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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물가와 GDP

"엇, 만두 2개 줄었네" 가격 그대로인데…양 줄어버린 식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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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권재한 농림축산식품부 농업혁신정책실장(왼쪽)이 지난 25일 이마트 세종점을 방문해 물가 동향을 점검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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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축산식품부가 국내 식품회사 16곳 대표와 주요 임원을 불러 물가 안정 협조를 당부한 지난 20일. 국내 조미 김 업계 1위 동원F&B가 중량을 기존 5g에서 4.5g으로 0.5g 낮춘 ‘양반김’을 소매점에 납품하기 시작했다. 가격(700원)은 그대로 둔 채, 중량만 낮추는 식이었다. 동원F&B는 앞서 지난 6월에도 대표 참치 통조림 제품인 ‘동원참치라이트스탠다드’의 가격(편의점 3300원)을 그대로 둔 채 중량만 100g에서 90g으로 낮췄다. 동원F&B 관계자는 “원재룟값 인상에 따라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동원F&B의 이런 조치는 전형적인 ‘슈링크플레이션(shrink+inflation)’ 사례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줄어든다는 뜻의 ‘슈링크’(shrink)와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제품 가격과 내용물은 유지하되 용량만 줄여 사실상 가격 인상 효과를 노리는 마케팅 기법이다. 영국의 경제학자 피파 맘그렌이 만들었다. 가격 인상에 대한 소비자 저항을 줄이기 위한 ‘꼼수’란 지적과, 고물가 시대 정부 압박에 눌린 식품업계의 고육책이란 해석이 엇갈린다.

해태제과는 지난 7월 대표 제품인 ‘고향만두’ 가격을 그대로 둔 채 용량을 기존 415g에서 378g, ‘고향 김치만두’ 용량을 기존 450g에서 378g으로 각각 줄였다. 롯데칠성음료는 같은 달 델몬트 오렌지·포도 주스 용량을 그대로 둔 채 과즙 함량만 기존 100%에서 80%로 낮춘 제품을 출시했다. OB맥주는 지난 4월 카스 맥주 묶음 팩(번들) 제품 용량만 1캔당 기존 375mL에서 370mL로 5mL씩 줄였다.

물가상승률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은 1998년(7.5%) 이후 최대를 기록한 지난해(5.1%)부터 슈링크플레이션이 두드러졌다. 오리온은 핫 브레이크(50g→45g), 농심은 양파링(84g→80g)과 오징어칩(83g→78g), 서울우유는 비요뜨(143g→138g) 중량을 각각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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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디자이너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에선 지난해 ‘프리토스’ 감자 칩 개수를 봉지당 5개, ‘선 메이드’ 건포도를 봉지당 70알, ‘크레스트’ 치약을 개당 8g, ‘도브’ 비누를 10% 덜어낸 제품을 출시했다. 용량을 그대로 두는 대신 품질을 낮춘 사례도 있다. 값비싼 계란 노른자 함량을 낮춘 마요네즈, 올리브유 함량을 낮춘 스프레이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현상을 콕 짚어 ‘skimp(인색하게 굴다)’를 합성한 ‘스킴플레이션(skimpflation·skimp inflation)’이란 용어까지 나왔다.

프랑스 대형마트 카르푸 매장에는 최근 ‘#슈링크플레이션’ 문구를 단 진열대가 등장했다. 가격은 그대로지만 용량을 줄인 제품을 따로 모아 안내한다. 원가 상승을 빌미로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한 기업에 가격을 낮추라는 취지에서다.

기업은 밀가루와 설탕·소금·주정(酒精) 같은 원자재는 물론 각종 에너지 가격까지 크게 오른 상황에서 정부의 가격 인하 압박까지 겹쳐 불가피한 측면을 강조한다. 한 식품업체 임원은 “식품 업계는 영업이익률이 1~2% 수준인 경우도 많다”며 “고물가 시대에 생존하려면 제품 용량을 줄이거나, 재료를 바꾸는 방식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개별 품목 물가를 통제하는 식 정부 대책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서슬에 ‘울며 겨자 먹기’로 당장 가격 인상을 자제할 수 있지만,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다. 인상 요인이 뚜렷한데 억누를 경우 향후 가격이 폭등할 수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물가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정부 노력은 필요하지만, 개별 품목의 가격 결정에 직접 개입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시장경제 흐름에 맡기되, 큰 틀에서 통화 정책(금리)으로 대응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현행 소비자보호법상 고지 없이 제품 용량을 줄여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격 인상처럼 용량을 줄일 때도 기업이 사전에 공지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는 가격 인상에 예민하게 반응하지만, 제품 용량을 줄이는 건 쉽게 인지하지 못하고 둔감하다”며 “소비자단체가 대표 제품의 용량과 성분 변화를 확인해 정기적으로 공개하는 등 감시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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