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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3 (일)

[영상2도]군복 입은 정치인의 '조폭형 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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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사태 다룬 영화 '서울의 봄'

확실한 보상·가차없는 축출 원칙

전두환은 '군복 입은 정치인'인 셈

"너희들 모두 서울대 갈 수 있었잖아! 돈 없고 백 없고 가난해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공부시켜주는 육사에 온 거잖아. 그런데도 앞의 똥차들 때문에 별을 못 달고 있는 거잖아."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전두광(황정민)이 대령 이하 장교들을 구슬리며 하는 말이다. 없던 욕망도 샘솟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이른바 '조폭형 의리'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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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은 지지자에게 확실히 보상하라는 원칙을 중시했다. 하나회 후배들을 군 요직에 인사 발령내고 진급에 혜택을 줬다. 간첩 체포에 실패한 하나회 장교가 간첩을 잡은 비(非) 하나회 장교보다 먼저 진급할 정도였다.

그는 작은 것에 감동하는 사람의 약점을 잘 이용했다. 고나무 팩트스토리 대표가 쓴 '아직 살아있는 자 전두환'에 따르면 어린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전 제일비료 회장 이맹희에게 소령 시절인 1960년대 초부터 줄곧 불고기 값을 받아 육사 11기 동기회에서 회식비로 냈다. 대위 때부터 박정희에게 받은 하사금도 자기가 다 쓰지 않았다. 봉투에 30~50만 원을 넣어 하나회 후배들에게 줬다. 생활비로 쓰지 말고, 부대 상사나 자기 조직에서 다른 사람하고 식사할 때 쓰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전두환은 반대편을 회유할 때도 비슷하게 접근했다.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구출하려고 고군분투한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도 대상 가운데 하나였다. 12·12 군사반란 개시 1주일 전 비서실장 허화평 대령을 통해 봉투를 전달했다. 거기에는 직접 만년필로 쓴 메모지와 함께 수표 한 장이 들어있었다. "형님, 얼마 되지 않지만, 집의 김장에 보태쓰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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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심을 가장한 계산된 행동이었다. 수족처럼 부려 먹을 준비 단계였는지도 모른다. 패권을 잡은 뒤 행보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전두환 집권의 일등 공신은 '3H'로 불린 육사 17기 허화평과 허삼수, 18기 이학봉. 보안사령부에서 전두환을 보좌하며 12·12 군사반란에 주도적으로 관여했다. 5공화국이 들어서자 하나같이 군복을 벗고 청와대 비서관이 됐다. 전두환은 이들의 커가는 권력을 견제했다. 박철언 같은 민간 출신 엘리트를 보좌관으로 중용했다. 허화평과 허삼수는 결국 1983년 청와대에서 축출됐다.

전두환은 자기편이 아니면 가차 없이 내쳤다. 죽마고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버지 이병철과 사이가 나빠진 이맹희는 영덕에 정착해 새 삶을 준비하려 했다. 그러나 집 지을 돈을 은행에서 융자받지 못했다. 그는 전두환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영덕에 거주하고자 시도했던 일은 내게 오랜 친구를 마음속에서 잃어버리는 상처만 남겨주었다."

전두환은 생전 12·12 군사반란은 쿠데타가 아니라 수사의 연장이었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자신은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고 항변했다. 진짜 군인은 정치가 아니라 안보에 유능하다. 정치력이 아니라 전투력으로 인정받는다. 부하도 끝까지 지킨다. 전두환의 발자취에서 그런 면면은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그저 하나회 멤버들의 유교적 가부장에 가까워 보인다. 보안사령관에 오르기 전에도 군복 입은 정치인이었던 셈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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