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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특검처럼 몰아붙인 엘리엇, 박근혜 발언 두둔해야했던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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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한국 검찰이 기소"…정부, 朴 발언 인용해 방어

국정농단 재판 방불케 한 중재소송…"대법 판결 영향줬을 것"

연합뉴스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
[연합뉴스TV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보배 조다운 기자 =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둘러싸고 5년간 이어진 우리 정부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 간 국제중재 재판은 과거 국정농단 사건에서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벌인 법정 공방을 방불케 했다.

공교롭게 엘리엇 측은 특검이 혐의를 입증하듯 국정농단 사건과 합병 과정에서 정부의 위법한 개입을 부각했고, 반대로 정부는 박 전 대통령의 해명 발언까지 인용하며 이를 부인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21일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홈페이지를 보면 엘리엇이 중재를 신청한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양측은 서면을 주고받으며 두 회사 합병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의 부당한 개입 여부를 두고 치열하게 다퉜다.

엘리엇이 들고나온 주요 근거는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수수 혐의 등을 적용한 특검팀과 국정농단 수사 결과였다.

엘리엇 측은 "한국은 자신의 형사사법제도를 통해 합병에 위법한 개입이 있었음을 스스로 명확히 주장했고, 판결로써 확인했다"며 "신임 (문재인) 대통령도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청와대 지시로 합병 찬성 결정에 직권을 남용하는 등 위법을 저질렀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한 바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부정부패의 사슬은 단순한 의혹에 그치지 않고, 한국 검찰이 법원에서 서류 증거와 증언을 제출한 충격적인 사건에서 드러났다"며 "한국은 이런 증거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 검찰은 형사사건에서 '합리적 의심이 없는' 정도의 입증 기준이 충족됐을 때만 기소한다"며 "그 결과 2011∼2020년 무죄 선고율이 전체 사건의 1%도 되지 않을 정도"라고 강조했다.

엘리엇 측은 한국 정부의 관료들에 대해 "이재용 일가의 부패한 영향력 아래에 놓였다"라고 몰아붙이면서 "정상적인 국민연금의 내부 절차를 침해하고 이로써 이재용 일가에 유리한 결과를 가져오는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고 사건을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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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ㆍ이재용(CG)
[연합뉴스TV 제공]


한국 정부는 국정농단 재판에서 박 전 대통령 측이 주장한 논리로 맞섰다.

이 회장에게 뇌물을 수수한 것은 사실이나 이는 합병이 승인된 이후의 일이고, 국민연금은 합병 투표를 자체로 판단했다는 반론을 폈다.

정부는 "대통령이 국가 경제의 중심이 되는 기업 그룹의 승계 계획을 '모니터링'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며 "엘리엇이 박 전 대통령의 부정행위를 선정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증거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청와대가 합병에 대한 보고서를 수동적으로 받아보았다는 사실뿐"이라며 "박 전 대통령 또는 청와대가 뇌물 때문에 합병에 관한 지시를 내렸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증거는 없다"고 주장했다.

2017년 1월1일 박 전 대통령이 간담회에서 "엘리엇하고 삼성 합병 문제는 많은 국민의 관심사였잖아요. 이 회사를 도와주라 그렇게 지시한 적은 없어요"라고 말한 사실도 제시했다.

정부는 엘리엇이 이 발언을 빼고 중재판정부에 제출했다며 "해당 발언이 박 전 대통령의 진심이었는지 여부에 관계 없이 자신의 입장을 지지하는 일부만을 인용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공소장은 법정에서 검사가 입증하고자 하는 혐의를 기록한 것에 불과하다"며 엘리엇 측이 제시한 검찰 공소사실은 중재 판정의 근거로 쓰일 수 없다는 주장도 폈다.

이어 검찰 재량을 견제하기 위해 도입된 수사심의위원회가 2020년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과 관련해 이 회장에 대해 불기소를 권고한 사실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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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표 홍완선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왼쪽)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 [연합뉴스TV 제공]


정부의 이런 방어에도 중재판정부는 정부가 엘리엇에 5천358만6천931달러(약 690억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는 판정을 내렸다.

여기에는 소송 과정 중 이 회장의 86억원 뇌물 혐의, 문 전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의 직권남용 혐의 등이 2021년과 지난해 잇따라 대법원에서 유죄로 확정된 것이 영향을 줬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문 전 장관과 홍 전 본부장의 혐의가 대법원에서 유죄로 확정됐다는 사실은 뼈아픈 증거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떠한 이유에서도 국가는 사기업 인수합병에 개입하면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는 판정문"이라고 평가했다.

bob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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