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01 (금)

“月 10만원으로 살아요”…새벽마다 탑골공원에 모이는 노인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아침·점심을 탑골공원 무료 급식소에서 해결하는 노인들

“큰 병을 앓아서” “산업재해로”

월 생활비는 기초연금으로 충당

헤럴드경제

4일 오전 8시께 탑골공원 원각사 노인 무료 급식소에서 나눠주는 주먹밥을 먹기 위해 노인들이 줄을 서고 있다. 박지영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원래는 오전 5시 15분에 나왔는데 오늘 집에서 좀 늦게 나왔어. 6시 20분에 나왔더니 무료 급식 번호표 65번 받았어. 아침은 여기서 나눠주는 주먹밥으로 해결하고 점심은 11시 30분에 무료 급식 먹지. 월요일에서 일요일까지 매일매일 나와.”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서 7호선을 타고 5호선으로 갈아타고 종로3가에 위치한 원각사 앞으로 온 김모(80) 씨. 원각사에서는 무료 급식과 무료 주먹밥을 제공한다. 김씨의 한 달 생활비는 10만원. 그녀는 한 달에 40만원씩 받고 건물 청소 일을 하다가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로 해고 됐다. 현재 통장 잔고는 40만원. 20년 전 친구에게 명의를 빌려준 김씨의 앞으로 아파트가 있는 상황이라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도 못하고 기초연금도 받지 못한다고 했다. 김씨는 “아침과 점심을 여기서 해결하고 집 가서는 아무것도 안 먹는다”며 “냉장고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헤럴드경제

경기도 고양시에서 1시간 걸려 탑골공원에 도착한 박모(80) 씨가 원각사 노인 무료급식소에서 받은 번호표를 보여주고 있다. 박지영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4일 해도 채 뜨지 않은 오전 7시. 원각사 노인 무료급식소 앞에는 오전 6시부터 자리 잡은 노인들로 북적거렸다. 원각사 자원봉사자 김정호(72)씨가 오전 6시 50분 “번호표 받아가세요~”라고 말하자 원각사 앞에서 한 줄로 서서 차례를 기다리던 노인들이 번호표를 받아갔다. 김씨는 “오늘 6시 20분에 도착했는데 40명이 자리를 잡고 있더라”며 “많을 때는 290명까지도 식사를 하는데, 70명이면 평균적인 편”이라고 했다.

헤럴드경제

탑골공원 원각사 노인 무료 급식소에서 주먹밥을 나눠주고 있는 모습. 박지영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오전 11시 30분에 배식이 시작되는 탓에 ‘탑골공원 원각사 노인 무료 급식소’에서는 오전 8시 30분 허기를 채우라고 주먹밥과 미역국을 나눠준다. 오전 8시께가 되자 120명 이상이 모여 탑골공원을 한 바퀴 에워쌀 정도로 줄이 늘어졌다. 오늘 준비된 주먹밥은 180개. 8시 43분께 배부를 시작한 주먹밥은 7분 만에 동이 났다. 6년 전부터 이 곳을 운영해왔다는 60대 후반 자광명 보살은 “평균 200개 정도 준비하는데 모자라면 더 만들어서 나눠줄 때도 있다”며 “여기가 아니면 식사를 할 곳이 없다는 걸 아니까 쉬는 날 없이 365일 운영한다”고 했다.

헤럴드경제

탑골공원 원각사 노인 무료 급식소에서 배부한 주먹밥과 미역국. 김가루, 단무지가 들어간 주먹만 한 주먹밥이다. 박지영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끼니를 해결하려 모이는 노인들의 사연은 제각각이다. 하지만 새벽같이 나와서 줄을 선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서울 서대문역 근처에 사는 고모(93) 씨는 오전 7시에 집에서 나왔지만 무료 급식 번호표를 받지 못했다. 한 때 공무원으로 일했던 고씨는 종로구에 아파트를 구매했지만 30년 전 아내가 암에 걸리면서 아파트를 팔았다. 병원비로 쓴 돈은 10억 가량. 그 때 모아둔 돈을 다 쓰고 지금은 전세 1000만원짜리 다가구 주택에 산다. 일주일에 5번 정도 탑골공원을 방문한다는 고씨는 “아침과 점심은 여기서 해결하고, 저녁엔 컵라면이나 빵으로 때운다”면서 “기초연금 32만원으로 한 달을 산다”고 했다.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오전 5시 20분 첫차를 타고 탑골공원으로 온 천모(76) 씨는 2년 전 공사장에서 철근 일을 하다 4층에서 2층으로 떨어져 엉덩이 뼈가 부서진 이후 일을 하지 못하게 됐다. 날마다 탑골공원으로 나오는 게 습관이 됐다는 고 씨는 “아들과 함께 살아 한 달 생활비는 120만원 정도고, 지하철역에서 오후 6시부터 오전 0시까지 안전요원으로 근무하면서 충당한다”고 했다.

이 곳을 방문한 노인들은 처음부터 빈곤하지는 않았다. 전문가들은 4대 중증질환(암·뇌혈관질환·심장질환·희귀난치성질환) 등 건강 상의 문제가 일종의 ‘재난’으로 작용하는 탓에 중산층에서 저소득 빈곤층으로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중산층이 저소득층으로 가게 되는 이유로는 가장 크게 의료비가 꼽힌다. 일본에서는 ‘노후파산’이라고 불리고 있다”며 “중산층이 저소득층으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큰 병으로 진행되기 전 예방적인 차원에서 정부가 대안을 마련해야 하고, 기초연금 또한 꼭 필요한 사람에게 더 두텁게 지원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짚었다.

공적연금이 더 많은 계층을 포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평생 저임금 일자리에서 일해 노후를 대비하지 못한 근로 빈곤 문제도 심각하다”며 “프랑스의 경우 저임금 노동자의 연금을 국가가 대신 내주기도 한다. 비정규직 등 저임금 노동자도 공적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복지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go@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All Rights Reserved.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