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개 광역시·도 청소년 예산 전수분석
지자체들도 “여가부 예산 삭감 부적절”
학교폭력 피해자를 다룬 드라마 <더 글로리>. 넷플릭스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여성가족부가 주요 청소년 참여·지원 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하면서,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의 관련 사업 90%가 중단되거나 중단 위기에 처한 것으로 확인됐다. 학교폭력(학폭) 예방과 노동권 보호, 성인권교육 등 권익보호와 관련된 사업들이 특히 큰 타격을 입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청소년 정책을 사실상 포기했다고 지적한다.
29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이 17개 광역시·도의 2024년 청소년 사업 예산을 전수 분석한 결과, 각 지방자치단체가 여가부와 함께 수행하던 주요 청소년 참여·지원 사업 102개 중 90개가 중단됐거나 사업 지속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중단된 사업은 60개, 사업 지속 여부를 정하지 못한 사업은 30개다.
여가부는 2024년 예산안에서 주요 청소년 참여·지원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여가부가 전액 삭감한 예산항목은 청소년 활동 예산 38억2000만원, 학폭 예방 프로그램 예산 34억원, 청소년 정책참여 지원 예산 26억3000만원, 청소년 근로권익보호 예산 12억7000만원, 성인권교육 예산 5억6000만원 등이다. 여가부의 내년도 전체 청소년 예산은 2352억원으로 올해 대비 173억원(6.9%) 줄었다. 여가부 청소년 사업의 3개 축인 ‘활동’ ‘복지’ ‘보호’ 중 ‘활동’ 분야 예산이 전면 삭감되고, ‘보호’ 분야에서도 학교폭력과 노동권 관련 예산이 삭감됐다.
Gettyimage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여가부 예산이 사라지며 해당 예산들로 진행돼 온 6개 사업(청소년 근로권익 보호, 청소년어울림, 청소년 동아리 지원, 학폭 예방 프로그램, 성인권교육, 청소년참여기구운영) 대부분이 타격을 입었다. 17개 시·도는 여가부의 해당 예산(국비)과 지자체가 가진 지방비를 조합해 사업을 진행했는데, 절반가량을 차지하던 국비가 사라지자 사업 지속이 어려워졌다.
학폭 예방과 노동권 보호, 성인권교육 등 기초적인 인권침해 관련 사업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117 학폭신고센터와 청소년상담복지센터 학폭 상담을 운영해 온 ‘학폭 예방 프로그램’ 사업은 17개 시·도 중 15곳에서 폐지됐다. 세종은 사업을 유지하겠다고 했고, 부산은 검토 중이다.
청소년 노동자의 임금체불·부당대우 등 해결을 돕는 ‘청소년 근로권익보호’ 사업은 17개 시·도 중 15곳에서 폐지됐다. 충남과 제주만 해당 사업을 지자체 예산만으로 이어가겠다고 했다. ‘성인권교육’ 사업은 13곳이 폐지하고 경기·세종·제주 3곳만 사업을 유지한다. 부산은 검토 중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청소년 체험활동과 자치·정책참여 관련 사업도 대부분 사라졌다. ‘청소년 동아리 지원’ 사업은 17개 시·도 중 7곳에서 사라졌다. 7곳이 사업을 계속 유지한다고 밝혔고 3곳은 사업 지속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공연·전시와 체험활동, 진로체험 등을 지원해 온 ‘청소년 어울림 마당’ 사업은 5곳에서 폐지됐다. 9곳에서 지속 추진, 3곳에서 검토 중이다. 청소년들이 정부나 지자체의 청소년 사업·정책에 참여하도록 지원하는 ‘청소년 참여기구 운영’ 사업도 5곳 폐지, 8곳 지속, 4곳 검토 중으로 나타났다.
일부 지자체는 ‘여가부의 관련 예산 전액 삭감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용 의원실에 보냈다. 성인권교육 사업 지속을 검토 중인 부산은 해당 사업을 두고 “사업에 대한 만족도가 높으며 특히 장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외부 전문가가 교육을 해 효과성이 높다”며 “국비 확보가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했다. 근로권익보호 사업을 유지하기로 한 제주는 “(사업이 종료되면) 도내 청소년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근로환경 조성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울산은 청소년 어울림·동아리 등 사업에 대해 “필요한 사업이지만 국비 미반영으로 지방비 편성은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사업 지속을 위해 일부 국비라도 확보돼야 할 것이며, 국회에 예산 부활을 건의할 것”이라고 했다. 충북은 “제7차 청소년정책기본계획에서 청소년 참여와 권리보장을 강화하는 정책을 수립했는데도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하는 것은 정책과 상반된다”고 했다.
Gettyimage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전국 청소년 사업 담당자들과 청소년 당사자들로 구성된 전국청소년예산삭감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28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에서 집회를 열어 “범청소년계는 이 같은 상황을 대한민국 청소년 정책을 위축시키는 유례없이 심각한 상황으로 규정한다”며 “정부는 청소년 정책 예산 삭감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했다. 청소년기본법과 제7차 청소년정책기본계획 등에 근거한 사업들을 정부가 스스로 저버렸다는 지적도 나왔다.
용 의원은 “여가부의 예산 전액 삭감은 30년째 국가와 지자체가 고민해왔던 청소년 정책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으로, 현장에서는 사업의 중요성을 느끼는데도 일방적인 국비지원 중단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청소년들이 인권침해로부터 보호받고 충분한 활동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여가부는 청소년 예산을 원상복구 해야 한다”고 했다.
▼더 알아보려면
여성가족부의 이번 주요 청소년 활동·지원사업 예산 전폭 삭감은 정부의 ‘긴축’ 기조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긴축 기조는 예전부터 예상됐지만, 막상 내년도 예산안을 열어보니 취약계층의 권익 보호 관련 예산들이 주로 삭감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됐습니다. ‘약자 복지’를 말하는 정부가 실제로는 ‘약자 복지’를 축소한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 말로는 “약자 복지”…행동은 예산 삭감
https://www.khan.co.kr/economy/economy-general/article/202309102052005
☞ [단독]‘여가부 폐지’의 미래?…전액삭감한 청소년 노동 예산, 노동부로 안 가고 ‘증발’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09051559001
☞ ‘당해도 말 못하는’ 청소년 노동자 돕던 단 한 곳, 정부가 ‘뒤통수’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10091427001
☞ “한글 공부, 임금체불 상담 이제 어디에서”···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폐쇄 규탄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09221610001
☞ [단독]노동부 ‘고용평등상담실’ 지원 중단···“여성 노동자들이 마지막에 찾던 곳”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09221402001
☞ 국감 나온 첫 발달장애인 “동료지원가 사업 살려주세요”
https://www.khan.co.kr/national/labor/article/202310232123015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 독립언론 경향신문을 응원하신다면 KHANUP!
▶ 나만의 뉴스레터 만들어 보고 싶다면 지금이 기회!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