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시행 독거노인·장애인 정책 뿐
무관한 정책 끼워넣어 부풀리기도
“지역·인구학적 특성 반영해야” 지적
서울 마포구에서 실시하는 청년 1인가구 커뮤니티 지원 사업에 참여한 청년들이 모임 활동을 하고 있다. 마포구는 올해 3월 사회적 단절 위기에 놓인 청년 1인가구를 돕기 위해 이 사업의 참여자를 모집했다. 마포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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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가구는 ‘불완전’하거나 ‘비정상적’인 가구 형태로 인식되곤 한다. 수적으로 가장 우세한 가구 형태임에도 사회 일각에선 ‘저출생 고령화’를 초래하는 문제적 현상으로 지목한다. 하지만 10명 중 3.5명이 1인가구인 시대에, 혼자 살아가기조차 버거운 사회는 저출생에도 고령화에도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어떻게 하면 혼자라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까. 한겨레는 전국 광역·기초지방자치단체 243곳에 대한 전수조사를 통해 1인가구 정책 전반을 진단하는 한편, 한국의 1인가구는 어떻게 살고, 무엇을 원하는지 직접 들었다. 1인가구 정책의 바람직한 변화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1인가구 비율이 높은 일본·오스트레일리아(호주)·스웨덴의 정책 사례도 하나하나 짚어봤다. 편집자
전국 광역시·도와 기초자치단체 5곳 중 1곳은 1인가구를 위한 정책이 부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책이 있는 경우도 지역에 거주하는 예술가 지원, 지역 살리기 사업 등 1인가구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거나 기존에 시행해오던 복지 정책을 1인가구 정책으로 포장한 사례가 적지 않다. 급증하는 1인가구의 성·연령·지역 등 인구학적 특성이 반영된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한겨레가 전국 17개 시·도와 226개 시·군·구에 현재 실시 중인 1인가구 정책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해보니, 올해 6월 기준 243개 지자체 가운데 52곳(21.4%)이 “별도의 1인가구 정책이 없다”고 답했다. 정부 차원에서 벌이는 ‘독거노인 및 중증장애인’ 정책만 시행하고 있거나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못한 지자체도 적지 않아 실제 1인가구 정책이 없는 지자체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 은평구 1인가구지원센터에서 1인가구 주민에게 ‘정리수납 컨설팅’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정리수납 컨설팅’은 생활환경 정리가 어려운 1인가구에 정리수납 전문가를 파견해 정리 요령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은평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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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 살리기’ 사업이 1인가구 정책?
1인가구가 지자체의 정책 대상자로 포함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고령 1인가구는 그동안 ‘독거노인’이란 개념으로 정책이 이어져왔지만 청년, 중장년, 여성 등 다양한 인구학적 특성을 가진 1인가구 정책은 부족했다. 서울시가 2016년 조례를 제정하면서 1인가구 정책의 포문을 열었고, 대부분의 지자체가 최근 3년 사이 정책을 다듬기 시작했다. 한겨레가 243개 지자체가 제출한 각 1인가구 정책 예산을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전국 1인가구 정책의 절반은 지난해와 올해 시작됐으며, 올해 처음 시행하는 사업도 23.7%나 된다.
지자체들은 최근에야 1인가구 정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아직 시작하는 단계라 1인가구와 크게 상관없는 정책을 끼워 넣고 ‘부풀리기’한 경우도 많았다. 세종시는 주민을 위한 무료 법률 상담 정책과 관내 ‘다문화 가구’가 대상인 정책을 1인가구 정책으로 제출했으며, ‘2023년 경기도 1인가구 지원 시행계획’에는 예술인과 예술단체를 지원하는 정책이 담겼다. 강원 양양군, 경북 울릉군, 전북 순창군 등은 전입 세대에 현금이나 상품권을 지급하는 일명 ‘지역 살리기’ 사업을 1인가구 정책에 포함했다.
정책 대상자의 욕구를 파악한 사업을 시행하기보단 고정관념에 의해 패턴화된 정책을 내놓는 경향도 보였다. 여성 1인가구에 대한 정책은 방범 장치를 지급하는 사업이, 청년 1인가구에 대한 정책은 또래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사업이 주를 이뤘다. 여성에게 안전 정책이, 청년에게 사회관계망 정책이 필요하지만, 다양한 수요를 파악하지 못하고 한 종류의 정책만 양산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노인 1인가구는 인공지능(AI)이 주기적으로 안부 전화를 걸거나, 돌봄로봇을 지급하는 등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사업이 많았는데,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에겐 오히려 정책 효과가 반감된단 지적도 나온다.
경남 거제시 한 사회복지관 관계자는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한 돌봄로봇 등이 보조적으로 사용될 순 있지만, 궁극적으로 고령 1인가구를 고립되지 않게 하려면 대화를 나누고 얼굴을 맞대야 한다”며 “사물인터넷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웃을 만들고 어울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지향점”이라고 말했다.
반면, 1인가구의 특성을 파악해 발상의 전환을 담아낸 정책도 있다. 서울 성동구는 반려동물 정책을 1인가구 정책에 포함해 시행한다. 반려동물을 홀로 사는 사람에게 중요한 요인이자 가족으로 바라본 셈이다. 실제로 올해부터 성동구는 여성가족과에 반려동물정책팀을 포함했다. 기초지자체로서는 드물게 1인가구정책팀도 구성했다. 성동구 관계자는 “반려동물은 기존에 지역경제과 축산업 분야에서 담당했는데, 다양한 1인가구 특성과 반려동물을 가족 구성원으로 바라보는 주민들을 고려해 조직을 개편했다”고 설명했다.
서울 양천구에서 올해 6월 1인가구 등 안전취약계층의 야간 통행길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주거안심 스마트보안등’을 설치하고 있다. 스마트보안등은 안심이앱을 설치한 구민이 접근하면 조명이 밝아진다. 이를 활용해 위급 상황이 발생하면 휴대전화를 흔들어 조명을 깜빡거리게 해 위험 상황을 주변에 알릴 수 있다. 양천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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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인구학적 특성 반영해야
일부 지자체는 지역 특성을 반영해 연령별, 성별로 섬세한 정책을 설계하려는 첫발을 뗐다. 관내 1인가구의 분포를 살펴보고 그들의 욕구를 조사하는 실태조사가 그 출발점이다. 광주 지자체 중 1인가구 정책이 가장 많은 동구는 다른 기초지자체는 1인가구 비율이 30%대지만 동구만 41.3%에 달하는 특징을 발견하고 1인가구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그 결과 광주 다른 지자체의 3배 이상에 달하는 정책이 만들어졌다. 서울 서대문구의 1인가구 용역 보고서에는 성별·연령별 그룹화에 더해 1인가구가 느끼는 동별 동네 이미지와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까지 담아내기도 했다.
1인가구 정책을 세심하게 짜기 어려운 이유는 지역·성·연령 등 배경이 다를수록 그들이 처한 상황과 수요가 매우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김경태 희망제작소 지역혁신센터 부연구위원은 “1인가구의 욕구는 하나로 수렴되지 않지만 지역적, 인구학적 특성뿐 아니라 산업 구조도 (정책에)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1인가구의 공통점을 바탕으로 지역·인구학적 특성을 촘촘하게 반영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1인가구를 하나의 집단으로 보기엔 이질적일지라도, 홀로 사는 사람들이 가진 공통점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변미리 서울연구원 도시모니터링센터장은 “1인가구의 핵심은 빈곤과 사회적 관계에서의 고립”이라며 “이런 공통점을 바탕으로 청년, 중장년, 노인 등 연령별 특성을 고려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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