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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 (화)

‘쭈글쭈글’ 사과 냉해 피해 막는 삼총사[1.5도 너머 기후위기적응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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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기후 정보가 위기를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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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2일 경북 안동시 길안면 권해경씨의 과수원 곳곳에는 냉해를 입어 미처 자라지 못한 채 ‘쭈글쭈글’한 사과가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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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군 안계면 일대 최병흠씨의 과수원에 지난달 15일 미세살수장치가 나무 위로 솟아 있다.


지하수로 추울 땐 따뜻하게, 더울 땐 시원하게…미세살수장치
‘농업 전용’ 맞춤형 앱…날씨 알리미
과수원 정보 모아 더 정확하게…데이터 수집기

지난 6월15일 찾아간 경북 의성군 안계면 일대 사과 과수원. 사과나무 위로 안테나처럼 1m쯤 솟은 가는 관이 보였다. 의성에서 20년째 사과농사를 짓고 있는 최병흠씨(59)가 1년 전쯤 설치한 미세살수 장치다. 작동시키면 지하수가 분사돼 나무를 덮는다. 갑자기 닥친 추위로 온도가 영하 2도 아래로 떨어지면 상대적으로 따뜻한 지하수를 뿌려 냉해를 줄이고, 너무 더울 때도 역시 비교적 시원한 지하수로 피해를 막는 것이다.

베테랑 농사꾼 최씨도 이 장치를 언제 켜야 할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내 농장’의 기온을 아주 정확히 예측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꽃이 피는 시기에는 1~2도만 낮아도 꽃의 암술이 저온 피해를 받고, 열매가 맺지 않을 수 있다.

기상청이 제공하는 동네예보의 구역 단위는 농장보다 큰 가로, 세로 5㎞짜리 격자다. 산지가 많은 한국에서는 농장별로도 날씨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농업은 날씨에 민감해 기후위기의 피해를 가장 먼저 입는다. 그래서 기후위기 적응도 가장 먼저 해야 한다.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농업과학원이 재단법인 국가농림기상센터와 만든 ‘농업기상재해 조기경보서비스’는 농가 맞춤형 기상 관련 정보를 제공한다. 각 지역 농업기술센터는 농가에 이 서비스를 알려주고 사용법도 교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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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일찍 핀 의성·안동 사과
“조금만 추워도 냉해 입어”
두루뭉술 날씨 예보 아닌
내 농장 기온 알아야 대비
농업 재해 알림 서비스 등
지자체·주민 참여 정책 효과

■꽃 일찍 피면, 사과 일찍 팔 수 있나

경북 안동시 길안면에서 사과 과수원을 하는 권해경씨(58)는 지난 6월12일 사과나무 사이를 누비며 덜 익은 사과를 땄다. 수확까지 약 4개월 반을 남기고 2차 적과(과실나무 열매가 적당하게 크게 하기 위해 일정량을 남기고 따는 것)로 바빴다.

권씨의 과수원 곳곳에는 냉해를 입어 자라지 못한 채 쭈글쭈글해진 사과들이 있었다.

권씨는 “5월 초까지도 기온이 많이 떨어졌다”며 “이로 인한 냉해 때문에 사과가 버티지 못하고 떨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의성에서 농사를 짓는 권오진씨(43)도 “올해는 3월 말에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 암술이 피해를 받았다”고 말했다. 사과는 영하 3도 정도 저온을 한 시간쯤 버틸 수 있지만 그 이상 길어지면 암술이 갈변돼 버리고, 열매를 맺지 못한다.

안동·의성의 사과 농민들은 올해 평년보다 일주일 정도 꽃이 일찍 피었다고 입을 모았다.

사과는 중생종의 경우 꽃이 만발한 뒤 180일 정도 지나면 열매가 익는다. 시장에 아직 사과가 많지 않을 때 내놓을 수 있다면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일찍 핀 꽃’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꽃이 일찍 피었다는 것은 나무가 겨울잠에서 일찍 깨어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식물은 내재 휴면 중일 때는 추위에 잘 견디지만, 휴면을 풀고 꽃눈이 자라기 시작하면 조금만 추워도 큰 피해를 본다.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근거한 과수 개화기 변화 및 개화 후 저온 발생 전망’ 연구를 보면 배, 복숭아, 사과 등은 2071년 이후에는 현재보다 20일 정도 빨리 꽃이 필 것으로 분석됐다.

이 연구를 진행한 김대준 국가농림기상센터 산학연협력부장은 “기후변화는 단순히 따뜻해지는 데 그치지 않고, 갑자기 추워지는 변동 폭도 커지게 한다”며 “개화기 꽃의 저온해가 클 수 있다”고 말했다.

