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미국 일상 속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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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길거리를 걷다 보면 때때로 건물 앞, 광장 등에서 커다란 쥐를 마주하게 된다. 맨해튼 곳곳에 뉴요커보다 더 많이 산다는 보통의 쥐와는 확연히 다르다. 300cm를 웃도는 키, 새빨갛게 충혈된 눈,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 회색 PVC 재질로 만들어진 대형 풍선 쥐는 주로 '스캐비'(Scabby the Rat)로 불린다.
스캐비는 지난 수십년간 미국에서 ‘노동쟁의 현장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어떤 곳에 스캐비가 서 있다면 근로자 또는 노동조합과 고용주 간 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홀로 부당노동행위에 맞서는 개인 근로자의 시위는 물론, 올해 뉴욕에서 진행된 할리우드 작가들의 파업 시위에도, 지난해 필라델피아에서 노조 결성과 관련한 파업이 진행된 스타벅스 매장 앞에도 바로 이 스캐비가 등장했다.
미국에서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아마존, 스타벅스 등 기업들의 노조 설립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각종 노동쟁의와 파업도 대거 급증한 상태다. 올 들어서만 해도 할리우드 방송·영화 작가, 배우·방송인, 자동차, 의료노조 등 대규모 파업이 곳곳에서 잇따랐다. 이들 현장에 모두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스캐비의 활동도 더 활발해졌다.
최근 근로손실일수만 봐도 미국 내 노사분규가 얼마나 급증했는지 드러난다. 근로손실일수는 노사분규가 직접적인 원인이 돼 발생한 사회적 손실을 근로일수로 측정한 지표다. 지난 8월 기준 400만일을 넘어섰다. 근로손실일수가 400만일을 웃돈 것은 통신 대기업 버라이즌의 대규모 파업이 있었던 2000년 8월(418만일)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러한 노동부 자료 결과를 보도하며 "미국에서 그 어느 해보다 노동쟁의로 인해 많은 근무 손실일이 발생하고 있다. 수십 년 만에 처음 보는 노조의 영향력"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여기에 팬데믹을 거치며 근무 형태나 처우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치솟은 인플레이션에 따른 실질소득 감소,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신기술 등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최근 파업·노조 활동에 대한 미국인들의 지지도 한층 강화된 것으로 확인된다. 지난달 공개된 갤럽의 여론조사에서는 미국인 응답자 61%가 노조 활동이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답변했다.
미국 월스트리트 인근 빌딩 앞에 등장한 스캐비의 모습 |
지난 16일(현지시간)에도 미국 스타벅스 매장 수백곳에서는 역대 최대 규모의 파업이 진행됐다. 맨해튼 뉴욕대학교 캠퍼스 인근 스타벅스 매장 밖에는 ‘계약 없이는 커피도 없다(No Contract, No Coffee)’는 플래카드를 든 직원 10여명이 임금 개선, 인력 충원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이른바 ‘레드컵 데이’로 불리는 이날은 시즌 음료를 주문하는 고객들에게 재사용 가능한 붉은색 컵을 증정하는 대목 중의 대목으로 꼽힌다. 이날 파업 참여 인원은 약 5000명으로 추산된다.
스타벅스는 내년부터 직원들의 시급을 최소 3% 인상하겠다고 밝혔지만, 노조는 회사의 매출 증가율(11%)을 고려할 때 말도 되지 않는다고 난색을 보이고 있다. 이들에게는 앞서 6주간의 파업 끝에 25% 임금인상안을 거머쥔 자동차 노조가 또 하나의 승리 청신호가 된 듯하다. ‘공정한 분배’를 강조하며 자동차 기업들에 양보를 요구하고, 현직 대통령 최초로 파업 현장을 찾아 함께 하는 모습을 보인 조 바이든 대통령의 행보는 말할 것도 없다.
때마침 내년은 대선의 해다. 근무 처우부터 인플레이션까지 복합적으로 맞물린 근로자들의 불만이 파업 등으로 표출되면서 미 대선 주자들의 셈법도 한층 더 복잡해지고 있다. 당분간 미국에서 임금 인상 파업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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