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은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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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영업 현장에서 고객의 이름·전화번호·생년월일 등 개인정보가 담긴 데이터베이스(DB)를 판매하는 불법 거래가 성행하고 있다. 실손보험 설문조사 전화를 가장해 개인정보 제공 동의를 얻어낸 뒤 이를 불특정 다수의 보험설계사에게 판매하는 수법이다. 이는 결국 무분별한 보험 가입을 권유하는 ‘스팸 전화’로 이어질 수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보험설계사 등 보험업계 관계자들이 가입해 활동하고 있는 한 인터넷 카페에는 “100% 만남 확정 DB를 특별가로 공급한다”며 “시중에 나와 있는 만남 확정된 2차 ‘퍼미션 DB’보다 저렴한 금액이다”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글 작성자는 애프터서비스(AS) 조건으로 거절·장기부재·오번호 등을 제시했다. 구매한 개인정보로 영업 전화를 걸었는데, 고객이 설계사와의 만남을 단번에 거절하거나 장기간 연락이 닿지 않으면 다른 고객의 개인정보로 교환해 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개인정보를 어떤 경로로 확보했는지 밝히지 않았다.
보험업계에서 ‘DB 영업’은 고전적인 영업 방식 중 하나다. 다양한 경로로 개인정보를 확보하면, 설계사가 이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보험 리모델링을 해주겠다”는 명목으로 방문상담과 상품 가입을 추천하는 식이다.
개인정보가 담긴 DB는 인터넷에서 무료 배포 등으로 떠돌아다니는 ‘막DB’와 홈쇼핑 광고 등에서 상담에 동의한 고객 명단인 ‘아웃바운드 DB’, 보험 가입을 희망해 상담신청을 한 고객인 ‘인바운드 DB’ 등으로 나뉜다. 개인정보 확보 방식과 무관하게 설계사 방문상담에 동의한 고객 명단은 ‘퍼미션 DB’로 불린다. 퍼미션 DB는 보험 계약 성사 가능성이 커 개인정보 1건당 10만원이 넘게 거래되고 있다.
실제 서울 강남 소재의 한 컨설팅 업체는 퍼미션 DB를 개당 18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60~70세 고령자 DB와 30대 젊은 고객 DB는 각각 6만원, 화재보험 관련 DB는 4만원이었다. 업체는 DB 수집 경로에 대해 제주도 여행 상품권 증정 이벤트와 온·오프라인 쇼핑몰 상품 구매 과정 등이라고 밝혔다.
특히 업체는 실손보험 관련 설문조사 전화를 가장해 개인정보 제공 동의를 얻어낸 것으로 나타났다. 정보 제공에 동의한 고객에게 전화상담을 진행, 설계사 방문 약속까지만 받아낸 뒤 이를 불특정 다수의 설계사에게 퍼미션 DB로 판매하는 것이다. 고객은 전화통화를 한 업체 소속 설계사와 만나는 것으로 알지만, 실상은 무관한 설계사와 상담을 하는 셈이다.
업체는 이러한 의심을 피하기 위해 DB를 구입하는 설계사에게 “(전화상담을 하는) 조직에 소속돼 활동하는 지역 전문가로 포지션을 설정해달라”고 요구했다. 또 비영업 조직의 보험분석 지원센터 소속 또는 다수 상담에 따른 인센티브를 받는 직원임을 밝히라고 추천했다.
고객 개인정보가 담긴 데이터베이스(DB)를 판매하고 있는 여러 업체들.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 /인터넷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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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동의를 받고 DB를 만드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이를 제3자에게 넘기면 불법이다. 고객이 특정 보험사에 개인정보를 제공하기로 동의하면, 회사 소속 설계사만 고객에게 영업 전화를 할 수 있는 것이다.
DB 판매업자들은 제3자 정보제공 동의를 받았다고 홍보하지만, 편법일 가능성이 크다. 제3자 정보제공 동의를 받을 땐 개인정보를 넘겨받는 사람의 이름과 연락처를 고객에게 알린 뒤 동의 여부를 물어야 한다. 하지만 DB를 구입하는 사람 대다수는 불특정 설계사이기 때문에 판매 전 고객 동의를 받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앞서 한국보험대리점연합회는 지난 7월 각 보험대리점에 “실손의료보험 관련 여론조사를 빙자해 소비자에게 전화통화로 접근하고 이를 보험영업에 활용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어 민원이 지속되고 있다”며 “이는 금융소비자보호법과 개인정보보호법 등 관련 법률 위반 소지가 있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보험업계에선 이런 영업 행태는 소비자의 피로도를 상승시키고, 결국 보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질 수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깨알 같은 글씨로 슬쩍 제3자 정보제공 동의를 받고 제대로 된 고지를 하지 않아 문제가 된 적이 많다”며 “정상적인 텔레마케팅(TM)이 아닌 음성적인 거래는 없어져야 한다”고 했다.
이학준 기자(hakju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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