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철·추석 흥행 실패…관객 줄며 영화진흥예산 고갈
‘천박사 퇴마연구소: 설경의 비밀’이 추석 시즌을 맞아 지난 9월27일 개봉한 기대작 3편 중 유일하게 손익분기점을 바라보고 있다. 여름 텐트폴 시즌에 이어 추석 시즌에도 한국영화가 저조한 흥행 실적을 내며, 안갯속을 헤메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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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영화관통합전산망(KOBIS)에 따르면, 추석시즌을 맞아 지난달 27일 개봉한 ‘천박사 퇴마연구소: 설경의 비밀’(천박사), ‘1947 보스톤’(보스톤), ‘거미집’ 중 최대 누적 관객을 모은 영화는 ‘천박사’로 9일까지 175만여명이 봤다. ‘보스톤’은 85만여명, ‘거미집’은 29만여명의 관객이 들었다.
이 같은 스코어는 여름 휴가철 빅시즌을 연상케 한다. 여름 흥행 기대작 3편 중 ‘밀수’만이 손익분기점인 400만명을 넘겨 누적 관객 514만명의 기록을 세웠고,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384만명의 관객이 들며 손익분기점 도달에 실패했다. 막대한 투자금을 들인 ‘더 문’의 경우엔 지금까지 전국에서 51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체면을 구겼다.
추석 연휴와 한글날로 이어지는 2주간의 가을 시즌 흥행 성적은 여름 시즌의 반토막 수준이다. ‘천박사’가 240만명의 손익분기점 달성을 바라보는 정도고, 다른 영화는 수익을 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보스톤’의 손익분기점은 450만명, ‘거미집’은 200만명이다.
세 영화보다 늦은 지난 3일 개봉한 로맨스 코미디 영화 ‘30일’이 일주일 만에 77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다크호스’로 활약하고 있지만, 다른 영화의 관객 유입으로 확대되진 못하고 있다. 이번엔 ‘오펜하이머’나 ‘엘리멘탈’ 같은 외화의 위협이 없었다는 점에서 더욱 우울한 가을 수확이다. 할리우드 SF영화인 ‘크리에이터’가 3일 개봉하긴 했지만, 누적관객은 21만여명에 그친다.
그간의 극장 상황을 보면, 관객이 특정 작품에 몰릴 경우 다른 영화는 줄어드는 모습이다.
지난 4일 개막한 부산영화제에서도 이런 한국 영화의 실적 저조에 대해 우려가 쏟아졌다. 현지에서 만난 많은 배우와 감독, 제작자들은 “이렇게 관객이 없을지는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안타까워했다.
업계에선 극장 영화 관람료 인하까지 진지하게 논의되지만, 이미 떠난 관객을 돌아오게 하기엔 늦었다는 얘기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중인 지난 7일 박기용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은 부산 현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극장 티켓 가격이 적정한가라는 질문에 “1만5000원이라는 정해진 가격에 심리적인 압박이 있는 것 같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인하에 대해 극장 관계자들과 여러 차례 논의했는데 ‘입장료를 내릴 수는 있지만, 내려도 관객이 없으면 갈 데가 없다. 굉장히 조심스럽고 어렵다’고 하시더라”면서 “다양한 시기에 관람을 독려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예산이 없는 상황에서 함부로 얘기하기는 힘들다”고 토로했다.
한국 영화가 저조한 실적을 내고 있는 가운데, 지난 8월 서울의 한 극장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름 흥행 시즌에 이어 추석 시즌에도 대부분의 한국영화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재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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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입장권 부과금 수입으로 유지돼 온 영화발전기금도 극장 관객이 줄며 바닥을 드러냈다.
박 위원장은 “올해 연말까지 발전 기금이 거의 고갈된다. 잘하면 이십억원이나 십몇억원이 남게 되는 최악의 경우가 될텐데, 내년에 극장 부과금은 350억원, 아니면 300억원으로 예상한다. 내년 예산을 영발기금으로 충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예산은 지난 2022년 1100억원에서, 올해 850억원, 그리고 내년엔 734억원(예상)으로 줄어든다.
그나마 일반회계에서 270억원을 충당한 금액이다. 이에 따라 내년 지역 영화제 예산은 크게 줄어들 전망이고, 영진위가 직접 집행하던 한국 영화 투자(출자)는 문화체육부가 일반회계에 포함된 금액으로 대신 집행할 예정이다. 영화계는 이렇게 되면, 투자 영화 선정에 정부의 입김이 세질 수 있다며 우려한다. 영화제 지원 축소와 관련해선 이미 많은 단체들이 공동으로 반대 성명을 냈다.
극장 수익이 줄고, 영발기금이 바닥나고, 영화 진흥을 위한 예산도 줄어들면서 영화계는 울상이다. 민간 자본에 의한 대형 영화의 제작은 주춤할 것으로 보이고, 영화제에서 틀 신선한 영화를 만들기도, 신진 감독의 등용문 역할을 하는 영화제를 운영하기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부산=엄형준 선임기자 t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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