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서울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하이트진로 소주 제품.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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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트진로가 9일부터 맥주 ‘켈리’, ‘테라’와 소주 ‘참이슬’ 출고가를 평균 6.8~6.9% 인상한다. 오비맥주는 지난달 11일부터 맥주 ‘카스’, ‘한맥’ 등 출고가를 평균 6.9% 올렸다. 주류 시장은 업계 1위가 술값을 올리면 경쟁 업체가 일제히 술값을 따라 올리는 경우가 많다.
물가 잡기에 집중하는 정부는 난감하다. 익명을 요구한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주류 업체에 서민 물가 부담을 우려해 출고가 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수차례 당부했다”며 “가격 인상 여부는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하지만, 식음료업계가 가격 인상을 자제하는 상황에서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정부가 예민한 건 식당 판매가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통상 주류 출고가를 상향 조정힌면 음식점·주점에서 파는 제품 가격은 곱절 이상 뛴다. 도매상과 소매상을 거칠 때마다 공급 가격의 10% 수준 부가가치세가 각각 붙어 최종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소주 가격은 인상 폭이 훨씬 더 커진다.
정부는 규제 울타리에서 형성된 독과점 구조를 이번 가격 인상의 한 원인으로 보고 있다. 주류업은 철저한 면허 사업이다. 일정 규모 이상 시설을 갖춘 경우만 할 수 있다. 소매점 유통도 제조사가 직접 할 수 없다. 반드시 면허를 받은 중간도매업자를 거쳐야 하는 식이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온라인 주류 판매를 금지한 국가는 한국과 폴란드뿐이다. 정부는 ‘국민 건강권’을 근거로 이런 규제를 유지하고 있다.
국내 소주 시장은 하이트진로가 65%, 롯데칠성음료가 15%가량을 점유하고 나머지를 지역 소주 회사가 나눠 갖는다. 맥주 시장은 오비맥주·하이트진로·롯데칠성음료 ‘빅3’ 점유율이 95% 이상이다.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오비맥주 23.2%, 하이트진로 7.4%, 롯데칠성음료 7.7%로 식음료업계에선 양호한 수준이다.
박경민 기자 |
하지만 주류 업계는 시장이 열려있고, 가격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용우 주류산업협회장은 “국내외 업체가 시장에 들어와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인데도 쉽게 뛰어들지 않는다”며 “기름이나 라면처럼 독과점 업계가 많은데 주류 업계만 유독 독과점으로 몰린다”고 말했다. 이어 “가격 인상도 원가 상승 부담을 최대한 억누르다 불가피하게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도 "소주의 주원료인 주정 가격이 연초 대비 10% 이상, 병 단가가 20% 이상 올라 불가피하게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며 "정부의 요청에 오랜 기간 가격 인상을 자제하다가, 이번에 올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병당 500원·1000원 단위로 가격을 매기는 식당에선 이미 지난해 병당 4000~5000원대였던 소줏값을 병당 5000~6000원대로 올린 경우가 늘었다. 병당 5000~7000원대인 맥주 가격도 병당 6000~8000원대로 오른 경우가 많다. 소주 1병에 맥주 1병을 시켜 이른바 ‘폭탄주’를 마실 경우 1만4000원에 육박한다는 얘기다.
가격 인상을 주류 업계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이번 술값 인상도 출고가만 따졌을 때 병·캔당 100원 미만 올린 수준이다. 하지만 출고가가 100원만 올라도 식당에선 소주·맥주 가격을 1000원씩 올리는 경우가 많다. 서울 송파구에서 양꼬치집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물가·인건비 상승에 대응하려면 음식값보다 덜 민감한 술값을 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음식 대신 술로 남기는’ 식당이 체감 물가를 올린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부분은 영세 소상공인의 생계와 맞닿아 있어 정부가 건드리기 쉽지 않다.
불투명한 가격 구조를 바꾸고, 국내 주류산업 경쟁력을 키우려면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행 규제의 기본 틀은 1909년 일제가 만든 ‘주세법’이다. 이후 수십 년간 밀주(密酒) 제조가 성행하고, 탈세가 난무하던 시절 규제가 현재까지 남았다. 그동안 수차례 규제를 개선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주세가 국세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졌고, 세정 시스템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투명해졌다”며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규제만 남기고 주세법을 '면허'에서 '인증' 위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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