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서울대 공과대학 교수실에서 김태유 교수가 매일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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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완전히 망했네요(Korea is so screwed)."
지난 7월 EBS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법대 명예교수가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을 확인하자마자 내놓은 반응이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8명이었고 올해 2분기 합계출산율은 0.7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통상 연말로 갈수록 출생아 수가 줄어드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0.6명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 이런 인구 소멸 위기가 대한민국에 미칠 영향은 생산력과 성장률 저하, 국민연금 고갈, 의료비, 병역 문제 등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다.
매일경제가 만난 문명사학 권위자 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는 "빼앗긴 나라는 되찾을 수 있어도, 소멸한 나라는 되찾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저출산에 따른 인구 위기가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 강점보다 더 심각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정부와 국회, 언론, 학자들까지 저출산의 심각성을 이야기하지만 올바른 진단이나 대안은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김 교수의 해법은 지금까지의 출산율 제고 중심 해법들과는 궤가 다르다.
김 교수는 "한국이 해결해야 할 인구 문제의 본질은 출산율이 아닌 부양비"라며 "연령별 분업에 기초한 이모작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구체적 정책 대안을 제시했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한국이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겪는 이유는.
▷청년들이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품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는 통계와 연구를 통해 증명됐다. 이스털린의 상대소득이론에 따르면 부부는 그들이 과거보다 장래 경제 상황이 좋아질 것으로 판단될 때 출산을 선택한다. 지난 30여 년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하락세를 지속해온 탓에 청년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오늘보다 더 나은 세상을 살아갈 수 없지 않을까 우려하게 된 것이다. 자녀들을 좀 더 좋은 환경에서 키우고 싶은 청년층의 책임감이 출산율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정부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지난 17년간 저출산, 고령화 대책에 380조원이라는 막대한 국민 세금이 투입됐다. 그런데 결과는 어떠한가. 지난해 기준 합계출산율이 0.78명까지 떨어졌다. 우리나라의 출산율 제고 정책은 참담한 실패인 셈이다. 지금 청년들은 내 집 마련은 꿈도 못 꾸고 자녀 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다. 이들에게 출산지원금 몇 푼 쥐여주면 아이를 낳을 거라는 주장은 순진한 발상이다. 선진국에서도 이런 현금성 지원은 성공한 적이 없다. 혹자는 프랑스의 성공 사례를 언급하지만 사실 정부 지원에 의해 출산율이 올라간 것은 프랑스 여성들 때문이 아니고 이민 온 알제리계 여성들 덕분이었다.
―저출산이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인가.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를 국가사회적 위기라고 우려하는 이들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최근 80억명을 넘어선 세계 인구가 계속 증가하면 자원 고갈과 환경 파괴로 인류는 곧 멸망한다. 세계적인 저출산 추세는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과잉 인구 문제를 해소하는 과정이다. 저출산은 인류문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축복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합계출산율 1.6명까지는 저출산의 충격을 견딜 수 있다. 그러나 그 반도 안되는 한국 합계출산율 0.78명은 재앙이다. 저출산 속도가 너무 빨라 '부양비'가 높아지면 연금, 의료보험 등이 부도나서 사회 안전망이 무너지고 국가 경제가 붕괴될 위기에 처할 것이기 때문이다.
―부양비 문제가 그렇게 심각한가.
▷부양비란 일하는 청년의 숫자분에 부양받는 노인의 숫자이다. 과거 1999년까지만 해도 청년 3명이 일해서 노인 1명을 부양했다. 하지만 2030년이 되면 1명이 일해서 1명을 부양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젊은 사람들의 허리가 휘는 게 아니라 부러진다. 인구 정책 목표를 출산율 제고가 아닌 부양비 개선으로 바꿔야 한다. 부양비 개선으로 청년이 행복한 사회가 되면 그들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
―개선할 방법이 있나.
▷일하는 사람을 늘리고 부양받는 사람을 줄이면 된다. 그러나 무턱대고 정년을 연장하는 것은 개악이다. 정년 연장은 풍선효과로 청년 실업을 초래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년 연장으로 근로자 평균 연령이 고령화되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신기술에 적응하기 어려워 철강·기계·자동차·가전 등 기간산업이 국제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노후 창업 지원은 자영업 경쟁을 심화시켜 파산자만 양산할 것이다. 이처럼 난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여 년간 연구를 거듭한 끝에 발달심리학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어떤 해결책인가.
▷세대 간 분업이다. 발달심리학에 따르면 20~40세 청년층은 계산력·창의력·추리력 등 유동지능이 높다. 이는 기술·경영·패션 등의 직업에 적합한 능력이다. 반대로 50세 이상의 고령층은 결정지능이 높아지는데, 이는 이해력·판단력·인내력 등 행정·관리·상담 등의 직업에 적합한 능력이다. 결국 청년은 유동지능이 필요한 '일모작' 직업군으로 진출하도록 하고 은퇴할 때쯤 결정지능이 필요한 '이모작' 직업으로 옮기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부양받는 세대였던 55~74세 장년층을 경제활동인구로 편입할 수 있고, 청년의 부양 부담도 덜어줄 수 있다.
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
△1951년 부산 출생 △서울대 공과대 공학과 졸업 △미국 웨스트버지니아대 경제학 석사 △미국 콜로라도광업대 경제학 박사 △서울대 공과대 자원공학과·산업공학과 교수 △2002년 한국자원경제학회 회장 △2003년 대통령 정보과학기술 수석보좌관 △2005년 외교통상부 에너지 자원 직명대사 △2006년 국가에너지위원회 위원 △2007년 한국혁신학회 회장 △2017년 북방경제협력위원회 민간위원
[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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