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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세계와 손잡는 K팝

K팝 걸그룹도 조상님은 있었어…뮤지컬 ‘시스터즈’로 돌아온 박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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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스터즈·바니걸스 등 여섯 걸그룹 무대 재현

선배들에 바치는 찬사 가득…캐릭터 깊이는 아쉬워

경향신문

창작 뮤지컬 <시스터즈>를 연출한 박칼린. 신시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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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핑크, 뉴진스, 르세라핌, 에스파…. 세계가 열광하는 K팝 걸그룹에게도 ‘조상님’이 있었다. 뮤지컬 음악감독, 연출자, 배우로 유명한 박칼린이 한국의 옛날 걸그룹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창작 뮤지컬 <시스터즈>를 들고 9년 만에 연출자로 돌아왔다. 박칼린은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연습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 사람들이 ‘우리 역사에 이런 K팝의 조상님들이 한국을 빛내고 있었구나’ 하고 박수를 쳐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시스터즈>의 주인공은 한 시대를 풍미한 여섯 걸그룹이다. 1940년대 조선악극단 여성 단원들이 모인 ‘저고리 시스터즈’, 1950년대 미국에서 스윙 재즈로 대성공을 거둔 ‘김시스터즈’, 1960년대 만인의 연인으로 불렸던 ‘이시스터즈’와 미군부대를 장악한 ‘코리아 키튼즈’, 1970년대 엄혹한 시대에서 청춘의 상징이었던 ‘바니걸스’와 ‘희자매’다. 박칼린은 약 10년 전부터 구상했고 작품을 만들기 위해 당사자들을 찾아다니며 허락을 구했다고 한다.

“한국 역사의 ‘시스터즈’ 370팀 중에 가장 업적을 기리고 싶은 여섯 팀을 선정했습니다. 이분들이 허락을 안 해주시면 공연을 못 하니까 무서웠어요. 자기 얘기를 남이 아무리 열심히 그려봤자 잘못 그릴 수 있잖아요. 다들 ‘이건 아니잖아’라고 말씀하지 않으신 것만 해도 저는 너무 고마웠죠.”

시스터즈들의 무대는 일제강점기부터 미군정기,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군사독재 정권까지 한국 근대사를 관통한다. 무대 배경의 스크린으로 당대 자료 영상을 보여줘 마치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그 시대의 사회적 이슈 없이 대중음악이 존재할까요. 그때 그 얘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대중음악이라고 생각해요. 금지될 정도의 가치와 책임이 있기 때문에 역사적 이슈들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걸그룹 역의 여성 배우 10명과 해설자 역의 남성 배우 1명이 ‘쇼 뮤지컬’을 펼친다. 회차마다 여성 배우 6명이 무대에 올라 의상을 갈아입으며 주연 2명, 조연 3~4명을 번갈아 연기한다. 배우들이 주연과 조연을 모두 경험해야 진짜 ‘걸그룹’으로 뭉칠 수 있다는 박칼린의 생각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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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시스터즈>의 한 장면. 신시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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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나름대로는 ‘배우들이 시스터후드(자매애)를 느꼈으면’ 했어요. 어느 날 센터에서 주연으로 박수를 받았으면 다른 날에는 날개(조연)가 되는 거죠. 이렇게 해야 다른 사람이 뭔가 어긋났을 때 바로 받쳐줄 수 있거든요. 시스터즈는 모두 그룹으로 활동하는데 서로의 호흡을 잘 알아야 해요.”

배우들은 ‘유 아 마이 선샤인’(김시스터즈), ‘울릉도 트위스트’(이시스터즈), ‘한 마리 새가 되어’(희자매), ‘거위의 꿈’(희자매 출신 인순이) 등 대표곡 무대를 재현한다. 저고리 시스터즈의 멤버 이난영의 딸과 조카로 구성된 김시스터즈는 이난영의 가르침으로 동서양의 20여가지 악기를 배웠다. <시스터즈>에서 김시스터즈를 연기하는 배우들도 실제로 클라리넷, 밴조, 마림바를 연주한다. 역시 박칼린의 권유에 따른 것이다.

“김시스터즈가 악기에서 빛을 보지 못했으면 미국에서 묻혔을 거예요. ‘엄마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 증명됐죠. 저도 ‘김시스터즈는 연주 없이 표현이 안 될 것 같다’고 하니까 배우들이 하나둘씩 다 욕심내서 (연주)하더라고요. 배우들의 ‘삑사리’까지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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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시스터즈>의 배우 김려원, 정연, 홍서영이 ‘김시스터즈’를 연기하면서 마림바를 직접 연주하고 있다. 신시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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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시간 110분 내에 여섯 걸그룹의 쇼를 보여주다 보니 개별 캐릭터의 깊이는 아쉽다. 여성 인권이 낮은 시대에서 동양인 걸그룹이 겪어야 했던 인종차별과 여성혐오에 대해서도 무게를 싣지 않았다. 박칼린은 의도적으로 즐거운 연출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역사의 여걸들을 ‘셀러브레이션(기념)’하고 싶었어요. 실제로는 이분들이 얻어맞기도 하고, 돈을 뜯기기도 하고, 남편이 바람나기도 했죠. 하지만 고통도 웃고 털어버리는 쪽으로 연기하자고 했어요.”

<시스터즈>에는 음악인 박칼린이 선배들에게 바치는 존경과 찬사가 가득하다. 박칼린은 미국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에서 클래식 첼로를 전공했고, 서울대 대학원 음악과에서는 국악 작곡을 전공했다. “저는 음악인 출신이라 도제 시스템으로 컸기 때문에 선후배를 너무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요즘 클래식은 선생님한테 돈을 주고 레슨을 받는다는데 저는 반대해요. 선생님의 삶과 철학을 다 배워야 음악을 제대로 배우는 거죠. 예술의 세계는 ‘누구든 혼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시스터즈>는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에서 11월12일까지 공연한다. 코리안 키튼즈의 윤복희, 바니걸스의 고재숙, 이시스터즈의 김희선은 지난 8일 개막 공연을 관람하고 커튼콜 무대에 섰다. 고재숙은 “즐겁고 그리운 그 시절의 좋은 시간을 보여줘서 정말 감사하다. 멋진 시간이었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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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세번째부터) ‘바니걸스’의 고재숙, ‘이시스터즈’의 김희선, ‘코리안 키튼즈’의 윤복희가 지난 8일 뮤지컬 <시스터즈>의 개막 공연 커튼콜 무대에 서 있다. 신시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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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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