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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유가와 세계경제

'유가 이 손 안에 있소이다'…국제사회 천민에서 인싸된 빈살만[글로벌스트롱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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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는 21세기 최대 성공사례"…유가 상승에 작년 G20 중 성장률 1위

'아직도 사우디가 천민국가냐' 질문에 바이든은 침묵, 빈살만은 미소

'오일머니 없인 탈석유 없다' 딜레마…"사우디, 시간과 싸우고 있어"

[이데일리 박종화 기자] “사우디아라비아는 21세기의 최대 성공 사례다”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 20일 미국 폭스뉴스에 방송된 인터뷰에서 자신있게 말했다. 그는 사우디가 주요 7개국(G7)에 들어가려 한다며 “우리 목표는 사우디를 더 발전시키고 도전을 기회로 바꾸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인터뷰는 5000억달러(약 670조원) 규모 초대형 신도시 건설사업이 한창인 네옴에서 진행됐다. 사우디의 미래에 대한 빈 살만의 자신감을 보여주기에 최적의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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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왼쪽부터)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손을 맞잡은 모습.(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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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살만의 이 같은 자신감은 허세가 아니다. 지난달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빈 살만은 글로벌 무대의 ‘인싸’(인사이더) 노릇을 톡톡히 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상임의장 등 국제사회 거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양자회담을 했다. 이번 G20 정상회의의 최대 성과인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에서도 사우디 몫을 챙기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정상회의가 끝난 후엔 국빈 자격으로 인도에 더 머물며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양국 협력 강화를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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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 방문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주먹인사하고 있다.(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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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천민국가 만들겠다’ 바이든, 유가 오르자 빈 살만과 주먹인사

몇 년 전만 해도 이 같은 풍경은 상상도 못했다. 2015년 국방장관, 2017년 왕세자 지위를 꿰차며 사우디 내에서 절대권력자로 등극횄지만 국제사회에선 제대로 입김이 먹히지 않았다. 2018년 사우디 반정부 언론인인 자말 카슈끄지가 주(駐)튀르키예 사우디영사관에서 살해당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빈 살만과 사우디는 국제사회에서 왕따가 될 위기에 처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19년 민주당 대선 경선 중 카슈끄지 살해 사건에 대해 “우리는 사우디가 대가를 치르게 하고 ‘파리아’(Pariah·인도의 불가촉천민)로 만들 것”이라고 공언했다.

경제적 상황도 여의치 않았다. 미국발 셰일혁명으로 국제 유가가가 안정되면서 사우디는 과거처럼 ‘오일파워’를 행사할 수 없었다. 빈 살만은 이 같은 상황을 극복하고자 집권 직후부터 감산으로 유가를 올리려고 했으나 산유국들이 이합집산하면서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상황이 바뀐 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서방이 러시아의 에너지 산업을 제재하면서부터다. 공급 감소 우려에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툭하면 감산 약속을 깨던 러시아도 사우디에 협조하기 시작했다. 석유 수출이 제한된 상황에서 러시아도 고유가를 유지하는 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사우디의 경제 성장률이 8.7%를 기록, G20 국가 중 최고치를 기록한 것도 고유가 덕이 크다. 중국의 경제 부진과 전 세계적인 통화 긴축으로 상반기 잠잠해지는 듯 했던 국제유가는 사우디와 러시아가 하루 130만배럴에 이르는 감산 정책을 유지한다는 소식에 다시 배럴당 90달러를 웃돌고 있다.

빈 살만에 대한 국제사회 대접이 달라진 것도 유가 덕이 크다. 사우디를 ‘천민국가’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던 바이든은 지난해 사우디를 찾아 빈 살만에게 유가를 낮춰달라고 요청했다. 빈 살만은 바이든에게 화답하지 않았다. 카슈끄지와 함께 일했던 캐런 아티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는 바이든이 빈 살만과 주먹 인사를 할 것을 두고 “바이든 대통령은 내 동료의 피를 손에 묻힌 사람과 주먹 인사를 나눴다”고 비판했다. 당시 정상회담에서 한 기자가 바이든에게 “여전히 사우디가 천민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바이든은 침묵했고 빈 살만은 미소 지었다. 두 사람 사이에 힘의 균형이 누구에게 쏠려 있는지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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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비전 2030’ 발표 당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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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빈 살만 ‘탈석유 실험’ 성공할까

고유가는 빈 살만 개인뿐 아니라 사우디 왕실과 나라 전체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지난 2분기 기준 사우디 GDP의 33%가 석유 산업에서 나왔다. 17%를 차지하는 정부 지출도 사실상 오일머니가 종잣돈이다. 지난 10년간 줄곧 저유가 때문에 재정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사우디의 재정 수지는 지난해 유가가 오르면서 흑자로 전환했다. 하지만 상반기 다시 유가가 안정되면서 53억리얄(약 1조9000억원) 적자를 봤다. 유가가 하락하면 사우디 경제 전체가 휘청이는 이유다. 경제 전문가들은 유가가 75~80달러는 돼야 사우디가 재정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빈 살만도 경제 다각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사우디 정부가 2016년 ‘비전 2030’을 통해 네옴 건설, 첨단 제조업 육성, 관광 활성화 등을 담은 것도 탈석유화를 위해서다. 사우디 국부펀드(PIF)는 스포츠 산업 육성을 위해 지난 2년 동안 최소 63억달러(약 8조3000억원)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얄궂은 건 탈석유가 궤도에 오르기 전까진 막대한 오일머니가 장작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우디 정부는 2021년 경제 다변화에 27조리얄(약 9600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는데 이 중 정부가 직접 투자하기로 한 돈만 10조리얄(약 3600조원)이다.

벤 말로 영국 텔레그래프 해설위원은 “거대한 건설 프로젝트를 통해 왕국을 재편하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빈 살만은 유가 하락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립 기고가인 벤 유다 역시 사우디 경제가 가장 좋은 지금도 실업률이 20%가 넘는다는 걸 지적하며 “빈 살만은 사우디가 시간과 싸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지적했다.

이런 사정 때문에 빈 살만은 감산 약속을 배신하는 것에 아주 민감하다.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부다비 군주 겸 UAE 대통령은 빈 살만의 멘토라고 불리며 함께 캠핑을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지만 UAE가 사우디의 감산에 제동을 걸면서 원수 같은 사이가 됐다. 당시 빈 살만 왕세자는 “우리의 등 뒤를 찔렀다”며 “내가 그들에게 무엇을 할 지 알게 될 것”이라고 거세게 화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는 2020년 러시아가 약속을 어기고 석유를 증산하자, 러시아를 더 많은 양을 증산해 러시아 석유업계에 치명타를 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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