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제보] '두 얼굴의 조합장'을 제보합니다 (글 : 정진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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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역 농협에서 10년째 근무 중인 가장입니다. 저희 농협의 조합장님은 지역 내에서 뛰어난 인품으로 명망 높은 분이에요. 왜냐하면 조합원뿐만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언제 어디서든 발 벗고 나서며 도움을 드리기 때문입니다. 봉사활동도 정말 열심히 하시고요. 그 덕분일까요? 35살에 시작해 벌써 37년째 조합장에 연임하면서 저희 지역 안에서는 'OO 대통령'으로 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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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망 있는 조합장님 곁에서 저는 10년 동안 각종 개인적인 심부름과 운전기사 일을 도맡아 해 왔습니다. 제 업무가 조합장님의 개인 비서냐고요? 아니요. 저는 근로계약서상 농협에서 영농자재 배달을 담당하는 계약직 직원입니다.
어느 날은 평소처럼 퇴근하던 길에 조합장님한테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워낙에 업무 시간에 개의치 않고 연락을 하는 분이라 그날도 별다른 의문 없이 전화를 받았는데요. 저는 30분 동안 욕설과 폭언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업무와 전혀 관계없는 조합장님의 개인적인 심부름 문제 때문에요.
"너 대기발령하고 싶냐? 개 XX야. 너 내가 지시했어, 안 했어."
본래 제 업무인 자재 배달 업무를 하느라 조합장님의 물건을 옮겨 놓으라는 개인적인 심부름을 잊은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겠죠. 하지만 30분 동안 '대기발령이 뭔지 아냐, 대기발령하고 싶냐'는 폭언과 입에 담기도 어려운 욕설을 들어야 할 만큼 잘못한 걸까요? 조합장님은 평소 저를 비롯한 다른 계약직 직원들에게 본인의 개인적인 심부름을 하루에도 몇 번씩 시킵니다.
택배 배송을 대신하는 것은 기본이고, 김장용 배추 집에 갖다 놓기, 세탁물 집까지 찾아다 주기, 약 대신 타오기, 조합장 차량 정비 맡기기, 심지어는 조합장님 처가댁에 물건을 가져다주는 것까지 저희에게 시키곤 하셨죠. 게다가 업무 시간과 관계없이 퇴근 시간 이후에 개인적인 심부름을 지시할 때도 많았고, 아침 일찍부터 전화가 오기도 했습니다. 출근하기 전에 본인의 심부름을 하고 출근하라는 겁니다. 물론 이에 대한 추가 수당은 없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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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복 8시간 운전기사 노릇했는데…주유비까지 사비로
조합장님은 바쁜 일정 때문에 한 달에도 몇 번씩 서울이나 다른 지역으로 장거리 출장을 갈 때가 많았는데요. 그럴 때마다 저의 개인 차량을 이용했습니다. 본래 제 업무를 미루고 조합장님의 개인 운전기사 노릇을 해야 했는데요. 출장비는 당연히 없었고 주유비조차 주지 않더라고요. 조합장님은 농협 안에서 운영하는 주유소가 있으니 거기에 가서 '공짜로 기름을 넣어라'라고 하셨지만 막상 해당 주유소에 가면 무료 주유는 불가했습니다.
32명 중 14명이 계약직인 농협…계약직에 한정된 갑질과 막말
조합장님이 사적 심부름을 지시하는 대상은 거부할 힘이 없는 계약직 직원들이었습니다. 게다가 계약직 직원들에게는 회사 내의 직급이나 이름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남자 직원들한테 '야, 머스마야', 여자 직원들에게는 '김 양, 최 양'. 손주까지 있는 50대 직원한테도 '안 군'이라고 불렀어요."
우리 농협의 '비선 실세'... 그 정체는?
계약직 직원들에게 갑질을 한 건 조합장님만이 아니었습니다. 또 다른 갑질대왕의 정체. 저희들 사이에서 일명 '비선 실세'로 불렸던 조합장님의 아내인데요. 농협에서 직위를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단지 조합장의 아내란 이유로 저희에게 개인적인 심부름을 시키곤 했습니다.
저한테 전화해서 '집에 빗물받이가 깨졌으니 철물점 가서 빗물받이 좀 가져오세요.', '소금 좀 가져오세요.' 하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저희는 마찬가지로 군말 없이 갖다 드려야 했는데, 심부름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소금을 배달한다 치면 집안까지 들어가 소금통에 직접 부어주어야지 저희의 심부름이 끝나는 겁니다. 단순 배달이 아니라 집안일을 대신하는 거죠.
