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문서합의 258건 중 상당수 사문화…정부 "北안보위협 고려한 결정"
북한 정찰위성 발사 뉴스 |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오수진 기자 = 정부가 22일 9·19 남북군사합의('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 일부 조항의 효력을 정지한 것은 남측이 먼저 남북합의 이행 중단을 선언한 첫 사례다.
22일 통일부에 따르면 1971년 남북 당국 간 최초로 체결된 '적십자 예비회담 진행 절차에 관한 합의서' 이후 현재까지 문서로 채택된 남북 합의는 총 258건이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합의만 해놓고 이행되지 않는 등 이미 사문화됐거나 북측의 일방적 파기에도 남측만 계속 이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1992년 채택된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며 일방적으로 파기했고 한국만 계속 지키고 있다.
현재까지 북한은 남북합의에 대해 5회 이상 '폐기', '무효화', '백지화' 등을 공식 선언했고 김여정이 직접 여러 차례 파기 가능성을 위협하기도 했다.
2009년 1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성명을 통해 '정치군사적 대결 상태 해소와 관련한 모든 합의사항 무효화'를 선언했고. 2013년 3월엔 조평통이 '남북 간 불가침 합의' 전면폐기 성명을 냈다.
반면 우리는 9·19군사합의 효력정지 이전까진 남북 합의에 대해 폐기, 파기, 백지화, 효력 정지 등 어떤 형태로든 이행 중단을 공식 선언한 적이 없었다.
이는 정부가 중장기적으로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을 고려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잘못된 부분이 있더라도 먼저 합의를 깬다면 향후 북한과 협상에서 트집잡힐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9·19 남북군사합의(CG) |
정부가 역대 정부 '최초' 사례라는 부담을 무릅쓰고 효력 정지에 나선 것은 군사적으로 군사분계선 일대 공중정찰 복원이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을 만나 "북한에 의해 야기되는 심각한 안보 위협 상황에서 법 조항에 근거해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남북관계발전법) 23조 2항은 '대통령은 남북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거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기간을 정해 남북합의서의 효력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지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북한이 지키지 않으면 우리가 그냥 상응해서 지키지 않아 사문화하면 되는 것이지 효력 정지와 같은 절차도 사실 필요 없다"며 "윤석열 정부가 실정법('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효력 정지 절차를 거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작년 말 북한의 무인기가 용산 상공까지 침투했을 때 곧바로 공중정찰을 복원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정부 내에선 9·19군사합의의 효력 정지 절차 없이 사문화로 간주해 군사 태세를 복원하는 방안도 검토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래픽] 9·19 군사합의 일부 효력 정지 |
이와 함께, 정부는 이번에 9·19군사합의 일부 조항의 효력을 정지하면서 그 기간을 '남북 간 상호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로 정했는데, 이는 북한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성윤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장은 "기간을 정해서 효력을 정지한다는 것은 북한의 행동이나 남북관계 상황에 따라 합의를 되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정확한 시점을 명시하지 않은 효력 정지가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에 "안보 위협 해소 시점을 특정하기 어려운 특수성을 감안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일각에선 정부의 일부 효력 정지는 실질적으로 파기와 같으며 우리 국민의 부담과 손해가 더 클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은 "북한은 곧 외무성이나 국방성 담화 또는 정부 차원의 성명을 내고 9·19 군사합의와 4·27 판문점 선언 전면 파기를 선언하고 해안포 포문을 열면서 무력시위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tr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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