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웹툰 ‘화산귀환’
웹툰 ‘화산귀환’ 이미지. 사진제공 네이버웹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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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람에 대해 딱 한 가지 확신하는 게 있거든?”
“확신? …그게 뭔데?”
“사람은 절대 예측할 수 없다는 거.”(96화에서)
대의(大義)를 위해 목숨을 버렸다. 자신만 던진 게 아니다. 부모형제나 다름없던 동료도 전부 잃었다. 그게 옳은 일이라, 바른 길이라 믿었으니까. 허나 강산이 바뀐 뒤 환생(還生)을 통해 목도한 세상은 쓰디썼다. 희생은 독이 됐고, 명예는 짓밟혔다. 허울 좋은 정의 아래 감춰진 냉혹한 현실을 마주한 두 번째 삶. 다시 강호에 나서 세상을 짊어지게 된 순간. 그땐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네이버 웹툰이자 웹소설 ‘화산귀환’은 엄청난 콘텐츠다. 아직 연재 중인데도, 이미 ‘리빙 레전드’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2019년 4월 시작한 웹소설은 올해 11월 누적 매출액 500억 원을 넘어섰다. 2021년 3월부터 선보인 웹툰 역시 만만찮다. 올해 네이버에서 남성 독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작품 1위에 올랐다. 흥행력이 작품성을 보장하진 않지만, 그만큼 대중을 사로잡은 매력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는 면에서도 화산귀환은 특별하다. 웹툰 원작 드라마 같은 ‘원 소스 멀티 유즈’가 당연한 시대. 허나 만화와 소설이 서로를 이끌어주며 동반성장하는 밴드왜건 효과를 증명한 사례는 흔치 않다. 뭣보다 ‘아재 장르’로 치부되며 다소 하향세였던 무협을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신상품으로 업그레이드시켜 웹툰 시장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이후 비슷한 설정의 무협만화가 얼마나 즐비해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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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치열한 웹툰·웹소설의 경쟁 속에서 화산귀환은 어떻게 대박을 칠 수 있었을까. 뻔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요즘 세대의 취향을 잘 짚어낸 게 첫 번째다. ‘환생’이나 ‘고인물’ 설정은 이젠 낯익다 못해 밥상 위 김치 같지만, 여전히 지겹기는커녕 맹위를 떨친다. 게임에 익숙한 MZ의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에 담긴 세태적 욕망의 반영이랄까.
그런 갈증은 무협과도 훌륭한 궁합을 선보인다. ‘내공’이란 매력적 키워드를 가진 동양적 초인은 마블이 이끌던 슈퍼히어로가 주춤한 빈자리를 훌륭히 채워낸다. 게다가 ‘물리적 폭력의 행사’가 정의의 기준이 되는 것도 요즘 입맛에 들어맞는다. 화산파의 희생이 배신과 무정으로 돌아온 강호에서 억울함을 풀만한 수단으로 ‘힘’만한 게 있나. 마침 종남파는 졸렬하고 무당파는 치사했으며, (이후 등장할) 소림파는 위선적인데다 사파·마교는 사악하다. 실컷 두들겨 패도 속 시원할 뿐 거리낄 게 없다.
여기에 화산귀환은 이야기를 쌓아가는 ‘빌드업’이 탄탄하다. 매화검존 청명의 재림을 모든 걸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으로 삼지 않는다. 캐릭터의 구성부터 좋다. 독수리5형제만큼 근사한 화산 후지기수 5인방(나중에 “땡중”까지 껴서 6, 7명으로 늘지만)의 성장기를 뼈대로 작은 배역까지 살려가는 발걸음이 근사하다. 특히 종남 이송백 같은 안배는 자칫 한쪽으로 쏠릴 극의 물줄기를 균형 있게 잡아준다. 웹툰보다 훨씬 앞서가는 웹소설에선 다소 장황해지기도 했지만, 적절한 에피소드를 쫄깃하게 매조지하는 작가의 능력은 일품이다.
웹툰 ‘화산귀환’ 이미지. 사진제공 네이버웹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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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무협지의 본질을 지키면서도 적당한 차별화를 가한 점도 높이 살만하다. 원래 강호는 웬만한 손해를 보더라도 대의를 지키는 걸 미덕으로 삼는다. 허나 화산귀환은 기존 스타일에 억지로 얽매이지 않는다. 오히려 경직성을 떨치고 형식보다 내용에 치중한다. 명분만 내세우며 헛기침만 해대느니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구하는’ 게 본질이라 갈파한다. 특히 주인공 청명 캐릭터는 신의 한 수다. 개그캐와 진지캐를 넘나들며 복잡다단한 면모를 잘 구현해, 자칫 어정쩡하고 산만해졌을 상황을 깔끔하게 끌고 간다.
우연성에 기대지 않고 ‘의지와 노력’으로 난국을 타개하는 스토리 진행도 상찬받아 마땅하다. 현재 웹툰에서 진행하는 ‘혼원단’ 에피소드만 봐도 그렇다. 그저 기연으로 우당탕 뭔가를 얻지 않는다. 오랜 준비를 통해 실력을 갖추고 정확하게 판세를 분석해 장벽을 헤쳐 나간다. 아무리 천재여도 2만 번 슛을 던져봐야 하는 법이니까. 게다가 명확한 리더를 두되, 서로의 등을 믿고 맡기는 하나의 ‘팀’으로 성장하는 과정도 야무지다.
다만 이젠 너무나 방대해진 웹소설의 ‘사이즈’를 웹툰이 어떻게 소화할지는 두고두고 관건이 될 터. 웹툰은 이제야 초입에 들어섰는데 3년이나 지나버렸다. 이 기나긴 여정은 앞으로도 별 탈 없이 이어질까. 미래를 벌써부터 걱정할 건 아니지만, 세월이 때론 왕좌를 좀 먹는 경우를 심심찮게 보아왔다. 그만큼 화산귀환에 거는 기대는 너무나 커져 버렸다. 이미 ‘승자’에 올라선 중압감을 잘 이겨낼는지. 기대와 우려가 이래저래 교차한다.
세상일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국내 만화는 일본 등과 달리 ‘장기연재’가 지극히 드물다. 특히 웹툰의 거센 파고에 치인 종이 만화의 쇠락이 이를 더 부채질했다. 그런데 웹툰 시대가 정착하자 오히려 10년 이상의 연재도 빈번해졌다. 내년 봄이면 연재 3년을 맞는 웹툰 ‘화산귀환.’ 누군가의 청춘을 함께 하는 인생 만화로 자리 잡을지. 기름을 만땅으로 채운 자동차는 고속도로에 올라섰다. 그 앞에 무엇이 기다릴지는 “절대 예측할 수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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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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