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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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말이 연일 격해지고 있다. 기존 정치 문법과 차별화된 직설과 솔직함을 넘어 갈등과 대립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국민 전체를 안고 가려는 통합과 화합의 메시지는 좀체 찾기 어렵다. 대신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전체주의의 대결구도로 나눴다. "야비와 패륜"(광복절 경축사), "제일 중요한 건 이념"(국민의힘 연찬회)이라며 상대를 직격하고 있다.
"국가 정체성 부정 세력" → "사기적 이념" → "싸울 수밖에 없는 세력"
윤 대통령은 6월 자유총연맹 기념식에서 “허위 선동과 조작 그리고 가짜뉴스와 괴담으로 자유 대한민국을 흔들고 위협하며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가진 반국가세력들은 북한 공산집단에 대한 유엔 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고 비판했다. 전임 정부와 야당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8월 들어 수위를 더 높였다. 통상 국론 통합에 주력하던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는 반국가세력들이 활개치고 있다”고 일갈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시대착오적인 투쟁과 혁명, 그런 사기적 이념에 굴복하거나 휩쓸리는 것은 결코 진보가 아니고 우리 한쪽의 날개가 될 수 없다”(25일 국민통합위원회 2기 출범식), "이런 세력들과는 싸울 수밖에 없다"(28일 국민의힘 연찬회),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자유사회를 교란하려는 심리전을 멈추지 않을 것"(29일 민주평통 간담회)이라며 거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탄핵·죽창가·오염수 괴담에... "헌법적 가치 부정하는 세력은 존중키 어려워"
정치권 일각에선 이 같은 메시지에 '보수층 결집' 의도가 담겼다고 해석한다. 올해 한미동맹 70주년에 더해 한일·한미일 관계가 전례 없이 강화된 만큼 시기와 장소, 상황에 맞춰 계획된 발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발언 수위가 너무 높다. 이에 윤 대통령을 오래 지켜본 참모진은 “자유, 자유민주주의, 인권, 법치, 삼권분립, 규범의 질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통령의 일관된 철학”이라고 풀이한다. 헌법적 가치를 뒤흔드는 진영 또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라는 취지다.
윤 대통령과 가까운 정치권 인사는 “통합이든 협치든 대화든 할 수는 있지만, 헌법적 가치를 흔들려는 세력은 다양성이란 차원에서 존중하기 어렵다는 게 윤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인사는 “명백한 북한 도발에도 가짜뉴스를 통해 군사적 주권을 흔드는 행위, 과학적 사실을 기초하지 않고 운동권적 사유 방식을 고집하며 부르는 ‘죽창가’와 같은 선동은 헌법 체계를 흔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해 7월 국민통합위 출범식에서 “통합은 자유, 인권, 법치, 연대라는 보편적 가치의 공유를 전제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복원하고, 북핵 도발 억제를 위한 외교 노력의 결과가 탄핵 구호·가짜뉴스라는 점을 용납할 수 없다고 못 박은 셈이다.
대한민국이 이념으로 갈라져 있다는 인식은 참모들도 다르지 않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29일 기자들과 만나 "똑같은 DNA(유전자)를 가진 민족이 있는데 한쪽은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경제를 발전시키고 문화강국으로 부상했지만 다른 한쪽은 세계 최악의 경제 파탄국, 인권 탄압국이 됐다"며 "한쪽은 자유민주주의 시장체제를 통해 세계가 부러워할 정도로 발전했고, 한쪽은 세습독재 통제경제를 통해 나락으로 떨어진 것인데 이념을 이야기 안 할 수 있겠느냐"고 강조했다.
또다시 피아 구분과 선악 대결에 "전임 정부 폐해 반복 우려"
문제는 윤 대통령의 신념과 달리 이 같은 발언이 논란과 분열을 야기한다는 점이다.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의 언어는 사회적 합의를 달성하기 위한 통치수단이란 점에서 사회적 합의나 여론 형성 없이 일방적으로 피아를 구분한 것은 더 큰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고 평가했다.
보수 진영 일각에서도 안정과 책임이라는 보수 가치의 훼손을 우려한다. 한 관계자는 “전임 정부의 폐해가 우리는 선, 반대 진영은 악으로 구분한 뒤 자신들의 잘못과 책임에 둔감해져 왔던 것”이라며 “그 폐해를 바로잡아 달라고 국민들이 이룬 정권교체인데 다시 분열로 간다면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국방부가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무리하게 추진해 논란을 자초하는 것도 윤 대통령의 의중에 맞추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야당이 문제라고 해도 최근 (대통령의) 메시지는 세련되지 않거나 합의 수준이 높지 않다”면서 “(국민들이 보기에) 지금 상황에서 그렇게 본질적인 부분이 아닐 수 있고, 결국 국정운영 카드가 마땅치 않다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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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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