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정서장애 학생 검사-치료 권고
학부모 인정 않고 거부땐 속수무책
‘분리 조치’도 인력-장소 대책없어
교사들 “특별치료 의무화 등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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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 초등학교 1학년 교사 A 씨는 병원으로부터 자폐 판정과 특수학교 수업을 권고받은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A 씨는 이 학생의 부모에게 전문적인 치료를 받으라고 권했지만, 해당 부모는 “우리 아이는 정상”이라며 거부했다. 정상적인 수업 진행이 안 되는 탓에 A 씨와 같은 반 학생들은 고통받고 있다. 이 학생은 수업 내내 소리를 지르고 의미 없는 말을 반복한다. 친구들에게 폭력도 쓰지만 다른 학부모들이 계속 양해해줬다. 7월에는 한 학생을 넘어뜨린 뒤 때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가 열릴 뻔했다. 그러자 문제 학생의 부모는 “치료받고 집이 팔리면 전학을 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약속은 지키지 않았고, 오히려 학교에 “왜 우리 아이를 차별하냐”, “아는 변호사가 있다”고 했다.
서울 서초구 교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교육부는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를 만들어 9월부터 시행 중이다. 국가 차원에서 교사에게 생활지도 권한을 주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고시가 전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학생이 계속 수업 방해해도 속수무책
학생생활지도 고시는 ‘교원은 학생의 문제 개선을 위해 전문가의 검사·상담·치료를 보호자에게 권고할 수 있다’(제9조 3항)고 규정한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어 학부모가 거부하기 일쑤다. 결국 해당 학생은 수업을 못 따라가고, 교사와 다른 학생들이 피해를 본다.
A 씨도 해당 학생이 검사를 받게 하는 데만 몇 달이 걸렸다. 하지만 학부모가 계속 치료를 거부하니 최근 학교에 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를 열어 달라고 신청했다. 교보위 처분 시 치료를 강제할 수 있다. 하지만 A 씨는 “학생 처분을 원하는 게 아니고, 부모에게 아이의 치료를 약속받고 싶다.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교육부와 17개 시도교육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정서행동특성검사에서 관심군으로 진단받고도 전문기관이나 병원에 연계되지 않은 학생이 연평균 4만3000명에 달했다. 이 중 80% 이상은 학부모 거부가 원인이었다. 교사노동조합연맹 관계자는 “최근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나 소아 우울증 등의 정서 장애를 겪는 학생이 많다”며 “어렵게 검사 이야기를 꺼내도 대부분의 학부모가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고, 병원에서 진단받더라도 치료를 안 한다”고 전했다.
● 수업 방해 학생 분리도 대책 없어
고시에는 ‘교육 활동을 방해하는 학생을 분리할 수 있다’(제12조 6항)는 조항도 있다. 교육부는 분리 장소, 시간 및 학습지원 방법을 12월까지 각 학교가 학칙으로 정하게 했다. 학교 현장에서는 △분리 장소를 어디로 하며 △누가 문제 학생을 데리고 가 안전하게 관리할지 △학습은 어떻게 시킬지 등이 논쟁거리다.
초등학교 교사 B 씨는 최근 수업 방해 학생을 교장실로 분리시켰다. 그러자 교장이 “맡기 힘들다”고 거부해 갈등을 겪었다. 그는 “분리 학생을 맡아줄 인력에 대한 정부 지원이 없어 교사와 교장·교감 간 폭탄 돌리기만 반복 중”이라고 했다. 중학교 교사 C 씨도 “고시(제12조 7항)에 따라 ‘하루 2회 이상 분리해도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의 부모에게 인계를 요청했는데, 부모가 ‘못 온다’고 하니 어쩔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교육부가 학생생활지도 고시를 만드는 과정에서 교사들이 지적한 문제들을 반영하지 않고, 학교가 알아서 하라고 떠넘긴 결과라는 비판이 나온다. 문제 학생에 대한 상담과 치료를 강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고시 제정 단계에서 꾸준히 나왔다. 그러나 교육부는 ‘보호자의 권리와 선택권을 무시하고 강제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교사노조연맹 관계자는 “정서 문제를 겪는 학생에 대한 특별치료 이수를 의무화하고 학부모의 책무성을 강화해야 한다”며 “수업 방해 학생의 분리 지도 방법을 공통으로 정하고 필요한 공간과 인력 확보를 예산으로 뒷받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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