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현 문화연대 활동가가 지난달 23일 서울 서대문구 문화연대 사무실에서 ‘이태원 기억 담기’ 활동에 대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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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 참사 이후 시민들은 추모를 위해 참사 현장을 찾았다. 이들의 마음이 담긴 포스트잇이 두 겹, 세 겹 벽에 붙였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세차게 불면 벽에서 떨어진 포스트잇이 거리에 휘날렸다. ‘애도하는 마음’이 이대로 사라져서는 안 된다고 여긴 이들이 떨어진 포스트잇을 모았다.
박이현 문화연대 활동가는 지난해 12월 이태원 참사 현장 벽에 붙은 포스트잇을 정리하는 ‘이태원 기억 담기’ 활동을 시작했다. 활동가들은 격주에 한 번씩 빈 상자를 들고 참사 현장을 찾는다. 박 활동가는 “포스트잇들을 그대로 두면 손안에 쥔 모래알이 빠져나가듯 훼손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기록으로 기억을 보존하자는 취지로 첫발을 뗐다”고 했다.
시민들도 함께했다. 지난 3월부터 매번 5~10명의 시민들이 활동에 동참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대구·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왔다. 택배 노동자, 다큐멘터리 감독, 고등학교 교사 등 직업도 다양했다. ‘무기력감을 이겨내기 위해’ ‘기성세대로서 책임감을 느껴서’ 등 참여 이유도 제각각이었다. 한 참가자는 “우리가 함께 사회적 참사를 기록할 때, 기억은 큰 힘을 가진다. 혼자서 외치는 기억은 멀리 뻗어 나가지 못하지만 함께 한다면 세상을 우리의 목소리로 채울 수 있을 것”이라는 후기를 남겼다.
활동을 계기로 처음 참사 현장에 온 유가족도 있었다. 박 활동가는 “유가족분이 ‘마음이 아파서 참사 현장에 올 엄두를 못 냈는데 이 활동을 계기로 용기를 냈다’고 하시더라”며 “희생자인 동생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보고 힘들어하시기도 했는데 이후에 ‘마음이 안정되면 다시 한번 오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문화연대 활동가들이 지난 10월 ‘이태원 기억 담기’ 활동을 하는 모습. 문화연대 홈페이지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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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상인과 주민들도 힘을 보탰다. 골목 안쪽 편의점은 활동가 수에 맞춰 음료를 준비했다. 활동가들이 중간중간 쉴 수 있도록 의자를 두기도 했다. 흩날리는 포스트잇을 수거해 가져다주는 주민도 있었다. 박 활동가는 “참사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이 활동으로 사회적 참사에 맞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많이 만나게 된다”고 했다.
지금껏 정리한 포스트잇은 약 20만장에 달한다. 포스트잇은 유가족·생존자의 메시지, 특정 희생자를 호명하는 메시지, 외국어 메시지, 기타 메시지로 분류된다. 박 활동가는 “참사를 겪고 나서 구조사 자격증을 땄다”는 한 시민의 메시지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포스트잇을 정리하며 박 활동가가 가장 많이 마주한 감정은 ‘미안함’이다. 그는 “추모 메시지들에는 ‘미안하다’는 표현이 유독 눈에 띈다. 많은 사람이 기성세대로서 안전한 사회를 만들지 못했다는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다”며 “정작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고 일반 시민이 사과하는 현실이 답답하다”고 했다.
분류된 포스트잇을 장기 보존하는 일은 숙제로 남았다. 박 활동가는 “제습제를 둬서 습기 영향을 줄이려고는 하지만 장기 보존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일부 부식이 일어난 포스트잇은 따로 보관하고 있다”며 “메시지를 보관할 수 있는 공적인 추모공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문화연대는 수거된 포스트잇의 디지털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박 활동가는 ‘애도하는 시민들의 힘’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국가는 애도의 ‘유효기간’이 있다는 듯 추모 기간을 설정했지만 시민들의 자발적 애도는 시간이 지나도 계속될 것”이라며 “추모 메시지에 사람들이 바라는 사회상이 담겨 있다. 추후 메시지를 통해 우리 사회를 돌아보는 계기가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참사 현장에 남긴 추모 메시지들이 정리돼 있다. 정효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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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러 가서, 죽었다[이태원 참사 1주기]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10241507001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정효진 기자 hoh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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