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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강혜승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유통조사부 부장이 중앙일보와 인터뷰에 앞서 고려 나전상자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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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일본의 한 고미술상이 고려 나전 상자를 가지고 있다는 소식이 국내에 전해졌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국에 있는 세 점을 포함해 세계적으로도 20점이 안 되는 고려 나전이 지금껏 숨어있다가 불쑥 나타났다는 걸 믿기 힘들다는 반응이었다. 그로부터 4개월 후 일본에 실견하러 다녀온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반드시 환수해야 합니다."
지난달 고려 나전 상자의 귀환은 문화재 전문가들을 흥분케 한 일대 사건이었다. 나전칠기는 옻칠한 가구 표면에 전복·조개·소라 등 패류(貝類) 껍데기를 다듬어 장식한 공예품으로, 고려청자, 불화와 함께 고려 미술의 정수로 꼽힌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환수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문화재청장이 아닌 학자로서 눈을 의심할 정도로 완벽한 상태로 남아있었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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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6일 공개된 고려 나전칠기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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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고려 나전 상자를 실견하고 환수하기까지 전 과정에 참여한 실무자 강혜승(48)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유통조사부장을 지난 23일 서울 중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다.
Q : 일본에서 나전 상자를 처음 봤을 때 어떤 분위기였나.
A : 전문가들과 함께 상자를 2시간 넘게 봤다. 나와서 회의를 하는데 세 분이 입을 모아서 '반드시 사야 한다'고 하더라. '이런 빛을 가진 나전은 처음'이라면서다. 매도자와 함께 있을 때는 그런 말을 못 한다. 갑자기 안 팔겠다고 하거나 가격을 올릴 가능성이 있어서다. 나중에 저희끼리 모여서 '표정 관리하기 힘들었다'며 웃었다.
Q : 그렇게까지 특별한 유물인가.
A : 일단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희귀한 유물인 데다, 보관 상태까지 매우 좋다. 나전이 아름다운 이유는 특유의 빛깔 때문인데, 전문가들이 '전 세계에 있는 나전을 봤지만 이런 영롱한 분홍빛을 내는 나전은 처음'이라고 했다.
Q : 어떻게 보관을 한 건가.
A : 오랫동안 유물을 소장한 일본의 한 가문이 100년 이상 창고에서 보관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나전이 빛에 오랜 시간 노출되면 색이 옅어지는데, 오랜 시간 개인 소장자의 창고에 있었기 때문에 학계에도 알려지지 않았고, 색도 비교적 선명하게 보존됐다.
Q : 고려 나전 상자가 일본에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게 됐나.
A : 백년 넘게 나전 상자를 소장한 가문이 2020년 일본 고미술상에게 팔았고, 고미술상이 3년 동안 상자를 보관하다가 재단에 연락해 매도 의사를 밝혔다. 그분도 유물에 각별한 애착을 갖고 있었는데, '어딘가로 보낸다면 한국에 보내는 것이 맞다'는 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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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6일 공개된 고려 나전칠기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고려 나전의 대표적인 문양인 국화넝쿨무늬, 모란넝쿨무늬, 연주무늬가 고루 사용됐다. 사용된 자개의 수는 약 4만 5000개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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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들여오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은 없었나.
A : 나전 상자가 정말 고려 시대 만들어진 것인지 검증하는 데 공을 들였다. 맨눈으로 보이지 않는 직물 무늬와 칠기 제작 기법은 엑스레이를 통해 봐야 하는데, 매도자가 비밀리에 진행하기를 원해 일본의 박물관이나 문화재 연구소 엑스레이는 쓸 수 없었다. 병원 엑스레이로 유물을 촬영할 수 있는지도 알아봤지만, 현지 의료법상 엑스레이 촬영물을 반출하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플랜B로 일시대여 계약을 맺고 한국으로 들여와 조사하기로 했다.
Q : 희귀 유물을 빌려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A : 대여해서 국내로 반입한 뒤 제작 기법을 확인하고 정식 매매 계약을 체결한 첫 케이스다. 처음엔 소장자도 어렵다고 했지만 수차례 찾아가 '한국 정부를 믿고 빌려 달라'고 설득했다.
Q : 불법으로 유출됐을 가능성이 있나.
A : 기본적으로 소장자를 통해 입수 경위를 조사하고, 문화재청 도난문화재 정보 또는 조계종 불교 문화재 도난 백서에 포함되지 않은 유물에 한해 매입 또는 기증 계약을 맺는다. 도난이나 분실 신고 등 불법 반출 가능성을 검토했으나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외국에 있는 우리 문화재 가운데는 외국에 선물로 보내졌거나 개인 소장자가 사서 소장한 유물도 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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