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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미술의 세계

"눈을 의심했다, 꼭 사와야"…'고려 나전상자' 日서 반환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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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 23일 강혜승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유통조사부 부장이 중앙일보와 인터뷰에 앞서 고려 나전상자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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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일본의 한 고미술상이 고려 나전 상자를 가지고 있다는 소식이 국내에 전해졌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국에 있는 세 점을 포함해 세계적으로도 20점이 안 되는 고려 나전이 지금껏 숨어있다가 불쑥 나타났다는 걸 믿기 힘들다는 반응이었다. 그로부터 4개월 후 일본에 실견하러 다녀온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반드시 환수해야 합니다."

지난달 고려 나전 상자의 귀환은 문화재 전문가들을 흥분케 한 일대 사건이었다. 나전칠기는 옻칠한 가구 표면에 전복·조개·소라 등 패류(貝類) 껍데기를 다듬어 장식한 공예품으로, 고려청자, 불화와 함께 고려 미술의 정수로 꼽힌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환수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문화재청장이 아닌 학자로서 눈을 의심할 정도로 완벽한 상태로 남아있었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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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6일 공개된 고려 나전칠기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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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고려 나전 상자를 실견하고 환수하기까지 전 과정에 참여한 실무자 강혜승(48)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유통조사부장을 지난 23일 서울 중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다.

Q : 일본에서 나전 상자를 처음 봤을 때 어떤 분위기였나.

A : 전문가들과 함께 상자를 2시간 넘게 봤다. 나와서 회의를 하는데 세 분이 입을 모아서 '반드시 사야 한다'고 하더라. '이런 빛을 가진 나전은 처음'이라면서다. 매도자와 함께 있을 때는 그런 말을 못 한다. 갑자기 안 팔겠다고 하거나 가격을 올릴 가능성이 있어서다. 나중에 저희끼리 모여서 '표정 관리하기 힘들었다'며 웃었다.

Q : 그렇게까지 특별한 유물인가.

A : 일단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희귀한 유물인 데다, 보관 상태까지 매우 좋다. 나전이 아름다운 이유는 특유의 빛깔 때문인데, 전문가들이 '전 세계에 있는 나전을 봤지만 이런 영롱한 분홍빛을 내는 나전은 처음'이라고 했다.

Q : 어떻게 보관을 한 건가.

A : 오랫동안 유물을 소장한 일본의 한 가문이 100년 이상 창고에서 보관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나전이 빛에 오랜 시간 노출되면 색이 옅어지는데, 오랜 시간 개인 소장자의 창고에 있었기 때문에 학계에도 알려지지 않았고, 색도 비교적 선명하게 보존됐다.

Q : 고려 나전 상자가 일본에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게 됐나.

A : 백년 넘게 나전 상자를 소장한 가문이 2020년 일본 고미술상에게 팔았고, 고미술상이 3년 동안 상자를 보관하다가 재단에 연락해 매도 의사를 밝혔다. 그분도 유물에 각별한 애착을 갖고 있었는데, '어딘가로 보낸다면 한국에 보내는 것이 맞다'는 입장이었다.
중앙일보

지난달 6일 공개된 고려 나전칠기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고려 나전의 대표적인 문양인 국화넝쿨무늬, 모란넝쿨무늬, 연주무늬가 고루 사용됐다. 사용된 자개의 수는 약 4만 5000개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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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들여오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은 없었나.

A : 나전 상자가 정말 고려 시대 만들어진 것인지 검증하는 데 공을 들였다. 맨눈으로 보이지 않는 직물 무늬와 칠기 제작 기법은 엑스레이를 통해 봐야 하는데, 매도자가 비밀리에 진행하기를 원해 일본의 박물관이나 문화재 연구소 엑스레이는 쓸 수 없었다. 병원 엑스레이로 유물을 촬영할 수 있는지도 알아봤지만, 현지 의료법상 엑스레이 촬영물을 반출하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플랜B로 일시대여 계약을 맺고 한국으로 들여와 조사하기로 했다.

Q : 희귀 유물을 빌려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A : 대여해서 국내로 반입한 뒤 제작 기법을 확인하고 정식 매매 계약을 체결한 첫 케이스다. 처음엔 소장자도 어렵다고 했지만 수차례 찾아가 '한국 정부를 믿고 빌려 달라'고 설득했다.

Q : 불법으로 유출됐을 가능성이 있나.

A : 기본적으로 소장자를 통해 입수 경위를 조사하고, 문화재청 도난문화재 정보 또는 조계종 불교 문화재 도난 백서에 포함되지 않은 유물에 한해 매입 또는 기증 계약을 맺는다. 도난이나 분실 신고 등 불법 반출 가능성을 검토했으나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외국에 있는 우리 문화재 가운데는 외국에 선물로 보내졌거나 개인 소장자가 사서 소장한 유물도 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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