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대통령 시정연설 일주일 전 국회 회의장 내 피켓·고성·야유 금지를 골자로 하는 신사협정을 체결했다. 21대 국회가 역대 국회 중 모욕·욕설·인신공격·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제출된 징계안이 가장 많은 국회라는 오명을 쓴 터에 나온 결과물이라 반향이 컸다. 신사협정은 홍 원내대표가 지난 9월 말 원내대표 선출 직후 국회의장 주재 첫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선제적으로 제안해 성사된 것이다. 그는 “10·11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제안했다”며 “그간에 비본질적 요소로 회의가 정상 진행되지 않는 데 우려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가 2일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이제원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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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 시정연설 당일 간담회에선 “(노란봉투법 등) 거부권 사용에 신중해달라고 공개적으로 말씀드렸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 등을 단독 처리할 경우 윤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홍 원내대표는 “대통령께서 한 번 정도는 그 뜻을 존중하는 게 국회, 야당과 협치하겠단 태도라 본다”며 “대통령이 계속 오만과 독선으로 갈지, 협치와 대화를 할지는 거부권 행사 여부를 보고 판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홍 원내대표와의 일문일답.
―신사협정은 언제 제안했나.
“신사협정은 10·11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제안했다. 국민의힘이 (선거 후) 정쟁성 현수막 철거 얘기하고 정쟁 제한하자고 하니깐, 후속조치로 제안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원내대표 당선되고 나서 9월 말에 첫 번째 만남 때 얘기를 했다. 국회의장 주재 하에 첫 회동이 있었고 그 때 하지말자고 얘기했다. 그 제안을 의장실에서 정리해서 이렇게 하면 어떻겠냐고 했고 그렇게 해서 급물살을 탄 거다. 의원들이 회의장 안에서 질문과 토론을 통해 자기 정책과 입장을 전달하는 게 본질 아니겠냐. 본질적이지 않은 피켓이나 고성·야유로 회의가 정상 진행되지 않는 데 대해 우려가 있었다.”
―신사협정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있다.
“여당 일부에서 (로텐더홀 침묵 피켓 시위가) 신사협정 위반이라고 하는데 신사협정의 틀을 벗어난 게 아니다. 물론 일부에서 요구한 것처럼 아예 없었으면 더 좋지 않았느냐는 얘기가 있지만 최소한의 약속은 지킨 것이다. 약속은 쌓여 가면 지키게 돼 있다. 내가 먼저 지키면 남도 지키게 된다. 이제 여당에 숙제가 떨어진 것이다. 당장 11월9일 노란봉투법·방송법을 처리할 때 여당이 필리버스터로 대응할 텐데 그 때는 (신사협정 준수의) 몫은 여당의 몫이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 이제원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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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내에서도 이견이 있지 않나.
“정당인데 당연히 그런 기류가 있을 수 있다. 우리 당만 그러겠나. 의원들이 결이 다르고 그때 그때 판단이 다를 수 있지만 의견을 모아서 큰 틀에서 한 방향으로 가게 만드는 게 리더십이다. 의원들 생각이 다 똑같으면 리더십이 필요 없다. (신사협정을 지키도록 뜻을 모아내는 게) 제 몫이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노란봉투법 등 강행이 신사협정 정신에 어긋난다고 했다.
“법안 처리는 신사협정과 관련이 없다는 걸 그쪽이 더 잘 알 것이다. 회의 운영과 관련해서 본질적인 것에 대해선 입법·정책 사안뿐 아니라 예산 문제에 대해선 지금보다 훨씬 강도높게 싸울 것이다. 여당도 마찬가지다. 싸우는 건 확실하게 싸우고 비본질적인 것으로 논의 자체를 파행시키지 말자는 것이다. 박수니 야유니 손피켓이니 이런 본질적이지 않은 것 가지고 국회가 파행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내가 얘기한 최소한의 신사협정이란 그런 것이다.“
―신사협정 연장선상에서 추가로 고민하는 게 있나.
“일단 너무 많은 것을 하면 안 된다. 국회는 학교가 아니고 정치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어떤 규정은 최소화해야 된다. 진짜 하지 말아야 될 거 한두 개만 하고 그거를 꼭 지키는 게 중요한 거다. 원내대표가 생각이 있다고 너무 많은 걸 합의하고 규정해 놓으면 지키기도 어렵고 다음 사람이 해야 될 것도 없어진다. 또 시대나 상황이 바뀌면 그게 꼭 옳은 결정이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 이것만은 꼭 해야 하는 게 필요하겠다고 하는, 최소한의 것만 합의하는 게 신사협정이라고 본다.”
―현안 얘기를 해보자. 노란봉투법은 처리하더라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예상된다.
