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이달 증시 상장을 위해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을 진행한 워트, 퀄리타스반도체, 유진테크놀로지, 쏘닉스, 유투바이오, 비아이매트릭스, 메가터치 등 7개 기업은 모두 공모가를 공모가 밴드 이상으로 끌어 올렸다. 30일 오전까지 공모가를 발표한 기업 기준으로, 이들은 희망 공모가 범위 상단보다 평균 15% 상향 조정했다. 30일 오후 공모가를 발표한 우주분야 스타트업 컨텍은 공모가 밴드 최상단인 2만2500원으로 정해졌다.
기업공개(ipo) 공모주. /일러스트 이은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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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을 마친 2차전지 및 반도체 공정용 장비 부품 개발·생산업체 메가터치는 당초 희망 공모가 상단이 4000원이었으나 이보다 20% 높은 4800원에 공모가를 확정했다.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투자자 모두가 4000원 이상(가격 미제시 포함)을 써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25일 수요예측을 마친 로우코드 솔루션 전문기업 비아이매트릭스는 공모가를 최초 제시한 희망 공모가 범위 상단인 1만1000원보다도 18% 이상(2000원) 상향 조정했다.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의 95%가 상단 초과에 가격을 써내면서다. 경쟁률은 981대 1이었다.
상장에 나선 기업은 주관사와 상의해 희망 공모가 범위를 제시하고, 이후 기관투자자의 수요예측 결과를 반영해 공모가를 최종적으로 확정한다. 높은 가격에 사고자 하는 기관투자자가 많다면 희망 공모가 범위의 상단에서, 수요예측이 저조한 경우에는 하단에서 공모가가 확정된다.
금리 상승에 중동 지역 위기까지 겹치며 증시 변동성이 커지자 기관투자자들이 신규 상장 주식에 몰려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장기적인 주가 흐름은 가늠하기 어렵지만, 상장 첫날 주가는 오른다는 공식이 최근 확고해졌다”면서 “신규 상장주는 불패 공식이 됐다”고 했다.
실제 유진투자증권이 지난 3분기 상장한 19개 기업(유가증권시장 이전 상장, 스팩 제외)의 주가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기관투자자가 첫날 시초가에 매도했을 경우의 수익률은 81.9%에 달했다. 이후 수익률은 약 26%로 떨어졌지만, 당일 매도 시 높은 수익률을 거둔 셈이다.
금융당국이 지난 6월 26일부터 신규 상장 종목의 상장 당일 가격변동폭을 공모가의 400%까지 상향 조정한 것도 기업들의 공모가 상향 조정을 부추기고 있다. 종전 260%였던 최대 상승 폭이 대폭 커지면서 이른바 공모주 대박을 노린 유동성이 IPO 시장으로 몰려들었다.
그래픽=정서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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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도입 이후 첫 상장 주자였던 시큐센과 필에너지는 상장 당일 200% 넘게 올랐고, 이노시뮬레이션은 133.33% 상승했다. 공모주 투자를 주로 하는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수요예측에는 무조건 높은 가격에 참여해 최대한 물량을 얻어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가격 결정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상장 첫날 주가가 뛰는 공모주 대부분이 공모 규모 500억원 미만의 중소형주인데(예상 시가총액 1000억원대), 흑자 여부나 업종, 성장성 등과는 상관없이 일단 첫날의 상승만 보고 투자를 하고 있는 탓이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첫날 300% 가까이 올랐던 시큐센의 급등은 사실 공모 규모가 100억원도 되지 않는 소형 종목이라는 점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면서 “이를 계기로 중소형주라면 수천개의 기관이 일제히 공모가를 최상단에 적어내는 이른바 ‘묻지마 투자’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수요예측에서 기관 투자자가 공모주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결국 보호예수를 걸거나 혹은 비싼 가격을 써내거나 두 가지”라면서 “첫날 반짝 오르고 주가가 빠지면서 공모주 배정은 결국 가격에 좌우된다. 최상단을 쓰지 않으면 공모주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기업이 작다는 이유만으로 기관이 몰리고, 이로 인해 수요예측 경쟁률이 ‘대박’ 수준으로 나오면서 개인 투자자들도 안심하고 뛰어드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단기 급등한 종목들은 금세 하락 전환하고 있다. 조만간 후유증이 크게 터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묻지마 쏠림 현상으로 인해 대형 IPO는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올해 들어 현재까지 유가증권시장 신규 상장은 2개 기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대 공모 규모 3616억원으로 하반기 최대어로 꼽혔던 서울보증보험은 수요예측에서 부진한 결과를 받아 들면서 상장 추진을 철회했다.
한 증권사 IPO 담당 임원은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앞두고 30일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에 돌입한 에코프로머티리얼즈 결과를 봐야겠지만, 중소형 IPO 기업 위주로 시장이 과열되는 것은 좋지 않다”면서 “대형 IPO가 재개되는 시점은 더욱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배동주 기자(dontu@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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