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물가와 생산자물가 상승이 소비자물가로 전이돼 부담을 키우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리스크가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산유국 감산 이슈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불확실성까지 겹쳐 국제 유가가 오르며 물가 상방 압력을 높이는 모습이다.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들의 교역 조건 악화와 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 통화정책 등에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2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9월 생산자물가지수는 121.67(2015년 100)로 한 달 전보다 0.4%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월(0.9%)과 비교해 상승 폭은 축소됐으나 지난 7월(0.3%) 이후 석 달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전년 동월 대비로도 두 달 연속 오름세다.
생산자물가는 국내 시장에 공급하는 상품과 서비스 가격 변동을 측정하는 통계로 대략 한 달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
지난달 생산자물가지수 중 전력·가스·수도와 폐기물 등은 주택용 전력(14.6%) 상승 영향으로 0.8% 올랐다. 농림수산품도 축산물(3.5%) 가격이 오르면서 전월 대비 0.2% 상승했다. 특히 국제 유가 상승 여파로 석탄·석유제품(6.6%)과 화학제품(1.5%) 등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지난 7월만 해도 배럴당 80달러 선이던 국내 수입 두바이유 가격은 8월 86달러, 9월 93달러 등으로 최근 한 달 새 7.9% 급등했다. 최근에는 중동 사태 격화로 북해산 브렌트유는 배럴당 91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유성욱 한은 물가통계팀장은 "국제 유가 영향으로 석유제품과 화학제품 가격 등이 오르면서 생산자물가가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생산자물가는 원자재·중간재 가격 등과 연동돼 있어 고스란히 기업의 비용 부담으로 이어진다. 한국무역협회가 산업연관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원유·석유제품·천연가스 등 에너지 가격이 10% 상승하면 기업의 생산비용은 0.67%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이 지난 17일 발표한 수입물가지수도 9월 기준 2.9%(전월 대비) 상승하며 석 달 연속 오름세가 지속됐다. 수입물가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로 10% 안팎 하락세를 이어온 점을 감안하면 현 추세는 하반기 고유가 흐름에 기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제 유가 변동은 제품 가공과 원가 책정 과정에 반영돼 소비자물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실제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7%로 시장 전망치를 웃돌았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주 기준금리 동결 직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연말 3%대 초반으로 낮아져 내년에는 완만한 둔화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면서도 "물가가 목표 수준(2%대)에 수렴하는 시기는 예상보다 늦어질 가능성이 커졌다"고 내다봤다.
물가 상승세가 꺾이지 않으면 통화 긴축에 따른 고금리 기조도 장기화할 수 있다. 이는 기업의 체감경기와 금융비용 부담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23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기준금리를 3.0%포인트 올려 물가가 좀 잡혀가는 듯했으나 다시 국제 유가와 미국 금리가 올라 답답해졌다"며 고심이 깊음을 드러냈다. 물가에 중점을 둔 통화정책이 연장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아주경제=배근미 기자 athena3507@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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