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주로 찾는 세종시 어진동의 한 정부부처 인근 한식당 메뉴판. 한우 불고기를 먹을 수 있는 2만8000원 짜리 정식 메뉴도 갖췄다. 세종=김기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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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낮 12시 정부부처가 밀집한 세종시 어진동의 한 소고깃집. 점심시간인 만큼 고기를 굽는 사람이 드물었다. 4만9000원짜리 ‘한우 생등심 정식’ 대신 2만8000원짜리 ‘불고기 전골’이나 ‘보리굴비 정식’을 시킨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식당 관계자는 “공무원 손님이 대부분이라 김영란법(청탁금지법)을 지켜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며 “값비싼 한우만 팔 수 없어 3만원 아래 점심 메뉴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김영란법의 음식값, 선물 한도 규제 등이 너무 현실과 동떨어져 있으니 개선해 달라”고 주문한 뒤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16일 “시간과 여건 등을 비춰 봤을 때 (김영란법 규제를) 현실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16년 김영란법을 시행한 뒤 줄곧 유지한 식사비 한도(3만원) 상향부터 검토 중이다.
정부가 나선 건 고물가로 얼어붙은 국내 소비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22일 통계청에 따르면 소비 동향을 나타내는 소매판매는 올해 3분기 기준 1년 전보다 2.7% 하락했다. 6분기 연속 뒷걸음쳤다. 1995년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래 가장 긴 감소세다.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차지하는 소비가 반등해야 1%대로 전망한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
외식업계에선 식사비 규제를 폐지하거나, 상한선을 최소 5만원으로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김영란법 시행에 따라 외식업계 매출이 연평균 8조5000억원 줄어든 것으로 추산했다. 식사비 한도를 5만원으로 올릴 경우 연평균 손실이 4조7000억원으로 줄어든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가뜩이나 고공 행진하는 외식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이 고민거리다. 외식 물가가 올랐다지만 재료나 반찬을 줄이더라도 점심시간에 한 끼 2만9000원짜리 일명 ‘김영란 세트’ 메뉴를 유지하는 식당도 많아서다. 세종시 청사 인근에서 복집을 운영하는 한 사장은 “임대료·식재료비·인건비가 모두 올라서 단가를 맞추기 어렵지만, 여전히 찾는 사람이 많아 7년째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게다가 김영란법 시행 초기와 달리 식사비 한도를 액면 그대로 지키지 않는 경우가 늘었다. 밥값을 기록해야 할 경우 참석 인원을 부풀려 1인당 비용을 줄이는 편법을 쓰는 식이다. 가까스로 지켜온 식사비 한도를 5만원으로 상향할 경우 자칫 김영란 세트 가격만 기존 2만9000원에서 4만9000원으로 올릴 명분을 줄 수 있다.
실제 올해 초 행정안전부가 공무원 여비(숙박비) 한도를 서울 기준 기존 7만원에서 10만원으로 상향하자 공무원이 국회 업무를 위해 대거 묵는 여의도 일대 호텔의 1일 숙박비가 일제히 10만원으로 오른 사례도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식사비 한도를 올려 소비라도 늘리면 다행인데, (소비는 그대로고) 체감 물가만 오르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편법적인 물가 인상이 문제가 된 상황에서 ‘김영란플레이션(김영란법+인플레이션)’까지 덮칠 수 있다”고 말했다.
여전히 부정적인 국민 여론도 고려해야 한다. 아무리 외식물가가 올랐다 해도 일반 직장인이 한 끼 3만원 이하로 해결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다. 권익위가 지난해 11월 성인남녀 2678명을 설문한 결과 58.8%가 식사비 한도 상향에 반대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섣불리 개정했다가 국민 정서를 건드릴 가능성이 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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