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철새에서 텃새로…"어족고갈·나무고사 유발"
비살생적 방법 평가하기도 전에 '유해' 낙인…"제도 손봐야"
농작물·전력시설 피해 주는 큰부리까마귀도 추가 지정
날개 말리는 민물가마우지 |
(서울=연합뉴스) 홍준석 기자 = 유해조수 목록에 민물가마우지가 추가된다. 내수면 양식업과 어업에 피해를 준다는 이유에서다.
환경부는 올해 하반기 중으로 민물가마우지를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하기 위해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법) 시행규칙을 개정한다고 31일 밝혔다.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되면 기초 지방자치단체장 허가로 포획할 수 있다.
현재까지는 민물가마우지 개체수 조절에 빈 둥지를 재사용하지 못하게 헐거나 공포탄을 발사해 쫓아내는 등 '비살생적 방법'만 활용했는데 앞으로 알을 제거하거나 사살하는 등 '살생적 방법'도 쓸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유해야생동물이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죽여도 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야생동물은 기본적으로 보호 대상이다.
개체수 늘어난 경포호 민물가마우지 |
◇ 기후변화로 텃새화…"어족자원 고갈·나무 고사"
민물가마우지는 연해주와 사할린 등지에서 번식하고 한국과 일본으로 내려오는 겨울철새였다.
1999년만 해도 한국에서 겨울을 보낸 민물가마우지는 269마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천적이 사라지고 기후변화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사계절 내내 볼 수 있게 됐다.
2003년 경기 김포시에서 100쌍이 번식하는 것을 확인한 데 이어 경기 양평군·수원시, 강원 춘천시 등에서도 집단번식지를 발견했다.
번식지 둥지수는 2018년 3천783개에서 올해 5천785개로 늘었고 개체수는 같은 기간(1월 기준) 1만9천752마리에서 2만7천743마리로 늘었다.
수심 2∼5m에서 21∼51초간 머무르며 사냥하는 잠수성 조류다.
몸길이는 77∼100㎝, 몸무게는 2.6∼3.7㎏이다.
다 큰 새는 하루에 700∼750g, 어린 새는 500∼700g을 먹는다. 강준치, 꺽지, 끄리, 잉어, 살치, 메기, 미꾸리, 붕어, 피라미, 누치, 배스, 블루길 등이 주식이다.
내수면 어민 입장에서는 민물가마우지 먹성에 어족자원이 고갈된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똥도 문제다. 민물가마우지 배설물에 뒤덮인 나무가 하얗게 말라 죽는 '백화현상'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강원도와 충남 아산시, 충북 단양군, 전북 김제시, 경기 양평군 등 지자체는 민물가마우지를 포획해 개체수를 조절할 수 있도록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해달라고 환경부에 요구해왔다.
다만 민물가마우지가 내수면 어민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줬는지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는 없다.
환경부는 "충북 청주시와 강원 평창군 등 28개 지자체에서 양식장, 낚시터, 내수면 어로에 대한 58개 수역의 피해를 보고했다"라고만 설명했다.
초록빛 생명이 움트는 원주 매지리 거북섬 |
◇ 식물성 기름·그물총 우선 활용할 듯…"생태계 회복 목표"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됐다고 해서 무조건 포획하거나 사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기초 지자체장에게 허가받아야 한다.
이때 기초 지자체장은 유해야생동물로 인한 피해 상황과 유해야생동물 개체군 크기 등을 조사해 과도한 포획으로 인한 생태계 교란을 예방해야 한다고 야생생물법은 규정한다.
또 환경부 '유해야생동물 포획업무 처리 지침'에는 "피해가 경미한 경우 총기를 이용한 포획 허가보다는 피해자가 방책 또는 기타 방법에 의한 자력 피해방지책을 강구토록 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유해야생동물이 됐다고 해서 막 사살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사유재산을 방어해야 하는 경우에만 포획이 가능하다"라면서 "유해야생동물 지정의 궁극적 목표는 생태계 건강성 회복"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민물가마우지의 경우 미국처럼 알에 식물성 기름을 발라 부화를 막거나, 그물총으로 포획하는 방법이 우선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멧돼지 사살 (PG) |
◇ 비살생적 방법 평가 아직…민물가마우지 생태계 영향도 물음표
민물가마우지 개체수를 조절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부화율을 낮추거나 사망률을 높이거나.
