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 대비 회의 2~4배 적게 열고, 법안 가결 12~72배 많아
법 만들면서, 법 지키지 않는 의원들…권력구조·국회법 개정 목소리
우리나라 국회는 미국·영국·프랑스 의회에 비해 회의는 적게 열고, 법안 가결은 압도적으로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본관 전경. /더팩트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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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회가 생산적이지 않고, 정쟁에만 골몰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의 핵심적인 역할인 '입법'과 관련해 정량적 활동은 해외 주요국과 비교해도 높은 편이다. 하지만 우리 국회가 생산적이라고 여기는 국민은 거의 없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실시한 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최근 10년 연속 꼴찌를 기록(2022년 기준 24.1%, 40% 이하는 국회가 유일)한 곳이 바로 국회다. 국회 신뢰도가 낮은 것은 시대의 변화에 뒤처진 입법 활동, 잊을만하면 터지는 국회의원들의 각종 비리와 비위 행위, 민생은 뒷전이고 정쟁에 주력하는 모습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다른 주요국 의회와 비교하면 우리 국회의 수준은 어디쯤일까. <더팩트>가 우리 국회와 미국·영국·프랑스 의회의 생산성을 비교·분석했다. 나아가 제대로 일하는 국회가 되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국회=허주열 기자] 우리나라 국회와 미국·영국·프랑스 의회의 두드러진 차이점은 회의는 적게 열고, 법안 심의·가결은 많이 한다는 것이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우리 국회는 본회의, 상임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원회를 통틀어 최근 5년간 연평균 567회 회의를 개최했다. 반면 미국은 2524회, 영국은 1579회, 프랑스는 1335회 등 우리 의회보다 연평균 2.4~4.5배 회의를 많이 열었다(미국·프랑스는 최근 4년간 연평균).
법률안 심의·가결 건수는 정반대다. 우리 국회에선 최근 연평균 6411건의 법률안이 발의됐고, 그중 2103건(32.8%)가 가결됐다. 미국은 연평균 7305건의 법률안이 발의됐고, 가결된 것은 173건(2.4%)에 불과했다. 영국은 연평균 230건의 법률안이 발의돼 56건(24.3%)이 가결됐고, 프랑스는 연평균 605건의 법률안이 발의돼 29건(4.8%)이 가결됐다. 가결된 법안 수는 주요 3국에 비해 우리 국회가 12.1~72.5배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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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정치적 내전 지속…질적으로 빈곤한 법안 처리"
우리 국회는 다른 주요국에 비해 회의 개최 일수는 압도적으로 적고, 법률안 발의와 가결은 압도적으로 많은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매우 효율적으로 회의를 진행했거나, 아니면 날림으로 회의를 진행한 것 둘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다만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54건의 위헌 결정을 하는 등 지난 10년간 헌재가 위헌 결정을 한 법안이 연평균 28건에 이르고, 20대 국회 당시 법안 평균 심의 시간이 1건당 '9.7분'이라는 계산이 있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국회에서 불충분한 법안 심사를 한 것이라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이와 관련 오기형 의원은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시민사회단체가 의원을 평가할 때 입법 활동을 질적으로 평가하는 지표가 개발이 안 된 상태에서 법안 발의 건수와 가결 수로 단순 평가를 하고, 주요 정당에서 그 영향을 받아서 의원 평가에 그 지표를 반영해 일단 법안을 많이 발의하고 보자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여야가 1년 내내 싸우는 상황에서 법률안에 대한 여야 협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서로가 원하는 것을 주고받은 뒤 회기 만료 전 몰아치기 입법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왜곡된 국회 운영 시스템 속에서 법안 처리 수는 많지만, 질적으로는 매우 빈곤한 법안 처리가 이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세금도둑잡아라 대표는 "해외 주요국은 법안을 새로 만들거나 개정할 때 의원이 직접 독해를 여러 차례 하면서 정말 필요한 법인지 꼼꼼하게 따지는데, 우리는 국회의원이 심사를 다 하는 게 아니라 각 상임위원회에 속한 전문위원이 심사 보고를 하고 그것을 토대로 논의하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 국회의원들은 건수 채우기식으로 유사·중복 법안 발의를 많이 하고, 법 통과도 졸속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우리 국회는 스스로 작성한 연간 국회 운영 기본일정도 지키지 않았다. '연간 국회 운영 기본일정'에 의하면 21대 국회에서 2020년 8월부터 2021년 6월까지 국회 본회의를 156회 개최하는 것으로 계획했는데, 계획된 날짜에 실제 본회의가 개최된 경우는 45회(28.8%)에 불과했다.