“반대가 아니라 좀 더 숙의하자는 게 여당 입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정말 눈 가리고 아웅이다. 쌍용자동차 사건 이후 19대 국회 때부터 이 법이 나왔다. 당시 우리 당 은수미 의원, 정의당에서 노회찬 의원이 이 법을 주도했다. 벌써 10년이 넘은 법안이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아직도 대안을 못 찾았다고 하는 건 반대한다는 얘기다. 협의가 충분치 않아서, 일방 처리 때문이라고 얘기하면 굉장히 비겁한 거다. 차라리 반대한다는 게 맞다. 그 속에서 각자의 권한을 쓰는 거라고 생각 한다. 우리는 다수 의석으로서 할 수 있는 입법을 의결하는 거고 대통령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헌법적 권한으로 그 거부권을 쓰는 거다. 다만 국민들께서 그에 대해서는 판단하실 거라고 생각한다. 누가 오만한 건지 누가 독선인지.”
―그럼에도 협의하고 수렴하는 게 정치의 몫 아닌가.
“정부여당이 일방 처리하지 말라면서 어떤 협의안, 그러니까 수정된 안을 가져온 적이 없다. 법이 올라간 지 벌써 5개월이 넘었다. 그러면 마냥 기다릴 수 없는 거 아닌가. 만약 그런 식으로 협의할 테니까 기다리라고만 한다면 대한민국에서 통과될 수 있는 법안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 이제원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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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권 행사 이후 조치는 고민한 게 있나.
“대통령 시정연설 이후 간담회 때 공개적으로 말씀드렸다, 거부권 사용에 신중해달라고. 노란봉투법은 우리 당뿐만 아니라 여당을 제외한 다른 정당과 상당수의 무소속 의원들까지 다 동의해서 제출된 안이다. 그런 걸 감안하면, 상당수 국회의원들이 결정해서 하겠다고 한다면, 대통령께서 한 번 정도는 그 뜻을 헤아려보고 존중하는 게 국회 그리고 야당과 협치하겠다는 태도라고 본다. 그런 측면에서 대통령이 계속 오만과 독선으로 갈지, 협치와 대화를 할지는 그 법의 거부권 행사 여부를 보고 판단할 것이다.”
―선거제 개편은 어떻게 되는건가.
“선거제 개편은 난항이다. 여당이 선거제도 개혁에 유연성도 없고 염치도 없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가면 무조건 위성정당 만들겠다’는 식이라 협상이 난감하다. 여당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이면서 우리의 기존의 입장에서 후퇴해야 되는 건지 굉장히 고민스러운 부분이다. 이런 경우가 제일 어렵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합리적으로 의견을 수렴하려는 게 아니라 ‘내 안이 아니면 안된다’는 파트너와의 협상이 가장 어렵다. 이 문제는 결국 혼자 결정할 게 아니라 당대표를 중심으로 최고위원회와 의원총회에서 결정해야 할 사안이다.”
―공천에 가까워지면서 계파갈등이 부각될텐데.
“늘 얘기하지만 원칙과 기준을 분명히 하고 공정하고 투명하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때 다르고 저때 다르고 그러면 불신이 생긴다. 원칙과 기준이 모호해지면 안된다. 일관된 원칙과 기준이 있어야 된다. 일종의 게임의 룰이다. 지도부는 심판과 같은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계파 안배를 위해서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을 공천 주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계파의 대표를 뽑는 게 아니라 국민의 대표를 뽑는 것이다. 결국 국민을 위해서 누구보다 유능하게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을 공천해야 된다.”
―여당의 메가서울 구상에 대한 대응은 어떻게 해야 하나.
“김포 서울 편입 전에 교통 인프라 갖추는 게 우선이다. 5호선 연장을 위한 예타면제·예산편성부터 먼저 하자는 것이다. 다음은 김포 문제를 넘어서 지방 메가시티 문제에 대한 입장이 뭐냐는 거다. 이걸 같이 얘기해야 한다. 부울경, 대구·경북, 광주·전남, 충청권까지 해서 거점도시를 만드는 안에 대해 여당이 같이 협의할 생각이 있는지가 중요하다. 이런 걸 전제로 한다면 메가서울도 같이 논의할 수 있다.”
―여당에 정국 주도권을 뺏겼다는 평이 나온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메가서울 꺼낸 데 대해) 여당이 후회하게 될 것이다. 서울은 지금도 충분히 크다. 윤석열정부 이전부터 여야를 막론하고 일관되게 서울·수도권 중심의 대한민국 경제·사회 구조에 대한 문제 의식이 있었다. 국토 균형발전 전략을 추진하는 게 언제나 숙제였는데, 여당의 메가서울은 그 전략의 근간을 아무런 합의도 없이 뒤흔드는 것이다.”
김승환·최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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