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추석 연휴 첫날인 28일 오후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대한항공 화물터미널을 방문, 항공 화물 종사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물가와 성장, 금융안정이라는 목표를 위한 한국 경제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취하기 어려운 ‘트릴레마(trilemma‧삼중 딜레마)’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고금리·고물가 속에서 경기 회복세가 둔화해 저성장이 굳어지는 조짐이 분명해지지만, 가계부채 증가세와 역대 최대로 벌어진 한미금리 차(최대 2%포인트)는 긴축 기조에 힘을 실으며 부딪힌다. 그렇다고 경기 부양만 좇기엔 물가 불확실성과 금융 불균형 누증이 걱정이다. 최근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고금리 장기화를 시사하면서 이같은 삼중고를 둘러싼 불확실성도 커졌다.
세 가지 목표 중 핵심은 물가안정이다. 주요 선진국에 비해 인플레이션을 비교적 빠르게 잡았고 현재도 물가가 예상 경로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평가지만, 최근 국제유가가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통계청에 따르면 8월 소비자 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4% 상승해 7월 2%대에서 반등했다. 8월 생산자물가지수도 전월 대비 0.9% 올라 지난해 4월(1.6%) 이후 1년 4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을 보였다. 집중호우와 폭염 등 영향으로 농산물 가격이 13.5% 올랐고, 국제유가 상승 여파로 석탄‧석유제품(11.3%), 화학제품(1.4%) 등이 오르면서 공산품 가격도 1.1% 상승했다. 향후 1년 뒤 물가 전망을 나타내는 기대인플레이션은 9월 3.3%로 여전히 물가 목표치(2%)보다 높은 수준이다.
그렇다고 바로 긴축모드로 들어갔다간 자칫 내수 회복 동력을 훼손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정책 당국과 한국은행의 고민은 크다. 고금리 여파는 내수와 수출 부진으로 이어저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출 금리도 덩달아 뛰면서 국민의 이자 부담도 커지게 된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미국의 물가 수준이 안정을 찾아가면서, 한국의 물가 상승 압박도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문제는 성장인데,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감소로 전환하고 투자가 늘지 않는 상태라 잠재성장률이 1%대로 진입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
하지만 공격적인 경기 부양책을 펼치기엔 금융안정 리스크가 걸림돌이다. 한은은 지난달 26일 금융안정 상황을 점검하면서 “주요국 긴축기조 지속, 국내외 부동산시장 불확실성 등 대내외 리스크 요인이 있는 상황”이라며 “금융 불균형(레버리지 확대를 바탕으로 한 자산가격 고평가)이 다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단기 금융 불안 수준을 평가하는 금융 불안지수(FSI), 중장기적인 금융 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금융 취약성 지수(FVI)는 8월 나란히 상승했다. 특히 올 2분기 가계와 기업 부채가 경제 규모의 2.26배 수준까지 불어나면서 금융 불균형 우려를 키웠다. 한은은 “채무상환부담이 소비와 투자 부진으로 이어져 성장 잠재력을 약화하고 금융시스템 대응 여력을 저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 부양을 위해 유동성 공급을 늘렸다간 겨우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는 물가를 다시 자극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트릴레마’에 대한 지적은 앞서 미국에서도 지적됐다. 한국보다 견조한 성장세를 보이긴 하지만, 고물가와 막대한 부채가 발목을 잡을 수 있어서다. 비관적인 경제 예측으로 ‘닥터 둠’이라 불리는 누비엘 루비니 미 뉴욕대 교수는 “물가 안정과 경제성장, 금융 안정을 동시에 달성하지 못하는 트릴레마에 갇혀 금리 인상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경제를 질식 상태로 빠지게 하고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전문가는 미래 불확실성에 대비하면서 경제 체질 개선에 나설 때라고 본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내년 한국 경제는 장기 저성장에 대한 우려 불식을 위해 경제 펀더멘털을 강화하고, 대외 리스크의 국내 전이 차단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 등이 필요하다”고 봤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물가와 금융안정을 함께 관리하면서 바탕을 만들고 그 위에서 성장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고금리 등으로 성장세가 단기적으로 둔화하더라도 정책 당국에 대한 신뢰를 높여 견조한 성장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효정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