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인구 많은 예천서 산사태…서울보다 넓은데 공무원 숫자는 '4%' 불과
도로·철도 등 지방 인프라 '비대화'…재난 대비할 행정인력은 '태부족'
"방재인력 확충하고, 중앙정부-지자체 유기적 협업해 재난 막아야"
앞으로 기후위기가 심화하면 올여름 같은 '극한 호우'는 더욱 잦아질 것이라는 예측마저 나온다.
문제는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인해 '소멸 위기'에 내몰린 지방의 경우 재난을 예방하고 대응할 인력과 역량이 갈수록 약화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도로, 철도, 교량 등 지방 인프라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몸집을 키웠는데, 이를 관리하고 운영할 주체는 왜소해졌다고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방재인력 확충,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유기적인 협력 강화, 민간 역량 동원 등 이를 해결할 총체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산사태 휩쓸고 간 마을 |
◇ 줄어드는 인구·커지는 인프라…"갈수록 위기"
도로, 철도, 교량, 터널 등 지방의 인프라는 날이 갈수록 그 몸집을 키우고 있다. 과거에 비해 '천지개벽'이라고 할만한 수준이다.
올해 하반기부터 수서발 고속열차(SRT)가 경전·전라·동해선에서 운행된다.
가덕도 신공항과 대구·경북 신공항 등의 거점 공항, 울릉·백령도 도서 공항 등 공항 건설 계획도 속속 나온다.
주요 지역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부터 각 지역을 모세혈관처럼 잇는 지방도로까지 자동차 도로 또한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예천 산사태 복구 작업 현장 |
하지만 지방 인프라의 급격한 성장과 정반대로 지방의 인구는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해 '소멸 위기'를 맞고 있다.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경북뿐 아니라 다른 지방도 마찬가지이다.
인구 감소는 지방의 행정력과 예산 등을 확충하는 것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 재난을 예비하고 대비해야 할 방재 인력의 부족 현상은 더욱 심각하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10여년 전인 2012년 방재 직렬을 만들어 놓고 단 한 명도 뽑지 않고 있다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필요성이 대두해 지자체에서 채용을 시작했다"며 "하지만 인원이 얼마 되지 않고 직급도 낮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나무 뽑히고, 땅 꺼진 산사태 현장 |
◇ '극한 호우' 닥쳤지만…지방의 대처 역량은 태부족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한 경북 예천에서는 지난 13일부터 이틀간 지역별로 많게는 200㎜가 넘는 '물폭탄'이 쏟아졌다.
'극한 호우'라고 할 정도로 많은 비가 한꺼번에 내려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토사와 바위, 나무 등이 마을을 순식간에 덮친 것이다.
결과는 참담했다.
이번 비로 인한 경북지역 사망자는 18일 오후 22명까지 늘었다. 이 가운데 예천군 사망자는 12명에 달한다.
그렇다면 이 같은 재난 상황에서 예천군이나 경북도 등 지자체가 좀 더 적극적인 행정을 펼 수는 없었을까.
지난해 말 기준 예천군 공무원 수는 768명이다. 같은 시기 서울시의 공무원은 1만9천163명이다. 예천군의 공무원 수가 서울의 4% 수준에 불과하다.
공무원 수는 적은데, 담당해야 할 지역은 광활하다. 예천군 면적은 661.5㎢로, 서울시 면적(605.2㎢)보다 넓다.
막막한 복구 |
예천군은 집중호우 당시 여러 차례에 걸쳐 '전 지역 산사태 경보, 유사시 안전한 곳으로 대피' 등의 내용이 담긴 재난안전 문자를 주민들에게 발송하고, 마을 이장을 통해 대피 방송을 했다.
하지만 산사태 우려 지역을 대상으로 예방 활동을 하거나 비 피해가 발생했을 당시 가가호호 방문해 대피를 돕기는 어려웠다.
예천군 내에만 산사태 우려 지역이 66곳에 달하는데, 전문 인력은커녕 일반 공무원의 수조차 턱없이 적은 탓이다.
유사시 지자체를 도와 도로 통제 등의 역할을 할 경찰관도 부족했다.
지난해 11월 기준 예천경찰서는 직원 수가 150명가량인 3급서이다. 배정된 순찰차는 13대에 불과하다.
결국 이러한 지방 행정력의 부족, 재난을 예방하고 대처해야 할 인력의 미비 등이 예천 산사태 등 이번 참사를 불러일으킨 배경의 하나가 됐다고 할 수 있다.
대피소에서 청해보는 잠 |
◇ "중앙정부 적극적으로 나서고, 민간과의 협업 체계 구축해야"
전문가들은 이제 '한껏 비대해진 지방 인프라'와 '갈수록 심각해지는 지방의 인구 감소'라는 엇나간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현실을 인정하고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힘을 모아 이번 참사와 같은 사태의 재발을 위한 청사진을 마련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얘기다.
우선 기후변화로 인해 올해와 같은 '극한 호우' 등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므로 방재 인력의 적극적인 확충이 요구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하성 교수는 "이번 참사와 같은 대형 재난에 대한 지자체 및 공공기관의 대처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방재 전문 인력을 적극적으로 채용, 위험 지역이나 시설물 관리에 투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청주 오송지하차도 덮치는 흙탕물 |
인구 감소 등으로 지방의 행정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수십년간 각종 재난·재해가 반복되고 있지만, 아직도 국가가 제대로 된 방재 시스템을 마련하지 못한 채 사후 대처에만 급급하다"며 중앙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방재 시스템의 정비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족한 행정력을 민간과의 협업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전 교수는 "자율방범대, 의용소방대, 산불 지킴이 등 민간 조직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공무원 집단을 뒷받침하고, 때로는 견제하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그는 "이러한 방식으로 2중, 3중의 예방 체계를 구축해야 공적 조직의 대처가 미흡한 상황에서도 대형 재해의 발생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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