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기버스 제조업체 '하이거(HIGER)'의 전기버스가 지난 7일 서울 시내 한 버스 공영차고지에서 충전을 하고 있다. 하이거는 국내 전기버스 시장에서 현대차 다음으로 점유율이 높은 2위 업체다. 한주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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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 부품뿐 아니라 전기버스, 드론, 로봇 등 다양한 미래형 제품군에서 '메이드 인 차이나(중국산)'의 한국 시장 잠식이 두드러지고 있다.
국내 산업 생태계를 보호할 안전 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에서 중국에 주도권을 완전히 내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9일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기버스 시장에서 중국산 점유율은 44%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24%에 그쳤던 점유율은 2020년 33%, 2021년 38% 등으로 매년 빠르게 늘었다. 업계에서는 전기버스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만큼 이 같은 추세가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전기버스 보급량은 정부의 '친환경' 정책 영향으로 매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환경부가 집계한 연도별 보급량을 보면 2017년 99대, 2018년 121대, 2019년 551대, 2020년 1016대, 2021년 1290대, 2022년 2074대를 기록했다. 중국산 전기버스 비중이 급증하고 있는 주된 이유는 가격 경쟁력이지만 최근엔 배터리 용량에서 오히려 중국산이 앞선다는 얘기가 나온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앞세워 시장을 뚫었던 중국산이 이제는 '기술력'까지 갖춘 상태에서 국내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셈이다. 올 상반기 업체별 점유율을 보면 현대차 일렉시티가 1위지만 2~5위는 하이거(HIGER), CHTC, 비야디, 중국중차 등 중국산 일색이다. 국내 전기버스 업체 가운데 에디슨모터스는 회생절차를 밟는 중이다. KG모빌리티가 인수할 예정이며, 이를 계기로 재기를 노리고 있다. 우진산전과 범한자동차 등은 시장 점유율이 중국 업체에 뒤진다. 일단 환경부는 올 초 보조금 개편을 통해 정비·부품관리(AS) 센터 운영 여부나 배터리 에너지 밀도에 따라 보조금을 차등 지원하기로 했지만 중국산 공습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업계에서는 국내 전기버스 산업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체계적인 정책 지원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버스는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준공영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중국산 전기버스의 한국 생산을 유도하는 정책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용원 한국자동차안전학회 부회장은 "값싼 중국산 전기버스가 준공영제로 운영되는 시장을 빠르게 점유해 가고 있다"며 "일각에선 중국산 구매로 세금을 덜 쓰니 좋은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지만, 국내 전기버스 산업 생태계가 붕괴되면 중국산 전기버스 가격이 크게 오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근 수년간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드론 시장도 중국산에 주도권을 내줬다. 한국교통연구원 등에 따르면 국내 드론 시장 규모는 2016년 706억원에서 2020년 4945억원으로 5년 새 7배가량 성장했다. 2030년에는 2조2000억원까지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럼에도 국내 드론 시장을 선도할 국내 기업은 없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드론 업체는 평균 매출액이 약 20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업체당 평균 인력은 11명 안팎에 그치고, 매출 비중 역시 공공기관 의존도가 평균 66.5%에 달했다. 이런 가운데 업계에선 중국산 드론의 시장 점유율이 70% 수준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산 드론은 가격 경쟁력은 물론이고 기술력에서도 국산을 앞선다는 평가다. 올해 초 정부가 발표한 '제2차 드론 산업 발전 기본계획 공청회'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드론 기술력은 중국 등 선도국의 60%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서빙로봇 시장도 중국산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로봇업계에서는 현재 국내 서빙로봇 중 70% 이상이 중국 업체인 '푸두로보틱스'와 '키논로보틱스' 등 제품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중국 서빙로봇 업체들은 일찌감치 한국 시장에 진출한 뒤 국산 제품보다 20% 이상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시장을 선점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스마트상점 기술보급 사업'을 통해 서빙로봇 구매자에게 공급가액 70%를 보조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제조국과 무관하게 지급하는 것이어서 중국산 서빙로봇을 구매해도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구매자로선 값싼 중국산 제품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자국 산업에 대한 보호장치가 시급하다는 얘기가 업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중국산 서빙로봇이 한국 시장을 빠르게 장악할 수 있었던 데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영향이 컸다. 중국은 2015년 '중국 제조 2025 계획'을 발표한 뒤 로봇 제조업체와 구매자에게 대규모 보조금을 지원해왔다.
[송광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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