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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단독] 증거 넘치는데 "산 근처도 안 갔다" 발뺌한 울진 산불 방화범… 징역 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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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난 산 인근 CCTV에 방화범 차량만
연기 올라오기도 전 "불이 났다" 떠들고
타다 만 성냥과 동일제품 구매한 기록도
1심 재판부 "위험성 크고, 죄질 안 좋아"
한국일보

2월 1일 경북 울진군 기성면 정명리 야산에서 산불이 났을 때 모습. 이 불로 소방대원 등 인력 186명이 동원돼 밤새 진화 작업을 펼쳤고, 임야 1.4㏊가 탔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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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경북 울진군 기성면 정명리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 방화범 A(64)씨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수사와 재판 과정 내내 “산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불이 난 산 근처 폐쇄회로(CC)TV에 A씨의 차량만 잔뜩 찍혀 있는 등 명확한 범행 증거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29일 법원 등에 따르면 대구지법 영덕지원 제1형사부(부장 강기남)는 정명리 야산에 불을 지른 혐의(산림보호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채택된 증거들을 종합할 때 피고인 외에는 다른 사람이 산불을 냈다는 의심을 할 사정이 없다”며 지난 25일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기성면 정명리 산불은 지난 2월 1일 밤 10시 32분쯤 첫 신고 전화가 접수됐다. 당시로부터 1년 전인 지난해 3월, 초대형 산불로 이재민이 181가구나 발생했던 울진군은 비상이 걸렸다. 소방대원 등 인력 186명이 동원돼 밤새 진화 작업을 펼쳤다. 현장에 나온 공무원들은 1년 전 악몽을 떠올리며 불씨가 꺼진 뒤에도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정명리 산불은 축구장 2개 면적에 달하는 임야 약 1.4㏊를 태우고 나서야 진화됐다.

울진군과 울진경찰서, 울진소방서는 즉각 조사에 나섰다. 산불 발화지점에서 타다 만 성냥과 누군가 불이 천천히 확산하도록 만든 장치를 발견했다. 방화임을 확신한 경찰은 범인 색출에 나섰다. 가까운 마을부터 탐문 수사를 하던 중 한 마을에서 “주민 A씨가 산불 하루 전날 군청 산불감시원 채용에 탈락해 ‘화가 난다. 불을 지르겠다’며 불만을 쏟아냈다”는 증언이 잇따랐다. 경찰이 불이 난 산 주변에 설치된 CCTV를 분석한 결과, 산불이 나기 전 A씨의 검은색 차량만 잔뜩 찍혀 있었다.

증거는 또 있었다. 경찰은 산불 당일 A씨의 행적을 쫓다가 울진군 읍내 한 가게에서 성냥 한 통을 구입한 기록을 찾았고, 발화지점에서 발견된 타다 만 성냥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은 확보한 증거들을 내밀며 A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그는 완강히 부인했다. “산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산불이 났을 때 약 13㎞ 떨어진 B다방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알리바이로 댄 B다방은 오히려 또 다른 증거가 돼 A씨를 옭아맸다. 정명리 산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맨 처음 본 목격자가 119 등에 신고한 시간은 오후 10시 32분쯤인데 A씨가 3시간이나 빠른 오후 7시 23분쯤 다방에 들러 “기성에 불이 났다”고 떠든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한국일보

방화범이 지른 산불로 경북 울진군 기성면 정명리 야산이 검게 그을려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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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끝까지 범행을 부인하면서 재판은 5개월 가까이 걸렸다. 그러나 증거가 차고 넘쳐 실형을 피할 수 없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무고한 다수 시민의 생명과 재산에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방화범죄를 저질러 죄질이 나쁘고 위험성이 큰 데도 수사기관에서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범행을 부인하며 피해 회복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꾸짖었다. 다만 “엄히 처벌해야 하지만 동종의 범죄전력이 없고 산림 훼손 외 인명피해 등은 발생하지 않은 점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울진= 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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