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석탄 선언 국민연금, 오히려 석탄화력발전에 막대한 투자
녹색연합 회원들이 지난해 3월 18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앞에서 포스코 석탄발전 중단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김창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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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석탄산업은 환경문제뿐 아니라 에너지 안보와도 관련된 사안으로, 국내외 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신중하게 추진될 필요가 있다.”
지난 11월 27일 국민연금공단의 ‘석탄산업 투자 제한’ 계획을 묻는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공단 관리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한 답변이다. 에너지 수입에 의존하는 현실과 시장의 변동성, 비용 등 때문에 화석연료 투자를 중단하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석탄의 채굴과 발전산업 투자를 제한·중단하겠다는 국민연금의 ‘탈(脫)석탄 선언’을 무색게 하는 내용이다. 국민연금은 2021년 5월 “탄소중립 사회 전환에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겠다”면서 탈석탄 선언과 함께 향후 석탄 채굴과 발전 산업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탄소중립 사회 선도하겠다” 선언
하지만 국민연금의 탈석탄 선언 이후에도 바뀐 것은 없었다. 지금까지 구체적인 탈석탄 정책이나 실행 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국내 석탄화력발전에 직·간접적으로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인순 의원은 지난 10월 20일 보건복지위원회 국감에서 “국민연금의 석탄 관련 기업 투자액이 2021년 12조6500억원에서 올해 13조원으로 늘어났다”고 했다. 국민연금은 자산순위 글로벌 10번째 국부펀드이면서 국내 주식시장 6%, 국내 채권시장 10%를 차지할 정도로 국내외 자본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소장은 “(탈석탄을 신중하게 추진하겠다는) 국민연금 입장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과 금융의 탄소 배출 관련 규제를 강화하는 세계적 흐름을 신경쓰지 않겠다는 의미여서 충격적이다. 세계적인 연기금들이 기후위기 대응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하기 때문인데, 국민연금은 이를 역행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했다.
화석연료 직·간접적 투자로 발생하는 피해에서도 국민연금은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국내 기후단체 기후솔루션이 지난 6월 핀란드 에너지·청정대기연구센터(CREA)와 함께 작성한 ‘국민연금 석탄 투자로 인한 대기오염 및 건강피해 분석’ 보고서를 보면 2021~2022년 국내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배출한 대기오염물질에 노출돼 사망한 사람은 1968명인 것으로 추산된다. 사망 외에 천식에 걸린 어린이가 589명, 미숙아 출산 285건, 천식 관련 응급실 진료 건수 560건 등도 있다. 이중 국민연금의 석탄화력발전 투자 비중으로 계산한 사망자 수는 전체의 11.2%인 220명이다. 같은 기준에서 새로 천식에 걸린 어린이는 67명, 미숙아 출산은 32건, 천식 관련 응급실 진료는 약 63건이었다.
마찬가지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공적 금융이 온실가스 배출을 늘리고 좌초자산이 될 위험이 있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건조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기후솔루션의 11월 28일 ‘LNG 운반선, 가스 확장의 최전선 뒤 숨겨진 산업’ 보고서를 보면, 공적 금융기관이 LNG 운반선에 지원한 공적 금융은 지난 한 해만 약 17조9000억원이다. 2014년부터 올해까지 근 10년간으로 넓혀보면, LNG 운반선 사업에 약 55조9000억원이 투입됐다. 지원 금액 순으로 보면 수출입은행(31조8000원)이 가장 많았고, 한국산업은행(12조8000억원), 무역보험공사(6조9000억원), 한국자산관리공사(3조9000억원) 등이다.
좌초자산 우려가 큰 이유는 LNG 수요 전망이 어둡기 때문이다. 미국의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는 올해 2월 보고서에서 “LNG 가격의 지속적 상승, 유럽의 가스 소비 감소, 에너지 전환 등의 이유로 인해 향후 몇 년간의 글로벌 LNG 수요 전망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탈석탄을 선언한 민간금융의 화석연료 투자도 지속되고 있다. 기후솔루션 등은 강원 삼척에 석탄화력발전소를 짓는 삼척블루파워의 회사채 인수와 판매를 지속하는 6개 증권사(NH·미래에셋·신한·KB·키움·한국투자)에 대해 ESG 경영 흐름과 맞지 않으며, (국내 금융사들의) 탈석탄 선언이 ‘그린워싱’(가짜 친환경)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2020년 8월 26일 서울 종로구 누하동 환경운동연합 마당에서 열린 ‘기후 비상사태! 석탄발전 퇴출을 촉구하는 환경운동연합 1000인 선언’에 참여한 환경운동연합 회원이 공적금융의 석탄발전 투자 금지를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준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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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석탄 선언에도 화석연료 금융 늘어
공적 금융기관의 탈석탄 움직임은 2018년 본격화됐다. 사학연금과 공무원연금이 같은해 10월 탈석탄을 선언하고 재생에너지 투자를 약속했다. 이들은 “석탄발전은 기후 변화와 미세먼지의 주요 요인이기 때문에 향후 국내외 석탄발전소 건설을 위한 프로젝트 파이낸싱과 관련 회사채 등을 통한 금융 투자와 지원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런 분위기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10월 ‘신규 해외 석탄발전 공적 금융지원 가이드라인’ 제작으로 이어졌다. 모든 공공기관에 배포된 가이드라인은 새로 시작하는 해외 석탄발전 사업과 설비에 대한 공적 금융지원(공적 개발원조·수출금융·투자 등)을 중단하고, 석탄발전 설비 유지·보수 등에 대해선 국제적 합의를 적용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민간 금융기관의 탈석탄 선언도 이어져 지난해 6월 말 기준 탈석탄 금융을 선언한 국내 공적·민간 금융기관은 모두 104곳으로 늘었다.