조합장 아내의 갑질에 퇴사까지 한 직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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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이 자기는 힘들어 못 하니 밭에 비료를 골고루 뿌려 달라는 말을 하였고, 저는 정말 어이가 없고 당혹감이 들었습니다. 화도 많이 났지만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인사상 불이익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조합장 아내 갑질로 퇴사 한 직원의 자필 진술서)]
한 계약직 직원은 퇴근하기 직전 조합장님 소유의 농가에 '퇴비 20포대를 배달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퇴비 배달 정도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배달을 가니 사모님은 배달한 비료를 밭에 골고루 뿌리고 가라 했다고 합니다. 저희에게는 거절할 힘이 없기 때문에 해당 직원은 비료 뿌리는 일까지 해야 했습니다. 결국 이 일을 계기로 크게 좌절감을 느낀 직원은 퇴사를 했습니다.
저희가 단체로 반발하게 된 계기가 된 사건이 얼마 전 벌어졌습니다. 하나로 마트에선 매일 아침 유통기한이 지나거나 상태가 좋지 않은 채소들을 분류해서 버리기 위해 한곳에 모아둡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모님이 버리기 위해 모아둔 채소를 가져가려고 했습니다. 입사한 지 3일 된 직원이 그 모습을 보고 제지를 했습니다. 상한 채소를 가져갔다가 배탈이 나거나, 문제가 생길 경우 사고가 나기 때문에 신입 직원의 대응은 적절했었습니다. 그런데, 사모님은 예외였습니다. 신입 직원은 입사 3일 차기 때문에 사모님을 못 알아봤겠죠. 사모님은 이에 분노해 신입 직원에게 막말을 쏟아 냈습니다.
"너 내가 누군 줄 알아? 내가 너 다 잘라줄까?"
"너나 X먹어."
결국 사모님을 알아본 다른 직원들이 개입하면서 채소를 가져갔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날 오후에 일어났습니다. 조합장님 귀에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가면서 핀잔을 들으셨나 봅니다. 사모님은 다시 하나로 마트로 찾아왔는데요. 가져갔던 채소와 사은품으로 받은 키친타월까지 직원에게 던지며 '너나 X먹어, 네가 일렀냐'며 막말을 퍼부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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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장 부부가 관여하는 지역 행사 강제 동원에 기부 강요까지?
지역 봉사왕인 조합장님은 연말에 연탄 기부 행사에 참여하시는데요. 저희 농협과는 크게 관계없는 행사이지만 연탄 배송도 저희 직원들이 하는 데다가 연탄 기부까지 강요합니다. 물론 좋은 취지의 행사이지만 저희도 각자의 사정이 있는데 그 부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으시더라고요.
뿐만 아닙니다. 사모님은 지역 축제 위원장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요. 저희에게 사전 동의 없이 근무표까지 만들어 와서 주말 동안 축제에 가서 일을 돕도록 합니다. 물론 주말 수당 또한 챙겨주지 않고요.
오랜 시간 이어져 온 갑질과 폭언, 참고 견뎌야 했던 이유
"무언의 압박인 거죠. 너희 목숨줄은 나한테 달려있다. 내가 너 계약 해지하면 그만이야."
왜 거부하지 않고 그들의 사적 심부름을 수행하고 온갖 폭언을 듣고만 있었냐고요? 저희 지역에서 37년 간 조합장으로 있으면서 쌓아온 인맥으로 생긴 그 권력은 감히 시장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권력입니다. 입지가 너무 크기 때문에 어느 누구라도 반항하거나 대들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합니다.
게다가 농협 내 직원들의 인사권 또한 모두 조합장님에게 있습니다. 조합장님의 갑질은 저희 같은 힘없는 계약직 직원들에게는 협박 수단인 거죠. '내 말을 듣지 않는 직원은 계약 해지하면 된다'라는 무언의 압박인 거예요. 그래서 저희는 부당함을 알면서도 함구하며 갑질을 견딜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희에게 이곳은 먹고사는 문제가 걸린 목숨줄과 같은 직장이니까요.
"조합장이 이 정도의 지시도 못 해?"…사과 없는 조합장
저희가 바라는 건 단 한 가지. 조합장님의 진심 어린 사과입니다. 그리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면 됩니다. 벌써 수개월째 노조를 만들어 농성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합장님은 단 한 번도 대화의 손길을 내밀고 있지 않으시네요. 본인이 뭘 잘못했냐고 '그게 왜 갑질이냐', '내가 조합장이 너네한테 이 정도도 못해? 이 정도도 못 시켜?' 이런 말을 한 적은 있습니다.
시대가 변했습니다. 조합장님이 처음 취임한 37년 전과는 분명 다른 세상입니다. 세상이 바뀌는 만큼 조합장님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절대 포기하지 않고 이 힘겨운 싸움을 이어 나갈 생각입니다.
오늘(28일)의 복면제보는 농협 조합장 부부에게 각종 갑질을 당한 계약직 직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강성신 변호사, 이지웅 좋은농협만들기 국민운동본부 사무국장과 함께 조합장 부부 갑질의 법적인 문제는 물론 갑질을 가능하게 한 농협의 구조적 문제까지 살펴봤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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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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