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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7 (금)

깊어가는 가을, 고택에서 사극 같은 하룻밤 [함영훈의 멋·맛·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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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조루, 명재고택, 일두고택, 여유당 등

여성 배려, 나눔, 음식 등 멋·맛·얘기 가득

[헤럴드경제=함영훈 선임기자] 문화류씨의 고택 구례 운조루의 주인은 고려 태조 왕건의 오른팔 류차달의 후손이다. 조선 영조때 문·무관을 섭렵한 귀만와 류이주(柳爾胄,1726∼1797)는 대구에서 살다가 구례 지리산 자락이 풍수지리학 상 금가락지, 금거북이, 다섯보배들이 모인 명당임을 알아채고 터를 잡았다. 무려 7년간 조선의 건축미학을 총동원해 이 고택을 짓는다.

무관으로 출발해 지금의 순천일대인 낙안군수로서 행정 리더도 했던 류이주는 건축에도 능했다. 정조가 등극한 후 수원화성 축성하는데에도 큰 기여를 했다고 전해진다.

대문 윗쪽에 호랑이 뼈가 걸려있는 고택 입구를 지나 곳간에 가면 뒤주에는 ‘누구든 열어 가져갈수 있다’는 뜻의 ‘타인능해(他人能解)’가 적혀있다. 문화류씨 종가, 나눔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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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 여성들의 휴식권 보장, 힐링을 위해 가장 전망좋은 곳에 마련한 운조루 안채 2층 다락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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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나눠줘서 주인 가솔도 끼니를 걱정할 때면, 주민들과 함께 소나무껍질 끓인 죽 ‘송쿠죽’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문화류씨 귀만와종가의 운조루 안채 2층 다락방은 없어도 될 방이지만, 집안 여성들과 노모가 앉아서 바쁜 종가의 일상 속에 망중한 한숨 돌리며 바깥 풍광을 구경할 수 있도록 배려한 곳이다. 이곳은 지리산 노고단 남쪽 형제봉과 왕시루봉 아래에 있고, 섬진강 너머 오봉산을 마주보는 명당으로 평가된다.

섬세한 배려의 미학, 나눔의 고택, 운조루를 지은 류이주가 문경새재에서 채찍으로 호랑이를 쫓아낸 대구 입석동 출신 무관이라는 점은 이채롭다. 대문 위쪽 호랑이가 바로 그 이야기의 증거이다.

배려의 마음은 여성의 휴식권과 조망권을 배려한 2층 다락과 창문, 길손에게 내주는 24칸 행랑채, 풍수설을 반영한 부엌위치, 굶는 사람을 배려한 낮은 굴뚝, 노인과 수레가 드나들 수 있는 경사로 돌길 등 건축미학에도 반영됐다.

기록유산도 빛난다. 류이주의 고손자 류제양(1846~1922)은 매천 황현과 교유하며 1만 편의 시를 지었다. 그리고 6세부터 70년간 ‘시언(是言)’이라는 일기를 썼다고 한다. 운조루는 전적·고문서류 352종 811책, 676건 등 기록물과 김정희가 쓴 편액·병풍·그림·글씨·수레바퀴 등 민속자료들을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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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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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조루 곳간 뒤주에는 ‘누구든 열어 가져갈수 있다’는 뜻의 ‘타인능해(他人能解)’가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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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는 11월 추천 가볼만한 곳으로 운조루 등 고택 5곳을 선정했다.

▶운조루= ‘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 사는 집’이란 뜻을 담은 운조루(雲鳥樓, 국가민속문화재)는 너그럽고 포근한 고택이다. 1776년(영조 52) 류이주가 낙안군수를 지낼 때 지은 집이다.

250년 가까이 잘 보존된 외관은 물론, 고택에 스민 정신이 면면히 전해온다. 사랑채와 안채, 행랑채, 사당, 연지로 구성된 고택은 규모가 제법 크지만, 화려한 장식 없이 소박하다. 부드러운 산세가 한눈에 들어오는 사랑채 누마루는 운조루의 백미로, 문인들이 풍류를 즐긴 곳이다. 수분실(隨分室)이라는 현판을 걸어 절제 있는 삶을 지향했다.

구례에는 ▷국보와 보물이 가득한 지리산 화엄사 ▷반달가슴곰생태학습장 ▷수락폭포 ▷산수유마을 ▷구례수목원 ▷지리산치즈랜드 ▷피아골 ▷노고단휴게소 ▷문수계곡 ▷천개의 향나무숲 ▷섬진강어류생태관 등 지리산 관련된 청정생태 ‘에코테인먼트’(Eco-tainment) 여행지가 많다.

매월 끝자리 3·8일에 여는 구례5일시장은 갖가지 주전부리를 파는 청년점포가 생기를 더한다. ‘2023~2024 한국관광 100선’에 든 천은사상생의길&소나무숲길에서 숲과 저수지를 따라 3km 남짓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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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재고택 장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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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명재고택= 논산 명재고택(국가민속문화재)은 평생 벼슬을 사양하고 학문 연구와 후대 교육에 전념한 조선 대학자 명재 윤증의 집이다.