냉해뿐만 아니라 비와 바람도 수익과 직결된다. 꽃이 필 때 비가 자주 오면 꿀벌이 날지 못해, 수정률이 떨어진다. 인근에 벌이 적어지자, 권씨는 양봉 농가에서 벌 한 통을 빌려오는 데 18만원을 썼다. 농약 방제를 ‘언제’ 할지도 문제다. 6월에는 탄저병 균 등에 감염되는 일이 잦다. 방제한 직후 비가 오면 약제가 씻겨 내려간다. 농가들은 약제를 뿌린 지 하루 이내에 20㎜ 정도 비가 오면 방제 효과는 50% 정도라고 본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도 약제 효과가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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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흠씨가 경북 의성군 안계면 과수원에서 ‘의성군 농업기상재해 조기경보서비스’를 통해 날씨를 확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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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군 안계면에 있는 최병흠씨 과수원에 설치된 기상측정장비. 최씨 농장의 데이터는 의성군 전체의 농업기상재해 조기 경보서비스 예측값을 보정하는 데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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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과수원’ 날씨 알면, 비용 절감

날씨가 한 해 농사를 말 그대로 좌우하다 보니 최병흠씨의 휴대전화에는 날씨 관련 애플리케이션만 5개 이상 깔려 있다. 이 중 ‘의성군 농업 기상재해 조기 경보서비스’를 가장 자주 이용한다. 농진청 산하 국립농업과학원이 개발해 전국 61곳 기초지자체에 서비스하고 있는 ‘농업 전용’ 날씨 알리미다.

농업 기상재해 조기 경보서비스는 기상청 동네예보 등에 농장 고도, 지형 특성, 도심과의 거리 등을 반영해 가로, 세로 30m 단위로 날씨를 예보한다. 산악지형이 많은 한국에서 ‘내 농장’의 날씨를 알기에 최적이다.

예보 대상은 최고기온(당일 포함 3일간 오후 3시 기온 예보), 최저기온(3일간 오전 6시 기온), 강수량, 일사량, 평균 풍속, 최고 풍속, 일조 시간, 습도, 증발산량이다. 의성군에서는 사과, 벼, 마늘이 싹을 틔워서 꽃을 피우고, 과실이 커지는 시기도 알려준다. 동해, 저온해, 고온해, 홍수해, 냉해 등이 있을 수 있는 시기도 향후 9일까지 예보한다.

의성군은 서비스 구축 과정에서 과수 화상병 예측을 위해 설치된 관측망의 데이터를 추가했다. 여기에 심식나방, 굴나방, 순나방 등 병해충 경보도 내린다.

이동근 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하향식 국가 주도 기후위기 적응 대책보다는 지자체, 주민이 직접 참여해서 정책을 만들어가는 ‘리빙랩’ 형태의 기후변화 적응 대책이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이라고 말했다.

오랜 경험이 있는 농민들에게 새로운 시스템을 알리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의성군 농업기술센터는 기존 농민들과의 접점을 기반으로 서비스를 알리고 있다. 김인규 의성군 농업기술센터 과수기술팀장은 “센터에서 교육을 할 때 시간을 할애해서 앱이 있다고 홍보하고, 사용법도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가에서도 점점 ‘믿음직스럽다’는 반응이 많아졌다. 권오진씨는 “내 과수원은 산이 바로 옆에 있어서 일반 보도, 날씨 앱에서 나오는 정보가 맞지 않을 때도 많은데, 과수원을 중심으로 날씨 정보를 보내줘서 이 시스템이 가장 믿음직스럽다”며 “기존 의앱은 주위 전체의 날씨가 나와서 참고만 한다”고 말했다.

날씨를 미리 알면, 대비할 시간도 늘어난다. 저온해·고온해가 예상될 때는 미리 밭에 물을 뿌려놓는다거나, 미세살수 장치를 켜두면 피해를 막을 수 있다. 병해충 예보가 나면 농약을 준비하고 방제 시점을 정확히 잡아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다만, 장치가 없는 농가에서는 대응력이 떨어질 수 있다.

심교문 농업과학원 기후변화평가과 실장은 “기후변화가 심화하면서 사전 예방을 해보자는 취지에서 만든 시스템이지만, 작목·농사 수준에 따라 대응력이 달라서 미세살수 장치 등 시설이 없는 농가는 방법이 없다”며 “손쉽게 현장에 맞게 적용할 수 있는 대책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사과의 ‘재배 적지’ 자체가 변할 수 있다. 최병흠씨는 재해보험도 들지 않았을 정도로 과수원 자리가 좋지만, 앞으로는 걱정스럽다.

최씨는 “기후변화가 예전보다 심하고, 수시로 급작스럽게 오는 폭우 같은 건 당해내지 못하겠다”며 “적응해 나가면서 하니까 차이가 크지만 그래도 익숙해지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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