하지만 선언과는 반대로 화석연료 자산 규모는 되레 늘었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과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6월 발표한 <2022 화석연료금융 백서>를 보면, 국내 금융기관의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금융(대출·채권·주식투자) 자산은 지난해 6월 말 기준 118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10년여간(2012~2022년 6월) 국내 금융기관의 재생에너지 누적 투자금(37조2000억원)의 3배다.
천연가스와 석유의 금융 부문이 분리돼 있지 않은 국민연금(16조8000억원)을 제외했을 때, 국내 금융기관의 화석연료금융 자산은 총 101조7000억원이다. 이중 공적 금융기관이 보유한 화석연료금융 자산은 61조8000억원(산업은행 보유 한국전력 지분 약 20조원 포함)으로 민간 금융기관의 화석연료금융 자산(39조9000억원)보다 많았다. 민간 금융기관의 경우 손해보험이 9조7000억원, 생명보험 15조원, 은행 13조9000억원, 증권사 1조3000억원 등이다.
국제사회는 화석연료의 단계적 폐지와 재생에너지 설비 확대 등 기후행동을 강화하고 있다.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금융지원을 지속하는 국가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도 커지고 있다. 기후솔루션이 11월 20일 미국 기후환경단체 ‘오일 체인지 인터내셔널’ 발표를 인용한 내용을 보면, 주요 20개국(G20) 국가 중 2019~2021년 연평균 기준 해외 화석연료 개발 프로젝트 공적 금융 투자액이 가장 많은 국가는 일본으로 나타났다. 규모별로 일본 약 12조130억원, 한국 약 8조3820억원, 중국 약 7조7920억원, 캐나다 약 6조860억원, 미국 약 4조2440억원 등의 순이다. 한국과 일본은 2021년 11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합의한 글래스고 선언에도 동참하지 않았다. 선언은 화석연료에 대한 국제 공적 금융 지원을 중단하고 청정에너지 전환 지원을 최우선 순위로 두겠다는 내용으로, 30개 이상의 국가가 서약했다. 기후솔루션, 지구의 벗 재팬 등 전 세계 61개 환경·시민단체들은 11월 17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게 해외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대한 공적 금융 지원 중단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현대모비스가 울산전동화공장 주차장에 설치한 태양광 발전설비 /현대모비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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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탈석탄 의지가 중요
윤석열 정부 들어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비중 축소와 관련 산업 위축이 금융권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유진 소장은 “국내적으로 탄소중립이나 온실가스 감축 등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정부 정책 시그널이 약해지면서, 금융사들도 기후위기 대응을 단순한 구호 수준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특히 공적과 민간 금융 모두 투자 대비 단기적인 수익에 집착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는데, 최근 국내 경기가 더 어려워지면서 이런 운영 기조가 심화될까봐 우려된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1월 확정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을 보면, 2030년 전체 발전량 중 원전이 32.4%, LNG 22.9%, 신재생에너지 21.6%, 석탄 19.7%, 수소·암모니아 2.1%, 기타 1.3% 순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2021년 10월 확정한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상향안과 비교해 원전은 8.5%포인트 상향되고, 신재생에너지는 8.6%포인트 쪼그라들었다.
국내 태양광 산업은 위기를 겪고 있다. 미국 태양광 모듈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품질과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한화솔루션 큐셀부문(한화큐셀)은 오는 12월 17일부로 충북 음성공장 가동을 전면 중단키로 하고, 최근 생산직 노동자 1800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고동현 기후솔루션 금융팀장은 “화석연료 금융 규제가 강화되면서 친환경 재생에너지 금융 투자가 늘고 있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국내 금융기관들도 이를 비껴갈 수 없다. 물론 개별 금융기관이 에너지 안보 문제 등과 같은 대형 이슈에 맞서 화석연료 투자를 중단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정부 의지가 중요한 이유다. 정부가 화석연료 투자 축소라는 정책 방향을 제시하면 공적 금융과 민간금융도 그런 분위기를 이어받아 탈석탄과 재생에너지 지원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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