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이 집회·시위 제재 강화 방침…시민단체, 과도한 통제
'국민 여론' 앞세워 기본권 막는다는 비판…'시민 불편' 이용
"언제 어디서 집회를 할지는 집회 자유의 본질적이고 필수적"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2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집회·시위 제도개선 국민참여토론 결과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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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이 집회·시위에 대한 제재 강화 방침을 밝힌 가운데 시민사회에서는 '국민 여론'을 명분으로 앞세워 집회 시위의 기본권을 막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26일 대통령실은 △출퇴근 시간 대중교통 이용 방해와 주요 도로 점거 △확성기 등으로 인한 소음 △심야·새벽 집회 △주거지역·학교 인근 집회 등에 따른 피해 등을 방지할 수 있도록 법령 개정 등 후속조치 방안을 마련하라고 국무조정실과 경찰청에 권고했다.
대통령실은 그 근거로 지난 3주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을 투표에 부쳤다고 주장했다. 찬반토론 결과 총 투표 수 18만 2704표 중 71%(12만 9416표)가 '집회·시위 요건 및 제재 강화'에 찬성한 반면, 12%(1만 5천표)만이 '집회·결사의 자유가 침해될 우려가 있어 현행 유지 또는 집회·시위 요건 완화가 필요하다'고 봤다.
대통령실의 발표에 시민들은 집회 시위에 따른 불편은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대통령실이 내세운 찬반투표 신뢰성에 물음표를 던지기도 했다.
지난 5월 31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서울 태평로 일대에서 열린 경고파업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경찰 병력이 이동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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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민 성모(43)씨는 "너무 시민 불편만 강조하다 보면 약자들이 목소리를 낼 기회가 없다고 여긴다"며 "시민의 편리만 생각하면 오히려 다른 중요한 부분에서 우리의 권리를 놓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의 찬반투표 결과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기관에서 적극적으로 표본 조사를 한 것이 아니라 관심 있는 사람들만 가서 투표한 것이지 않느냐"며 "국민 전체 의견을 반영하기는 좀 무리가 있는 수치지 않을까"라고 의문스러워했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만난 최모(23)씨 역시 "통제가 시작되면 통제가 이어질 것"이라며 "헌법에도 맞지 않은 것 같고 대통령실이 (제재 강화) 찬성 71%를 근거로 집회 시위를 제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다만 대학생 한모(23)씨는 "출퇴근 시간을 방해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집회 시위가) 표현의 자유이기도 하지만 그 자유를 표현하면서 다른 사람한테 피해는 주면 안 된다. 정부의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했다. 또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지만 가끔 규제를 따르지 않는 분들도 있어 서로 협의하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옳지 않냐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에초 집회 시위를 하려면 반드시 일부 도로 통행에 불편을 끼치거나 소음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데, 이를 근거로 대통령실이 과도한 통제에 나섰다고 비판했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이지은 선임간사는 "집회는 많은 사람이 세를 과시해서 의견을 표출하고 원하는 바를 얻어내기 위한 방법"이라며 "집회 시위의 자유를 행사하는 과정에서 도로 불편이나 교통이 막힌다거나 소음이 발생하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는 (집회·시위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이런 불편들은 '민주적 비용'이라고 판시했다"며 "그런데도 집회의 자유를 굉장히 불온하고 불편하다고 몰아가는 대통령실의 찬반 여론 투표는 방법적인 면에서도 문제가 있고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굉장히 반민주적"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5월 16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열사정신 계승 전국건설노조 총파업대회'에 참가한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황진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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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이 집회 시위 제재 근거로 대통령실 누리집에서 진행한 국민참여토론 투표 결과를 내세운 데 대한 비판도 나왔다. 헌법에도 보장된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를 고작 3주 간의 온라인 투표에 기대 결정하는 것이 정당하냐는 지적이다.
민변 권영국 집회시위 인권침해 감시변호단장은 국민참여투표를 두고 "온라인에 접근성이 있는 사람들 위주로 자기의 감정을 드러낸 것인데 마치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것처럼 사실상 여론을 조작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정부가 집회 제한 문제를 정서적 측면으로 접근해 시민들의 불편을 이용하고 있다"며 "불편을 이유로 기본권을 차단할 수 있다면 소수자의 권리는 모두 차단할 수 있다는 논리가 된다"고 주장했다.
인권네트워크 바람 명숙 상임활동가는 "헌법에 이미 집회 시위는 허가의 대상이 아니라고 돼 있는데, 대통령실이 (집회·시위를 막는) 주체가 된 것도, 헌법에 있는 기본권을 찬반 투표 대상에 부친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번 논란에 대통령이 과도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5월 23일 대통령의 야간 집회 발언 이후에 다음날부터 펜스가 쳐지고 경찰력이 동원돼 해산이 이뤄졌다"며 "실제 야간 노숙 집회에 폭력이 있었는지 등 실태조사나 검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대통령의 발언이 일종의 지침이 되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논란이 되는 지점이 출퇴근 시간 대중교통 이용이 가능하도록 도로 점거에 따른 피해를 방지하겠다는 부분이다.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를 이끌어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류영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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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길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벌이고 있는 전국장애인차별연대(전장연) 김필순 기획실장은 "출퇴근 시위를 진행하는 전장연을 표적으로 삼아 대통령실이 발표했다고 느낀다"며 "총선을 앞두고 자유로운 시민들의 발언을 막는 행위"라고 토로했다.
대통령실의 이번 지침에 앞서 이미 최근 들어 경찰이 출퇴근 시간대 교통 문제를 근거로 집회 금지·제한 통고를 남발했지만, 번번이 법원에 막히고 있다.
민주노총은 7월 총파업대회와 관련해 36건의 집회·행진 신고를 했지만, 경찰로부터 28건에 대해 전체 또는 부분 금지·제한 통고를 받았다.
이에 민주노총은 4, 7, 11, 14일 퇴근 시간대 촛불문화제에 금지 통고에 대해 법원에 가처분 신청 냈다. 당시 법원은 "집회가 퇴근 시간대에 이뤄진다고 해서 집회 인근 장소에 막대한 교통소통의 장애를 초래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경찰의 통고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이번 대통령실의 발표는 집회의 시간과 장소, 방식을 문제 삼으며 연일 집회금지 통고를 하고 강제해산해왔던 경찰의 대응과 맞닿아 있다"며 "언제 어디서 어떻게 집회를 할지 선택할 자유는 집회의 자유를 구성하는 본질적이고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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