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경 화백이 2002년 퇴임을 앞두고 부천역 앞 자유시장 입구에 있는 왈순아지매 동상앞에서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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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화백은 네 칸 짜리 인기 시사만화 '왈순아지매'를 1955년부터 2002년까지 47년간 연재했다. 반 백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월간지 '여원'을 시작으로 대한일보(1963∼1967), 경향신문(1967∼1974), 중앙일보(1974∼2002) 등 여러 번 적을 옮겼지만 시사만화 '왈순아지매'는 늘 정 화백과 함께였다. 가장 오래 몸담았던 중앙일보에서는 28년간 8829회 연재하며 시사만화 국내 최장수 연재 기록을 남겼다.
그의 역작인 '왈순아지매'는 이승만 대통령부터 김대중 대통령까지 8개의 정부를 거치며 한국의 굴곡진 현대사를 서민의 시각에서 담아냈다. 물가 인상으로 삶이 팍팍해지자 집에서 이발하는 서민들(박정희), "기왕이면 저 집 음식 팔아 주자"며 '광주식당'으로 들어가는 넥타이 부대(전두환), '물태우' 생수를 마시며 "물맛이 미적지근하다"고 말하는 직장인들(노태우), 30~40대 고급 인력이 줄지어 이민을 떠날 때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80대 정치인들(김대중)까지 소시민들의 일상적인 상황을 비틀어 권력과 정치를 비판했다. 1960년대 '왈순아지매'는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풍자와 해학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정치인으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고, 일부 회차는 정부의 검열로 삭제돼 한참 후에 공개됐다. 외부의 퇴출 압박도 있었지만 정 화백은 2002년 68세의 나이로 중앙일보에서 퇴사하기까지 연재를 멈추지 않았다. 은퇴하던 날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긴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그네가 툇마루에 앉아 신발 끈을 푸는 심정"이라는 소회를 밝혔다. 시사만화의 미래에 대해서는 "네 칸 만화가 신문에서 사라지는 추세지만 사회적 필요성마저 사라진 것이 아니다"라며 "해학 문화가 사라져서는 안 된다. 곧 부활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경북 안동 출신인 정 화백은 유년기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부산 국제신보에 만화를 실었고, 동국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후에도 용돈을 벌기 위해 만화를 그렸다. 1951년 ‘코주부’ 김용환 화백의 문하생이 되어 본격적으로 만화가의 길을 걸었다.
만화연구가인 장상용 초이락컨텐츠컴퍼니 웹툰사업팀장은 정 화백에 대해 "시사만화, 콩트부터 아동물까지 만화의 여러 장르를 섭렵한 대가였다"며 "특히 1950년대에 순종적이지도 여성스럽지도 않은 '경상도 아줌마'를 내세운 점이 획기적이었다"고 했다. "197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순악질여사'는 '왈순아지매'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라면서다.
정 화백과 막역한 직장 선·후배 사이였던 김재봉 전 중앙일보 기자는 "호탕하고 재밌는 성격의 선배였다. 젊은 기자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렸고 특히 사회부 기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했다"고 그를 기억했다. 그에 따르면 정 화백은 "소재가 궁하면 편집국에 와서 기자들에게 술을 마시자고 청했고, 생활 밀착형 만화를 그리기 위해 늘 취재 기자를 취재하기 일쑤"였다.
고인은 1994년 위암 장지연상, 1996년 언론상 신문만화상을 수상했다. 대표작 '왈순아지매' 외에도 '또복이', '진진돌이' 등의 작품이 있다. 동물을 군인으로 의인화한 '진진돌이'는 김용환의 '코주부삼국지', 김성환의 '꺼꾸리군 장다리군'과 함께 당대의 3대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2009년 '진진돌이 에볼루션'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돼 포털에 연재되기도 했다.
정 화백은 은퇴 후에도 '왈순아지매' 연재를 이어갔다. 2012년 포털 블로그를 개설하면서다. 당시 정 화백은 78세였다. 2018년 5월 24일에 실린 게 그의 마지막 만평이었다.
빈소는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다. 14일부터 조문객을 받는다. 발인은 16일. 유족으로 부인 이화미씨와 아들 택준씨, 딸 혜승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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