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5 (월)

이슈 시위와 파업

쌍용차 노동자는 14년을 숨 막혀 살았다···파업 손배액 줄었지만 여전히 “가혹한 판결”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 앞에서 국가가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파기환송심 판결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국가(경찰)가 2009년 회사의 정리해고에 반대해 옥쇄파업을 벌인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파기환송심에서 법원은 노동자들이 국가에 1억66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지난해 11월 대법원이 노동자들 손을 들어주면서 11억원대였던 배상액은 현저히 줄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일부이긴 하지만 손해배상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지운 데 대해 판결을 비판했다. 파업에 대한 손배 소송을 근본적으로 제한하는 일명 ‘노란봉투법’을 서둘러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고법 민사38-2부(재판장 박순영)는 25일 국가가 쌍용차 노동자 36명을 상대로 낸 손배 소송 파기환송심에서 노동자들이 함께 국가에 1억6688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사건 발생 이후 이자를 포함하면 배상금은 2억8000만원가량일 것으로 추정된다. 재판부는 소송비용의 90%는 국가가, 10%는 노동자들이 부담하라고 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2009년 5월 정리해고에 반대해 공장을 점거하고 옥쇄파업을 벌였다. 경찰은 헬기로 노동자들이 있던 공장 옥상에 유독성 최루액을 대량 투하하며 진압했다. 공장 옥상으로부터 30~100m 낮은 고도로 제자리 비행을 하면서 헬기 운행 때 발생하는 강한 바람을 이용해 노동자들을 위협했다. 노동자들이 저항하면서 헬기와 기중기가 일부 손상되자 국가는 손해를 물어내라며 노동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1·2심은 노동자들의 손배 책임을 인정했고, 지연이자까지 포함하면 노동자들이 물어내야 할 돈은 3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국가가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손배 소송으로 이중의 고통을 가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노동계는 노동자의 쟁의행위에 ‘손배폭탄’으로 대응하는 건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 침해라며 노동조합법 2·3조 개정(노란봉투법) 운동을 벌였다.

대법원이 지난해 11월 이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대법원은 노동자들이 경찰의 위법한 무력 진압을 방어하면서 경찰 장비에 일부 손상을 입혔다면 ‘정당방위’에 해당해 손배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쌍용차 노동자들을 ‘가해자’가 아니라 국가폭력의 ‘피해자’로 매김한 셈이다. 다만 대법원은 경찰 부상, 차량과 무전기 손상에 대한 손배 책임은 노동자들에게 부과할 수 있다고 했다.

경향신문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 앞에서 국가가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파기환송심 판결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후 이뤄진 파기환송심 재판에서 재판부는 조정을 권고했다. 조합원 개인의 손배 책임은 면제하고 노동조합이 3억원을 국가에 배상한다는 게 조정안이었다. 그러나 국가 측이 받아들이지 않아 조정은 결렬됐다. 결국 이날 재판부가 1억6600여만원 배상 판결을 했지만 국가 측이 재상고하면 대법원 판단을 또다시 받아야 한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지부장은 이날 판결 선고 직후 기자회견에서 “100% 만족하지 않지만 14년간 국가폭력에 의해 고통받은 시간을 끝내자는 절박함으로 당사자들끼리 논의해 조정안을 받았다”며 “그러나 경찰은 조정안을 헌신짝처럼 내던졌다”고 했다. 김 지부장은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국가가 끝까지 (노동자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것에 분노한다”며 “이 문제를 물러서지 않고 대응하겠다”고 했다.

소송 당사자 중 한명인 채희국씨는 “올 여름 한 계절만 더워도 숨이 막히고 힘이 드는데 국가 손배 대상자들은 14년간 56번의 계절이 변하는 동안 가슴이 막힌 채로 살고 있다”며 “이제 그 철창의 감옥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 노동자들을 대리한 서범진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조합원 개인의 손배 책임은 면제해주는 방향으로 조정안이 논의됐지만 국가 측이 거부했다”며 “판결에서는 조합원 개인의 손배 책임도 포함된 것으로 보여 여전히 노동자에게 가혹한 판결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시민단체 ‘손잡고’는 논평을 내고 “사법부 판결만으로는 노동권을 넘어 개인의 권리를 보장받기 어려운 현실을 다시금 목도했다”며 “노란봉투법 입법을 통해 헌법에 보장된 권리 행사를 이유로 국가폭력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법제도 개선의 첫 걸음을 뗄 것”이라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 무슨 옷 입고 일할까? 숨어 있는 ‘작업복을 찾아라
▶ 뉴스 남들보다 깊게 보려면? 점선면을 구독하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