고택은 안채와 광채(곳간채), 사랑채, 사당으로 구성된다. 보존 상태가 양호한 조선 양반 주택의 가치에 실용성과 과학적 원리가 돋보이는 한옥으로 꼽힌다.

미닫이와 여닫이 기능을 합친 안고지기를 활용한 사랑채, 일조량과 바람의 이동을 고려한 안채와 광채 배치 등 선조의 지혜가 돋보인다.

안채로 들어가는 문 뒤에 내외 벽을 설치하고 벽 아래 틈을 둬 안채 대청에서 방문객의 신발을 보고 안주인이 대비할 수 있도록 한 점도 눈에 띈다. 인공 연못, 장독대, 고목 등이 운치를 더한다. 후손이 거주하고 있어 지정된 장소 외 출입을 금한다. 고택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4시(하절기 오후 5시까지, 명절 연휴 휴관), 관람료는 없다.

논산 돈암서원(사적)은 조선 중기 정치가이자 예학 사상가 사계 김장생을 기리며 건립했다. 현종 때 사액서원(조선시대 왕으로부터 서원명 현판과 노비·서적 등을 받은 서원)이 됐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한국의 서원’으로 등재된 9곳 중 하나다.

드라마 ‘미스터션샤인’ 촬영지 선샤인랜드는 너무도 유명하고, 인근 연산역 기차문화체험관과 연산역 급수탑, 옛 곡물 창고가 복합 문화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한 연산문화창고는 요즘 뜨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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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민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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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품은 인천시민애집= 인천시민애(愛)집은 인천항 인근, 자유공원 남쪽에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사업가가 저택을 지어 살던 곳을 인천시가 매입, 한옥 형태 건축물을 올리고 시장 관사로 활용했다. 이후 인천시청이 이전해 인천역사자료관으로 쓰이다가, 2021년 7월 재정비를 마치고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개방했다.

인천시민애집은 크게 세 공간으로 나뉜다. ‘1883모던하우스’는 과거 시장 관사를 개조한 근대식 한옥이다. 일본식 저택이 있었을 때 모습을 간직한 ‘제물포정원’이 그 주변을 감싼다. 경비동은 인천항과 개항로 주변을 조망하는 ‘역사전망대’로 이용하고, 내부는 전시관 역할을 한다.

인천시민애집 주변으로 개항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 많다. 개항기 서양인이 사교 모임을 하던 구 제물포구락부(인천유형문화재) 건물이 대표적이다. 대불호텔전시관에는 한국 최초 서양식 호텔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전국 각지에서 활동한 작가들의 근대문학 작품을 한눈에 살펴보고 싶다면 한국근대문학관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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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두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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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일두고택= 성리학의 대가로 동방오현으로 일컬어지는 일두 정여창 후손이 지은 함양 일두고택에 이르면 입구 솟을대문에 정여창 가문이 나라에서 받은 정려 5개가 있다.

사랑채에는 정여창의 후손이 사는 집이란 사실을 말해주는 문헌세가(文獻世家) 편액이 걸렸고, 그 뒤 방문 위에는 충효절의(忠孝節義)라고 커다랗게 쓴 종이가 붙었다.

누마루에서는 마당에 조성한 석가산(石假山) 풍경이 보인다. 이곳 천장 모서리에도 탁청재(濯淸齋) 편액이 걸렸다. ‘탁한 마음을 깨끗이 씻는 집’이란 뜻이다. 사랑채 옆으로 난 일각문을 지나면 여성의 공간인 안채로 연결되고, 곡간과 정여창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 차례로 나온다.

일두고택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함양 남계서원(사적)은 정여창이 세상을 떠나고 그를 기리는 지역 선비들이 세웠다. 남계서원 바로 옆에 문민공 김일손을 추모하는 함양 청계서원(경남문화재자료)이 자리한다. 함양박물관을 방문하면 함양군의 역사와 유물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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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여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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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남양주 여유당= 다산 정약용은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서 나고 자랐다. 이곳에 그의 숨결이 서린 여유당이 있다. 1800년 정조가 승하하자, 정약용은 고향으로 내려와 사랑채에 여유당(與猶堂) 현판을 걸었다.

여유는 ‘조심하고 경계하며 살라’는 뜻이다. 다산은 조심히 살겠다고 다짐했으나, 이듬해부터 18년 동안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정약용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여유당에서 목민심서, 흠흠신서 등을 정리했다.

선생이 살던 생가는 1925년 대홍수로 떠내려가, 1986년에 다시 세워졌다. 사랑채와 안채로 구성되며, 다산의 성품처럼 소박하다. 여유당 뒤 언덕에 정약용선생묘(경기기념물)가, 언덕 아래 선생이 쓴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이 있다.

여유당과 정약용선생묘가 자리한 정약용유적지를 여행할 때는 배우 정해인이 녹음에 참여한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하자. 유적지 운영 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월요일, 1월 1일, 명절 당일 휴관), 입장료는 없다.

정약용유적지 건너편에 실학을 주제로 꾸민 실학박물관이 있다. 다산생태공원은 팔당호를 시원하게 조망하는 곳으로, 반려동물과 산책도 가능하다. 레트로 감성이 물씬 풍기는 능내역도 남양주 여행의 필수코스이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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