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과 마이크 매기 미네르바 대학교 총장(왼쪽 부터)이 5일 전라남도 신안 씨원리조트에서 열린 '2023 김대중 평화회의'에 앞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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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이 급부상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대학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졸업장의 가치가 예전 같지 않고, 학생 수가 줄고 있는 대학에 미래는 있을까. 이 문제를 고민하는 두 석학이 만났다. 오세정(70) 전 서울대 총장과 마이크 매기(52) 미네르바대학 총장. ‘2023 김대중 평화회의’ 학술대회가 열린 전남 신안군 자은도에서 5일 만난 두 사람은 “대학이 새로운 방식으로 학생들을 도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대학의 역할과 책임은 미래에도 유효한가.
마이크 매기 미네르바대학 총장(이하 매기)=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대학은 젊은이들이 전 세계가 직면한 여러 과제를 외면하지 않고 해결하는 데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다. 기후변화와 팬데믹, AI의 윤리적 문제 등이다. 더 평화롭고 지속 가능하며 공평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대학은 학생이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쌓도록 도와야 한다.
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이하 오)=오랜 역사 동안 학생을 교육하고 학문을 연구해온 대학의 본질적인 역할은 변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산업화 시대에 필요한 지식을 효과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대학이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제 단순한 지식 전달은 교육의 본질이 아니다. 대학은 이제 창의력을 키우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미네르바대학은 혁신적인 교육 방식의 선구자라고 본다.
매기=미네르바대학에는 여러 혁신이 통합돼있다. 우선 글로벌 문화 몰입이다. 우리 학교엔 100개국에서 온 재학생이 있는데, 미국인이 15% 미만이고 한국인은 5% 정도다. 글로벌 다양성은 그 자체로 학습 경험이 된다. 우리 학생은 매우 높은 수준의 글로벌 역량을 갖추고 졸업한다. (※2014년 문을 연 미네르바대학은 캠퍼스가 없는 대학으로 모든 수업은 온라인 강의로 진행되고 학생은 매 학기 샌프란시스코·서울·베를린·런던·타이페이 등을 돌아다니는 독특한 학사 과정을 운영한다.)
마이크 매기 미네르바 대학교 총장이 5일 전라남도 신안 씨원리조트에서 열린 '2023 김대중 평화회의'에 앞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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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에서 적용할 수 있는 혁신은 뭘까.
매기=우리는 1학년 때 학제 간 융합 교육을 한다. 철학을 배우며 얻은 지식을 인공지능 문제에 적용하는 법을 가르치는 식이다. 학제 간 문제 해결 습관을 기르는 것이다. 우리 학교가 높은 창업률을 보이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졸업생 중 약 12%가 창업을 한다. 대표적으로 대형 선박에 설치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 포집 장비를 생산하는 ‘Seabound’라는 회사는 두 명의 동문이 공동 설립했는데, 중국과 스웨덴 출신으로 국적도 다르고 전공도 공학과 외교·무역학으로 다르다. 과학적 아이디어와 국제 규제에 대한 지식이 융합해 성공한 회사다.
오=한국 대학은 전공 간의 장벽이 상당히 높다. 현재 그 장벽을 깨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교수 간 어려운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총장 재임 시절에 더 많은 학생이 복수전공과 부전공을 할 수 있도록 했는데, 매기 총장의 말처럼 다른 전공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제공돼야 한다.
-한국 저출산 문제도 대학의 위기 요인이다.
매기=한국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전 세계 많은 국가가 조만간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가 앞으로 또 다른 기회일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더 많은 글로벌 인재를 한국으로 유치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면 한국 대학과 한국 사회의 경쟁력이 더 강화될 수 있다. 한국 학생들이 전 세계의 동료들과 협업하고 글로벌 전문 네트워크를 구축할 기회가 될 수 있다.
오=한국의 문제는 모든 자원이 수도권에 너무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과 지방에 따라 위기의 정도가 다르다. 이런 격차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정책으로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의 존폐 문제는 매기 총장의 말처럼 세계화, 국제사회와의 통합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매기=한국이 지닌 앞으로의 기회에 대해 생각해보면, 한국에서의 삶은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수준이 매우 높아졌다. 외국 학생들의 한국 유학에 대한 관심도 많다. 미네르바대학의 많은 학생도 서울이라는 도시와 사랑에 빠진다. 그만큼 한국 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크다는 의미다. 오늘날 한국의 높은 인기가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
-대학에서 배운 지식이 유용하지 않다는 지적도 많은데.
매기=우리는 지식 자체가 진화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과거처럼 대학에서 4년을 공부하면서 습득한 지식으로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미네르바대학 졸업생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중 하나는 우리가 학습하는 방법을 가르쳤기 때문에 직장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mazon에서 로봇 공학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한 동문이 있는데, 그는 채용되었을 때 그가 배워본 적도 없는 지식을 요구하는 프로젝트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필요한 것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알고 있었고, 스스로 배우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처럼 학생들이 졸업 후에도 자기 주도적 학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대학 교육의 목표가 돼야 한다.
오=한국 대학은 지난 10~20년 동안 학문에 대한 강조가 너무 강했던 것 같다. 서울대에서는 ‘미래의 학자를 기르자’는 슬로건을 내걸었는데, 나는 그 슬로건을 포기했다. 이제 더는 우리 대학의 사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대학의 사명은 모든 분야의 미래 리더와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학문적 연구에 매우 재능이 있는 소수의 사람은 교수가 가르치는 모든 지식을 받아들이겠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그렇지 않다.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궁극적으로 학생 맞춤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마이크 매기 미네르바 대학교 총장이 5일 전라남도 신안 씨원리조트에서 열린 '2023 김대중 평화회의'에 앞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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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의대 열풍’ 문제도 있다.
오=학생과 학부모가 고소득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직업을 찾으려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한국에선 고등학생들이 자신의 미래에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부모의 조언이나 사회적인 분위기에 휩쓸려 안정적이고 고임금 직업과 연관된 전공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도 의대가 인기가 높지만, 학부를 졸업하고 나서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하기 때문에 대학에서 공부하며 자신의 미래를 탐구할 시간이 있다. 한국의 학생은 자신의 가능성이 무엇인지 모른다. 고등학생들이 미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한국의 입시를 바꿔야 한다.
매기=저도 그렇게 생각한다. 대학 진학은 단지 직업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미네르바대학의 교육 목표가 학생들이 편협한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기보다 세계 시민으로서 기여할 수 있는 가치관을 가지게 하는 것처럼 모든 학생에게 이런 인식을 형성시킬 기회가 제공돼야 한다. 한국과 미국의 상황은 다르지만, 교육 과정 내에서 학생들이 다양한 분야로 진학할 수 있도록 이끄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가 제 기능을 다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갖춘 사람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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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
서울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1982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물리천문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2016년에 바른미래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해 2018년 10월까지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다. 2019년 서울대 제27대 총장으로 취임해 2023년 1월에 4년간의 임기를 마쳤다.
◇마이크 매기(Mike Magee) 미네르바대학 총장
홀리 크로스대학에서 영어학·정치학을 전공하고 1999년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하버포드칼리지와 휘튼칼리지,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에서 영문학과 철학을 가르쳤다. 2015년에 초·중·고 공교육의 혁신적인 리더를 지원하는 비영리 단체인 ‘Chiefs for Change’을 창립했고, 2022년 4월부터 미네르바대학의 2대 총장으로 부임했다.
신안=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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