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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유가족 “생명안전기본법 제정해야”[국회를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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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지난달 20일 서울시청 앞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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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생애 처음 국회를 찾은 날을 잊지 못한다. 국민의힘이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를 보이콧하자 참여를 호소하기 위해 지난해 12월20일 국회에 왔다.

이 위원장은 지난 1년 남짓 국회 문턱을 자주 드나든 이들 중 한 명이다. 국정조사 이후에도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을 위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 소속 여야 의원실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 특별법 제정에 별 호응 없는 국회 앞에서 10일간 단식 농성을 벌이고 서울 마포역~국회 앞 거리 4㎞를 삼보일배하며 행진했다. 마침내 지난 6월30일 특별법이 국회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는 순간을 본회의장에서 지켜봤다.

이 위원장에게 국회는 어떤 의미일까. 그를 지난달 20일 서울광장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에서 만났다.

이 위원장은 특별법이 패스트트랙에 오른 날 지난한 투쟁의 효능감과 동시에 유권자로서의 좌절감을 느꼈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려면 국회 재적 의원 5분의 3(180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의석뿐 아니라 야 4당의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이 위원장은 “특별법을 21대 국회 내에 통과를 시키느냐, 못 시키느냐 하는 절박한 선에 있었다”며 “국회의장이 의결됐다고 선포할 때 그나마 우리가 길바닥에서 투쟁하고 힘들게 목소리를 외쳤던 것에 대한 보답을 받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국민의힘이 표결에 참여하지 않고 본회의장을 나갔을 때 느꼈던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정치적 소신에 따라 반대표는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퇴장은 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요. 어떻게 이렇게 무시하나 우리를? 너무 화가 났어요.”

이 위원장은 여당 의원들을 가리켜 “대통령실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 “거수기”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 사람들은 당을 위해서 정치를 하는가, 대통령을 위해서 정치를 하는가. 국민을 바라보고 하는 정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국민의힘 지도부가 주호영 원내대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서 ‘윤심’ 김기현 대표 체제로 바뀐 뒤 차이를 극명히 체감했다. 그는 “김기현 대표 체제로 바뀌고 난 뒤 우리가 엄청나게 많이 만나달라고 했는데도 답장 하나 없었다”며 “‘이태원 유가족들에겐 아무도 접근하지 마라’는 메시지가 주어진 것처럼 한순간에 차단하고 외면했다”고 주장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패스트트랙에 지정된 뒤 행안위 전체회의까지 통과했지만 아직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관문이 남아 있다. 본회의를 통과한 뒤에도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 위원장은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그는 “우리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탄핵하고자 할 때 윤 대통령이 ‘책임이 있는 사람한테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그러면 책임이 있는지, 없는지를 밝혀봐야 될 것 아니겠나”라며 “이걸 막으면 정부 스스로 책임 있고 문제가 있다는 걸 밝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역사는 시간이 더 걸릴 뿐이지 반드시 밝혀진다. 만약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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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지난달 20일 서울시청 앞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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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위원장은 국회가 재난재해 참사를 다루는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 국회의원이 유가족들에게 “좀 더 힘차게, 당차게 투쟁해야 한다”고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 위원장은 “항상 유가족이 땅바닥을 기어 다니고 진상규명을 호소하고 그래오니까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생각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며 “그건 당신들이 해야 할 일 아니냐. 왜 국민이 진상규명 해달라고 외쳐야 하느냐. 정치인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 위원장은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국회의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생명안전기본법은 2020년 11월 발의돼 행안위에 계류돼 있다.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참사 등 여러 재난재해 참사에 대한 독립적·객관적 조사가 미비했던 것을 보완하기 위한 법안이다. 독립적인 조사기구 설치 등이 담겨 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에도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에 관한 청원’이 올라와 지난달 28일 동의자 5만명을 넘겼다. 30일 안에 5만명 이상이 동의하면 법안이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된다.

이 위원장은 “진상규명을 위해서 길에서 힘들게 투쟁해왔는데 생명안전기본법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그 법이 통과됐다면 우리가 이렇게 길거리에 나서서 할 필요가 없었는데 너무 답답하고 속이 터졌다”라며 “결국은 또 누군가 희생되어야만 이런 법을 통과시키려는 상황이 생기는 게 너무 답답하고 안타깝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사회적 약자들이 스스럼없이 국회를 찾을 수 있게 국회 스스로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이 참사를 겪기 전에는 국회라는 담장을 넘어가는 게 굉장히 부담스럽고 ‘저기는 특정한 사람들만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다”며 “이 나라 정치인들의 권위의식이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 인식을 바꾸게끔 국회가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다 이뤄진 뒤에도 국회를 변함없이 찾을 예정이다. “사회적 약자들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저는 계속 싸울 겁니다. 저와 똑같은 아픔을 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경험이 있는 제가 가서 대신해서 이야기하고 싸워주려는 각오를 하고 있어요.”

이달 29일은 이태원 참사 1주기이다. 유가족협의회는 1주기 당일 서울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4대 종단 종교 행사를 한 뒤 이태원역~옛 녹사평역 분향소~서울광장 분향소까지 행진할 계획이다. 이태원 참사 1주기 시민추모대회 추진위원 1만5900명도 모집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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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1주기 시민추모대회 추진위원 모집 웹자보.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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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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