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8 (일)

이슈 대한민국 저출산 문제

저출산 대책, 고학력 여성의 결혼 포기 문제에 집중하라![홍춘욱의 경제 지평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3>미국 고학력 여성 결혼·출산율 높은 이유
美, 같은 학교 나와도 임금 격차 45%
고소득 유연한 일자리 확대로 출산율↑
"유연한 일자리 전환 적극 지원하고
교육 예산 전용도 검토해야"

편집자주

국내 대표 이코노미스트인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가 세계 경제의 흐름과 현안을 진단하는 ‘홍춘욱의 경제 지평선’을 3주에 1회 연재합니다.
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8월 인구동향’ 보고서를 보면 출생아 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2.8% 줄어든 1만8,984명으로 나타나 올해 출산율은 역사상 최저 기록을 또 경신할 전망이다. 한국 출산율은 대체 왜 세계 최저 수준에서 반등하지 못하는 걸까.

이 의문을 푸는 데 미국 하버드대 클로디아 골딘 교수의 연구가 큰 도움을 준다. 골딘 교수는 미국 고학력 여성의 생애를 연구하면서 남녀 임금 격차가 나타나는 원인은 물론, 최근 미국 대졸 여성의 결혼‧출산율이 높아지는 이유를 밝혀낸 공로로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골딘 교수의 연구 중 가장 유명한 건 미국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을 졸업한 약 2,500명의 생애에 걸친 임금을 추적 조사한 것이다. 졸업 직후 여성과 남성의 임금은 큰 차이가 없었지만 졸업 후 10년이 지나면서 소득 격차가 무려 45%나 벌어진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줬다.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결혼 이후 남성과 여성이 선택한 일자리의 성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기른 경험이 있는 가정이라면 아이가 언제 아플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루 종일 잘 놀다 잠든 후에 열이 펄펄 오를 때도 있고, 신나게 놀이터에서 뛰어놀다 다리를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곤 한다. 이때 누군가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야 한다. 유연한 일자리, 즉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조절 가능하고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장을 가지고 있다면 아이 데리고 병원 가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일자리에 취직하려는 여성이 많을 것이기에, 상대적으로 임금 수준은 낮다.

유연한 일자리의 반대편에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일자리가 자리 잡고 있다. 필자가 모 금융기관에서 운용역으로 일할 때, 거의 매주 일요일마다 출근해야 했다. 주말 해외 증시에 큰 변화가 있을 때마다, 혹은 중요한 감사가 있을 때마다 회사에 수시로 불려 갔다. 특히 가장 인상적인 경험은 휴가를 내고 아이들과 함께 서울 근교의 산을 걷고 있을 때 받은 전화였다. 부재중 통화가 10건 정도 찍혀 있는 것을 보고 회사에 전화를 걸었더니 "왜 전화 안 받느냐"는 역정과 함께, 당장 회사로 오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산 밑으로 내려와 어린아이들만 택시를 태워 보내면서 회사로 출근하는 길은 너무나 힘들었다.

골딘 교수는 이런 종류의 일자리를 '탐욕스러운 일자리'라고 지칭한다. 탐욕스러운 일자리는 언제 어느 때라도 전화를 받을 준비가 돼 있는 대신, 보상도 크다. 승진 혹은 경력을 관리하기 좋은 부서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아지며, 퇴사 후에도 다른 곳으로의 전직 기회가 제공될 수 있다. 따라서 탐욕스러운 일자리는 연봉도 높고 경쟁도 치열하며, 근무시간도 길다. 신입 시절에는 탐욕스러운 일자리에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기회를 받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남성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가 잦다. 왜냐하면 출산과 육아 문제로 인해 많은 여성이 유연한 일자리로 전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현상이 가정 전체로는 크게 해롭지 않다. 바로 '아버지 효과'가 생기기 때문이다. 아버지 효과란, 동일한 연령대 및 교육 수준을 가진 미혼 남성에 비해 아이를 둔 기혼 남성의 소득이 더 높아지는 현상을 뜻한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에 대해 크게 두 가지의 설명이 있다. 첫 번째는 책임감이 커져 회사에서 더 인정받게 된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에 대해 많은 아버지가 동의하겠지만 능력자들이 결혼에 성공한 것이 원인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느끼는 독자가 많을 것 같다. 두 번째 설명은 바로 분업 효과다. 즉 아내가 유연한 일자리에 종사하거나 전업주부로 일하기 때문에 남성이 탐욕스러운 일자리에 전념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여기까지 읽은 다수 독자는 ‘미국은 왜 고학력 여성의 결혼‧출산율이 높아졌는가’ 질문할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소득 수준이 높은 유연한 일자리가 급격히 늘어난 데 있다. 과거에는 미국에서도 고학력 여성이 결혼을 기피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왜냐하면 탐욕스러운 일자리에서 유연한 일자리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많은 경제적 이익을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1980년대까지 미국 고학력 여성의 상당수는 아예 결혼을 기피하고 평생 아이를 낳지 않는 길을 걸어갔다.

이런 흐름에 변화가 나타난 것은 1990년대의 일이었다.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고학력 여성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는 가운데, 탐욕스러운 일자리들이 유연한 일자리로 변해 갔다. 가장 대표적인 변화가 바로 약사로, 과거 미국의 약국은 약사 한 명이 조제 업무를 담당하고 다른 이들이 보조하는 형태였기에 탐욕적인 일자리의 전형이었다. 그러나 대규모 약국체인에 포함된 결과 표준화한 업무 절차를 갖추고 정해진 근무시간을 충족하면 되는 유연한 일자리로 변신했다. 그리고 고소득을 제공하는 유연한 일자리가 늘어나는 가운데, 고학력 여성의 출산율이 다른 교육 수준의 여성을 압도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왜 1990년대부터 큰 변화가 나타났을까.

그 이유는 바로 '숫자'에 있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을 크게 넘어선 가운데 30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60% 선을 뛰어넘자 기업들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됐던 것이다. 정보기술(IT) 혁명이 가속화하며 교육 수준이 높은 근로자에 대한 수요가 높아진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컴퓨터와 인터넷 등 새로운 업무 환경에 대한 적응력은 언어 및 수학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높은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2020년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활성화하면서 소득이 높은 유연한 일자리의 숫자는 더욱 많아졌고, 고학력 여성의 출산율도 평균을 크게 웃돌게 됐다.
한국일보

미국의 학력별 여성출산율. 신동준 기자


위와 같은 미국 사례는 한국의 저출산 정책당국에 두 가지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 번째는 탐욕적인 일자리들이 유연한 일자리가 될 수 있도록 제도적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둔 근로자에 대해선 재택근무 가능, 야근 면제 등의 제도 도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포스코를 비롯한 일부 대기업만 비슷한 제도를 운용 중이지만, 법안 형태로 만들어진다면 큰 변화를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두 번째는 금전적 보상이다. 헝가리처럼 출산 의사를 가진 여성에게 거액의 대출을 제공하는 한편, 실제로 자녀를 출생하는 순간 이자를 면제해주는 것은 물론 원리금을 탕감해주는 등의 제도를 도입하면 출산에 따른 기회비용을 떨어뜨릴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재원 문제가 대두될 수 있지만 학령인구 감소로 여력이 남아도는 교육 예산을 전용함으로써 얼마든지 부담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된다.

한국일보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