또한 법안심사소위원회 운영 계획도 지키지 못했다. 21대 국회는 여야 합의로 '일하는 국회법'을 통과시키고, 법률안 심사를 충분히 하기 위해 매월 3회 이상의 법안소위를 개최하기로 했다. 하지만 2018년부터 2023년 5월까지 각 상임위의 법안소위 개최 일수는 일하는 국회법이 시행된 2021년 3월 이전의 경우 월평균 1회, 그 이후의 경우 월평균 1.1회로 큰 변동이 없었다.
이외에도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법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헌법이 정하고 있는 정부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12월 2일)은 지키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총선 1년 전까지 선거제도를 확정해야 한다는 공직선거법(24·25조)은 1994년 국회 내에 선거구획정위를 설치하기로 한 이후부터 한 번도 기한을 지킨 적이 없다.
법을 만드는 우리 국회의원들이 법을 지키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다. 지난달 18일 국회 본회의 전경. /남용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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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교섭단체 구성 요건 완화 및 국회 감시 기구 설립 제안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근본적인 국회 혁신을 위해선 권력구조를 바꿔야 한다. 지금처럼 제왕적 대통령제를 유지하면, 만약 4년 뒤 정권이 바뀐다고 가정해도 여야가 포지션만 바꿔서 지금과 같은 정치적 내전 상태를 이어갈 것"이라며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는 게 헌법을 개정해야 하는 사안이라 어렵다면, 국회법이라도 개정해 교섭단체 구성 인원을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행 국회법 제33조에는 교섭단체에 대해 "국회에 20명 이상의 소속 의원을 가진 정당은 하나의 교섭단체가 된다. 다만 다른 교섭단체에 속하지 아니하는 20명 이상의 의원으로 따로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국회 운영에 대한 모든 사항은 국회의장이 교섭단체 대표(원내대표)와 협의해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비교섭단체 정당에 속한 의원들의 국회 내 역할은 현실적으로 매우 제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10인 이하 등으로 낮춰, 국회 내에 교섭단체가 4개 이상이 되면 지금과 같은 파행적인 국회 운영이 개선될 것이라는 게 박 평론가의 주장이다.
선례도 있다. 제헌국회부터 제5대 국회까지는 교섭단체 구성 요건이 의원 20인이었으나, 제6~8대 국회에선 교섭단체 구성 요건이 10인이었다. 이후 제9대 국회부터 다시 20인 이상으로 변경돼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다만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현재 기준보다 완화해 교섭단체를 늘리기 위해선 현재 기득권을 가진 국민의힘과 민주당 지도부가 자신들이 가진 권한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이들이 가진 권한을 스스로 내려놓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박 정치평론가는 "현재의 기득권 양당 체제에선 국회가 엉망으로 운영될수록 기득권을 가진 정당에 유리하다"며 "총선에서 1번이나 2번에 투표하는 게 실질적으로 유의미한 투표가 되는 현 기득권 양당 체제에서 이들이 자신이 가진 기득권을 내려놓을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하승수 대표는 국회를 감시하는 별도 기구 설립을 제안했다. 그는 "전반적인 국회의 행태를 감시하고, 견제할 곳이 없다"며 "지금은 국회의원들이 범죄에 해당하는 일을 저질러 수사를 받는 경우를 제외하면 사실상 외부 감사·감시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 가칭 '국회감사위원회'와 같은 국회를 감시·감사할 독립기구가 있어야 우리 국회가 좀 더 생산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오 의원은 "일차적으로는 의원 평가에 관심을 갖는 시민단체와 언론이 의원 평가를 할 때, 그리고 정당 공천 과정에서 양적인 지표가 아니라 주요 법안에 대해 논의한 것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며 "앞으로 입법 활동에 대한 평가는 정성적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한 그는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법안에 대해선 국회가 입법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을 충분히 들으면서 숙의하는 과정을 쌓아가야 한다"며 "이를테면 상임위원회 산하에 '입법청문회'를 위한 기구를 시범적으로 만들어 관련한 이해관계자와 단체를 모두 불러서 입법청문회를 하고, 이후 청문보고서를 채택하고, 그것을 토대로 여야가 진전된 법안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국회 혁신을 위한 국회 구성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②>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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