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수조사했더니 LH 발주 아파트 23개 단지서만 '철근누락'
관리·감독 특히 중요한데…"오류 최소화 공법 개발엔 소홀"
대규모 공공주택 공급 과부하 걸렸나…정부 책임론도
경찰, '철근 누락' 의혹 LH 경기남부본부 압수수색 |
(세종=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민간 아파트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 경기주택공사(GH) 아파트엔 부실시공이 없었다는 23일 정부의 전수조사 결과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관리·감독 소홀 문제를 여실히 드러냈다.
전국의 모든 무량판 적용 아파트를 조사했더니 LH가 발주한 아파트 23개 단지에서만 철근 누락과 콘크리트 강도 저하 문제가 나타난 것이다.
LH가 관리·감독을 특히 철저히 해야 하는 무량판 공법을 택해놓고선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게 부실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 LH, 2017년부터 '자체 개발' 무량판 구조 도입
LH가 공공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무량판 구조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한 것은 2017년부터다. 'LH형 무량판 지하주차장 구조시스템'(LH-FS·Flatplate system)을 자체 개발했다.
또 지하주차장 내부를 좀 더 넓게 쓸 수 있어 주차 공간도 늘어난다.
LH는 무량판 구조를 도입할 경우 기존 라멘(기둥식) 구조에 비해 층고를 3.7m에서 3.5m로 낮출 수 있고, 주차 폭은 2.3m에서 2.4m로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연간 6만3천호의 공공주택을 건설한다고 가정하면 보와 철근, 거푸집량 감소로 비용을 한 해 751억원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원가 절감이 무량판 구조 도입의 주요 요인이 된 셈이다.
무량판 구조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문제는 이 구조는 설계와 시공상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 관리·감독을 다른 구조보다 더 철저히 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하주차장 기둥 보강공사 진행 중인 철근누락 아파트 |
철근 배근이 복잡하기 때문에 설계자가 전단보강근(철근)이 필요한 곳을 설계도서에 명시해도 시공자가 이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거나 잘못 해석하기도 한다.
게다가 LH형 무량판은 현장에서 전단보강근을 일일이 감아주는 '재래식' 시공방식이라 현장 근로자가 제대로 시공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민간 건설사들은 저마다 무량판 구조 시공 때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식을 개발해 적용하고 있다.
김태오 국토부 기술안전정책관은 "무량판 구조를 택한 민간 아파트는 대부분 공장에서 전단 보강근이 배근된 구조물을 제작한 뒤 현장에 설치하는 '조립식'으로 공사를 진행했다"며 "이런 방식으로 실패가 나올 확률을 줄인 게 민간 공사와 LH 공사의 가장 큰 차이"라고 말했다.
'불꺼진 LH 광주전남본부 상담센터' |
◇ LH는 감리 직접 선정…설계·시공 단절도 문제로 지적
설계·시공상 문제를 걸러내야 하는 감리의 경우 민간 공사는 지자체에서 선정하지만, LH는 자체 선정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철근 누락'은 LH 퇴직자들이 대거 설계·감리 업체에 '전관 취업'하면서 공공 공사에서 감리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낸 결과물이기도 하다.
설계·시공이 유기적으로 이어지지 않고 분절된 것도 철근 누락 사태를 부른 원인으로 꼽힌다.
국토부 관계자는 "민간 아파트는 설계 단계에서부터 시공 업체가 직접 익숙한 공법, 선호하는 공사 방식을 택해 공사 진행 과정에서 오류 가능성이 적어진다"면서 "반면 LH는 설계, 시공이 분리돼 있다"고 설명했다.
낮은 가격으로 양질의 공공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LH의 역할인데, 한정된 자원 아래 대규모로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역할이 부여돼 과부하가 걸린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의원 질의에 답하는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 |
이날 LH는 전수조사에서 빠뜨렸던 11개 단지를 점검한 결과 의왕 초평 A3, 화성 비봉 A3 등 2개 단지에서 철근이 누락된 사실을 추가로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철근이 빠진 LH 발주 아파트 단지는 지하주차장이 붕괴한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를 포함해 총 23개로 늘어나게 됐다.
LH가 토지만 제공하고 민간 건설사가 설계, 건설, 분양까지 담당하는 민간참여사업 아파트 19개 단지도 점검했으나, 부실시공이 발견되지 않았다.
정부가 무량판 아파트에 대한 국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대대적인 전수조사에 나섰지만, 그 결과 공공주택 설계·시공을 관리·감독하는 LH의 기능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부각한 꼴이 된 것이다.
홍성걸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무량판 구조를 썼더라도 당초 주거동은 기둥과 벽체 사이 간격이 짧아서 구조 안전 문제가 크지 않았다"며 "정부가 덜컥 전수조사부터 하겠다고 발표했으니 안 할 수는 없었겠지만, 전단보강근이 필요하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라 용두사미가 됐다"고 말했다.
LH를 관리·감독하는 것은 국토부이기에 정부도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김효정 국토부 주택정책관은 "정부가 당연히 책임을 느끼며, 재발하지 않도록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조만간 LH 문제를 포함해 건설산업 정상화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cho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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