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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1 (금)

[단독] 사람 적어 재판 늦는다던 법원… 사건 많은 곳에 판사 정원은 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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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혁 의원, 법원별 사건수와 판사정원 분석
서울북부지법은 사건 줄었지만 판사 수 증원
사건 증가 서울동부지법, 판사 정원 최다 감소
한국일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청사 문에 법원 로고가 붙어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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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행정처가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판사 부족'을 내세워왔지만, 정작 법관 정원을 설정할 때는 각 법원에 할당된 사건 수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 건수는 법관 업무 강도의 주요 척도임에도, 이를 연동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해 재판 지연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판사 정원과 실제 업무에 투입되는 '가동 법관' 수에는 늘 차이가 있다는 게 법원행정처 입장이다.

24일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실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법원 법관 정원은 3,214명으로 2018년(3,124명)에 비해 4년 간 90명 늘었다. 이 기간 동안 코로나 팬데믹 등의 영향으로 각 법원에 접수된 민사 본안 사건 수는 약 22% 감소했다. 실제 처리된 민사 본안 사건 수도 4년 만에 약 18% 줄어들었다. 전국적 감소 추세와 달리 접수 사건 수가 늘어난 법원은 서울회생법원(38.4% 증가)과 서울동부지법(24.5% 증가)뿐이었다.

그러나 법관 정원은 법원 별 사건 증감율과 유사한 수준으로 조절되지 않고 있다. 서울북부지법은 4년 만에 사건 접수가 7만3,000여건에서 2만여건으로 줄었지만, 판사 정원이 3명 늘었다. 서울서부지법 사건은 같은 기간 4만9,000여건에서 2만4,000여건으로 크게 감소했지만, 반대로 판사 정원이 7명 빠졌다. 다만 법원행정처는 "대부분이 소액사건인 민사 본안 사건 수만을 기준으로 업무량을 분석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동부지법은 사건이 크게 늘었음에도 정원이 대폭 줄었다. 4년 사이 2만9,000여건에서 3만6,000여건으로 타 법원들과 비교해 이례적 증가세를 보였으나, 법관 정원은 전국에서 가장 많이 깎여 91명에서 76명이 됐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정원과 별개로 실제 재판을 담당하는 법관 수는 4명이 늘었다고 한다. 서울동부지법 소속의 한 판사는 "서울권 지법들의 난이도가 다른 점을 감안하더라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정원"라고 지적했다.

법원 안팎에선 판사 총수 증원만큼이나 정교한 인력 배치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도권의 한 고법 부장판사는 "판사 부족은 해묵은 문제라 반드시 해결해야 하지만, 법원 별로 명확한 원칙 없이 투입하게 된다면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국회엔 법관 정원을 5년간 단계적으로 370명 늘려 3,584명까지 확보하는 내용의 법관정원법 개정안이 제출된 상태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실제로 배치되는 판사 수는 정원과도, 현원(연수나 휴직 중인 법관을 포함한 인원)과도 다르다"고 해명했다.

법관 인력 배치에 관한 법적 근거를 분명하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나온다. 현재 법원조직법은 각급 법원에 배치할 판사 수를 대법원 규칙에 따라 정하고,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직무수행'과 '균형 있는 인적 자원'을 위해 적절히 배치해야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장동혁 의원은 "원칙 없는 법관 정원 결정은 재판 지연 악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며 "명확한 법률적 근거를 만들어 합리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정원 기자 hanak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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