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동안 심신 지쳤고 가족들한테 미안해"
수낵 내각에 정치적 타격으로 작용할 수도
15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월리스 장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다가오는 개각 때 국방장관직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BBC는 수낵 총리가 여름이 지나고 오는 9월쯤 개각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했다.
사임 의사를 밝힌 벤 월리스 영국 국방장관. 사진은 지난 6월 싱가포르에서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를 하는 모습. 싱가포르=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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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취임한 월리스 장관은 4년간 국방부를 이끌어왔다. 그 사이 보리스 존슨, 리즈 트러스 그리고 지금의 수낵까지 3명의 총리가 배출되었으나 국방부는 월리스 장관 혼자서 책임졌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니아를 침공한 뒤로는 국제사회의 우크라이나 군사지원 노력을 주도해왔다. 영국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총리 자리에 도전해보라”는 주변의 권유도 물리치고 국방장관직을 계속 지킨 것은 우크라이나 지원에 차질을 빚지 않기 위해서였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현 나토 사무총장의 임기 만료가 다가오면서 월리스 장관은 차기 나토 수장에 도전할 뜻을 공공연히 밝혔다. 이 또한 나토 차원에서 동맹국들을 독려해 우크라이나에 더 많은 군사원조를 제공하도록 하고, 또 전후 우크라이나의 나토 회원국 가입에 힘을 보태려는 목적이 컸다.
하지만 나토 사무총장의 유력 후보군에 포함되고 수낵 총리까지 나서 열심히 밀었음에도 월리스 장관은 나토 수장이 되지 못했다. 영국 언론들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반대가 결정적이라고 분석한다. 브렉시트, 즉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에 비판적인 마크롱 대통령이 “차기 나토 사무총장은 EU 회원국 출신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는 것이다.
영국의 핵심 동맹국인 미국의 태도도 미지근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측근들에게 ‘새 나토 사무총장으로 각료급보다는 대통령이나 총리를 지낸 거물급 인사가 더 적절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등에게 나토 사무총장직 도전을 권유하기도 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만난 벤 월리스 영국 국방장관(왼쪽)과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이 서로의 몸에 손을 얹고 밝은 표정으로 대화하고 있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 오른쪽은 리시 수낵 영국 총리. 빌뉴스=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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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사무총장 선출을 놓고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나토는 최근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의 임기를 연장하기로 했다. 원래 9월 물러날 예정이었던 그는 2024년 9월까지 1년간 더 나토를 이끌게 됐다.
월리스 장관은 사의 표명의 배경으로 나토 사무총장이 되지 못한 것을 꼽진 않았다. 대신 ‘4년간 국방장관으로 재임하며 심신이 너무 지쳤고, 가족들에게도 많은 폐를 끼쳤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면서 “다음 총선에도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직 53세에 불과한 그가 사실상 정계은퇴 가능성을 내비친 셈이다.
이번 결정으로 가장 타격을 입을 쪽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간 영국에 각별한 고마움을 표시하며 영국을 “진정한 친구”라고 불러왔다. 국방장관 교체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영국의 관심과 지원이 줄어드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수낵 총리의 정치적 입지도 위축될 전망이다. 보수당 의원 및 당원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월리스 장관의 퇴진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를 나토 사무총장으로 만들지 못한 수낵 총리의 외교력 부재도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를 전망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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