환경부는 전자를 선택해왔다.
환경부는 작년 7월 지자체에 보낸 민물가마우지 개체수 조절 지침을 통해 "민물가마우지로 인한 경제적 피해 자료가 충분하지 않고 다른 개체수 조절법을 적용해보지 않은 상태"라고 밝혔다.
이어 "비살생적 방법을 적용한 뒤 효과를 관찰하고 그 과정에서 양식장·낚시터 등의 피해를 검토한 뒤 포획 등 적극적 방법을 적용할지 판단하겠다"라며 단계적 관리 방안을 시행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아직 비살생적 방법으로 민물가마우지 개체수를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지는 검증되지 않았다.
민물가마우지 번식기는 4∼7월이다.
작년부터 민물가마우지 개체수 조절을 시작했다지만 이미 번식을 마친 뒤였으므로 올해는 효과를 볼 수가 없었다. 영국에서는 비살생적 방법을 통한 재갈매기 개체수 조절 효과를 확인하는 데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비살생적 방법을 민원이 들어오는 지역을 중심으로 시행했다는 점도 문제다. 민물가마우지가 한번 번식한 곳을 계속 찾는 '서식지 충실도'를 보이는 새이긴 하지만 다른 지역으로 날아가 둥지를 트는 선택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역갈등으로 번질 수도 있다.
하천 생태계 건강성을 해친 주범이 민물가마우지인지, 민물가마우지 개체수를 줄인다고 해서 민물고기 개체수가 회복될지 알 수 없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국립생물자원관은 2021년 환경부 의뢰로 실시한 '민물가마우지의 생태적 영향 파악 및 관리대책 수립 연구'에서 "담수생태계 건강성 악화는 외래종 침입, 기후변화, 무분별한 개발, 남획 등이 복합적으로 초래한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적정하다"라고 밝혔다.
이어 "민물가마우지와 같은 특정 종의 갑작스러운 증가로 인한 영향으로 (어류 종의 다양성과 풍부도가 감소했다고) 판단하는 것은 생태계 시스템 구조상 쉽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민물가마우지가 호수, 연못, 저수지처럼 탁 트인 공간에 주로 산다는 점을 고려할 때 사살을 허용하면 안전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멧돼지 추적하는 사냥개 |
◇ 유해야생동물 해제 사례 '0'…"제도 자체를 손봐야"
일각에서는 이번 기회에 유해야생동물 지정제도 자체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급격하게 불어나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야생동물 개체수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유해야생동물 명단에 오르는 순간 '보호하지 않아도 되는 동물'이라는 낙인을 찍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유해야생동물 지정이 해제된 사례는 없다. 야생동물 및 그 알·새끼·집에 피해를 주는 고양이, 즉 들고양이가 유해야생동물에서 '야생화된 동물'로 바뀐 적만 있다.
민물가마우지 유해야생동물 지정을 위한 전문가 간담회에 참석했던 한 조류학자는 "한번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되면 계속 유지된다"라며 "그것보다는 피해가 있을 때 일시적으로 (개체수 조절을) 할 수 있는 체계로 바뀌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유해야생동물 지정에 걸리는 시간을 아껴 피해에 신속하게 대응하면서도 비살생적 방법을 우선 적용함으로써 불필요한 살생을 줄이는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환경부는 이번에 야생생물법 시행규칙을 개정하면서 '장기간에 걸쳐 무리를 지어 농작물 또는 과수에 피해를 주는' 또는 '전주 등 전력시설에 피해를 주는' 큰부리까마귀도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할 계획이다.
큰부리까마귀 |
honk021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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