지컬 배우 박혜미가 차범석 선생의 희곡 ‘산불’ 원작의 창작 뮤지컬 ‘댄싱 섀도’(Dancing Shadow)의 노래 ‘댄싱 위드 마이 섀도’로 열었다. 설치미술 작가 이혜민의 작품인 새 트로피도 함께 소개됐다. 작가의 비밀을 듣고 눈물을 닦아준 베개들이 중첩되며 쌓아올려져, 누에고치가 나비로 탈바꿈하듯 마침내 단단한 희곡으로 완성되는 모습을 형상화한 청동 트로피다.

수상작 ‘이장’은 먼저 간 남편의 묘를 이장해야 하는 늙은 어머니와 그 자식들의 이야기. 차범석연극재단 차혜영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무대 위 펼쳐진 하얀 옥양목 이불을 보니 우리 어머니 이불이 생각나 연극이 끝나고도 오래 객석에 남아 있었다”며 “아버지 가신 뒤에 어머니 이불 위엔 늘 아버지 자서전이 있었다. 홀로 누운 어머니 모습, 우리 모두의 가슴에 있는 어머니 모습 아닐까 싶었다”고 했다.

박근형은 김상열연극상, 대산문학상, 대한민국 연극대상, 동아연극상 등 받을 수 있는 연극상은 이미 거의 다 받은 우리 연극을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연출가. ‘청춘예찬’ ‘쥐’ ‘너무 놀라지 마라’ 등 그가 쓰고 무대에 올린 주옥같은 작품들을 떠올리면 이번 수상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는 데 많은 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손진책 장막 희곡 부문 심사위원장은 심사평을 시작하며 “차범석 선생님이 ‘박근형 수상 좀 늦지 않았느냐’고 하시는 것 같아서 제가 ‘그렇지요’ 하고 말씀드렸다”고 농담을 했다. 하객들이 다시 한번 폭소를 터뜨렸다. 심사위원들은 ‘이장’에 대해 “늘 그렇듯, 진흙 속에 피는 연꽃처럼 남루하고 고결한 박근형의 시(詩)”라고 했다.

차범석희곡상은 한국적 개성이 뚜렷한 사실주의 연극을 확립한 우리 연극의 대표적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차범석(1924~2006) 선생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 올해 차범석희곡상은 2022년 10월부터 지난 1년 동안 공연된 장막 희곡과 뮤지컬 극본을 대상으로 심사를 진행했다. 올해 뮤지컬 극본 부문 수상작은 나오지 않았다.

이날 시상식에는 심사위원인 손진책·고희경·허순자·유희성·배삼식·원종원씨, 차범석 선생 가족 차순규·차광일씨, 작가 노경식·이한승·장유정·한아름씨, 연출가 김수남·김철리·박계배·박찬빈·한태숙씨, 배우 고수희·방은희·손봉숙·손숙·여무영·유태균·윤제문·이숙·이승옥·이호재·장영남·장희진·전무송·정동환·정현·최선자·한보경씨, 박명성 신시컴퍼니 예술감독, 최청자 무용가,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그리고 조선일보사 홍준호 발행인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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