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안전하다고 누가 보장하냐"
방류 피해 뻔해도 반대 의견 적극 말 못해
28일 일본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오나하마 항구의 오나하마 수산시장에 다양한 현지 해산물이 진열돼 있다. 이와키(후쿠시마현)=최진주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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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바다는 확실히 안전합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그렇게 인정했잖아요? 오늘은 여기서 나는 수산물 맛있게 먹고 내일은 바다에 들어가서 서핑을 할 겁니다.”
28일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남쪽으로 약 55㎞ 떨어진 이와키시 오나하마 수산시장에서 만난 50대 남성의 말이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일본명 ‘처리수’) 방류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고 하자 그는 주저 없이 취재에 응했다. 친구들과 함께 도쿄에서 후쿠시마로 놀러 왔다는 그는 자신에 찬 표정으로 “IAEA와 일본 정부를 신뢰한다”며 “바다에 들어가는 것이 전혀 불안하지 않다”고 했다.
수산시장 상인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생굴을 파는 50대 남성 상인은 “(오염수 방류 이후 검출된 방사능 물질이) 기준치 이하이므로 안전하다. 전혀 문제없다”고 했다. 그는 “언론이 덜 시끄럽게 하면 막연한 걱정 때문에 수산물 소비가 줄어드는 ‘소문 피해’도 없을 것”이라며 "언론이 처리수 문제를 지나치게 많이 보도한다"고 불평했다.
젓갈을 판매하는 50대 여성 상인도 “한국과 중국은 우리보다 원전에서 삼중수소를 더 많이 방출한다고 들었는데, 도대체 왜 일본만 비난하는지 모르겠다”며 역정을 냈다. 그는 손님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목소리를 높였다.
상인들은 "언론만 조용하면 피해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수산시장의 실제 풍경은 상인들의 기대와 달랐다. 식당과 기념품 상점은 북적였지만 수산물 판매점은 한산했다.
28일 일본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오나하마 항구의 오나하마 수산시장이 한산하다. 일부 손님들이 상품을 살펴보고 있다. 이와키(후쿠시마현)=최진주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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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 피해 주범' 오해 살까 반대 견해 밝히기 꺼려
수산시장이 있어 오염수 이슈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와키시의 여론은 양분돼 있었다. 오염수 방류에 찬성하는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입장을 밝혔고, 반대하는 시민들은 말을 아꼈다. ‘소문 피해를 일으키는 주범’으로 몰릴까 봐 주저한 것이다. 일본 보수진영에선 “방류 반대 의견을 밝히는 건 한국과 중국의 일본 괴롭힘에 동조하는 행위로, 불안감을 부추겨 어민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주장을 반복하며 사실상 침묵을 강요하고 있다.
방류 반대파들은 잔뜩 몸을 사렸다. 이와키시의 후쿠시마현어업협동조합연합회(후쿠시마현어련)와 오나하마항의 오나하마저인망어업협동조합은 한국 언론이라는 말을 듣고 취재를 거절했다. 후쿠시마 주민들을 모아 다음 달 8일 방류 중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할 예정인 변호사마저 “해외 언론의 취재는 사양한다”고 말했다.
소극적 반대파였던 주민들은 체념한 듯 보였다. 대형쇼핑몰인 이온몰에 아이와 함께 나온 30대 여성은 “아이를 생각하면 솔직히 불안하지만 나라가 방류를 결정했는데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했다. 한 택시 기사는 “IAEA는 신뢰하지만 소문 피해는 반드시 생길 것”이라면서도 “나라가 결정했으니 (반대하기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28일 일본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오나하마 항구의 오나하마 수산시장 기념품 코너가 손님으로 북적이고 있다. 이날 수산시장 건물 내 식당과 기념품점은 지역민과 관광객 등 비교적 많은 손님이 찾았으나 정작 생굴과 생선 등 수산물을 구입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이와키(후쿠시마현)=최진주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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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사고 후 아이들 해수욕 못해... 방류는 2번째 가해"
반대 의견을 주저 없이 말하는 건 방류 반대 시위까지 참여하는 ‘적극 반대파’뿐이었다. 27일 이온몰 앞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를 주도한 전일본항만노조 오나하마지부의 다큐 유이치로(43) 서기차장은 “원전 폐로까지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는데 방류를 계속하는 것은 안 된다” “아이들이 마음 놓고 바다에서 헤엄칠 수 있도록 후쿠시마의 부흥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는데 정부와 도쿄전력이 오염수 방류로 지역에 두 번째 피해를 줬다”고 비판했다. 같은 항만노조 오나하마지부 소속인 사사키 오부히데(41)도 “우리 지부 간부 중 3명의 자녀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원전 사고 때 태어났다”며 “우리 아이는 여태까지 한번도 바다에 들어가서 놀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12년 원전 사고의 피해자들도 날 선 반응을 보였다. 도쿄전력 엔지니어 출신인 곤노 스미오(58)는 “소문 피해란 말은 반대 의견을 루머라고 치부하며 억압하려는 의도가 있는 말”이라며 “30년 이상 오염수 방류가 계속돼도 피해가 없을 거라 확신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원전 서쪽 다무라시의 산간 지역에 거주했던 구마모토 미야코(80)도 “정부는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단언하지만 원전 사고 피해자 입장에서 보면 ‘확실히는 모른다’가 더 맞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시다 정권은 처음에는 ‘듣는 귀를 갖고 있다’고 홍보했지만, 지금은 누구의 이야기도 들으려 하지 않고 마음대로 결정한다”고 비판했다.
27일 일본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오나하마 이온몰 앞에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중단을 요구하며 열린 집회 모습. 한국과 일본의 야당 국회의원도 참석했다. 전일본항만노조 오나하마지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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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의 일방적 결정은 후쿠시마의 여론을 분열시켰다. 후쿠시마대 전·현직 교수들이 '지역민의 의견도 들어야 한다’며 원탁회의를 구성한 것도 이 같은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원탁회의는 지난 2개월간 3차례 회의를 열면서 정부와 도쿄전력 관계자를 초청했으나 무시당했다. 원탁회의의 사무국장인 하야시 군페이 교수는 “방류에 반대 의견을 말하기 힘들게 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선 안 된다”며 “중장기 방류 계획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수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키(후쿠시마현)= 최진주 특파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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