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6 (화)

이슈 유럽연합과 나토

EU 주도권 놓고…‘불·독’ 서로 으르렁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프랑스 마크롱 “유럽 방공시스템, 미국 의존 줄여야”

독일 숄츠 “나토와 협력해 미사일 등 방어력 키워야”

에너지·재정준칙 놓고도 충돌…“커플이 각방 쓴다”

경향신문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 독일 숄츠 총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을 이끄는 쌍두마차 프랑스와 독일이 서로 다른 방향을 보며 달리고 있다. 안보부터 에너지, 국방, 공공재정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 걸친 파리와 베를린 사이 불협화음은 이제 더 이상 숨길 방법이 없어 보인다.

A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파리에서 열린 유럽 항공 및 미사일 방어 콘퍼런스 연설에서 유럽은 미국 의존을 줄이고 방공 시스템의 독립성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콘퍼런스에는 영국, 스웨덴,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등 20개국 대표단이 참석했다. EU 국가들은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무인기(드론)와 미사일 공격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다. 마크롱 대통령은 “생산능력에 기반해 접근하면 우리는 당장 진열대에 있는 것을 사게 된다. 이는 유럽산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비유럽국에서 온 것은 생산, 우선순위, 어떤 때는 제3국의 승인에까지 매여 있어 관리하기가 어렵다”면서 “우리는 외부 세계에 의존해 장래 문제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독일 주도 ‘유럽영공방어계획’(ESSI)에 반대해온 프랑스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해 10월 미국 패트리엇 시스템 및 이스라엘의 애로 3 시스템 등에 대한 공동구매와 각국 방공 시스템 통합 등을 골자로 하는 ESSI를 발표했다. 현재까지 영국 등 유럽 17개국이 ESSI에 참여하고 있다. 프랑스는 자국과 이탈리아가 공동 개발한 SAMP-T 방공 시스템 등 유럽 내 대안이 있는데도 독일이 이를 선택지에서 배제한 데 대해 분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숄츠 총리는 이날 독일 베를린에서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과 만난 뒤 기자회견에서 “ESSI를 통해 유럽 국가들은 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 드론에 대한 방어력을 함께 키울 수 있도록 힘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숄츠 총리는 프랑스가 ESSI에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고 AP통신은 전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프랑스와 독일은 상대방에 대한 공개적 비판을 피하고 있지만 이면에서의 차이는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프랑스와 독일은 이날 전력시장 개편안을 논의하기 위해 룩셈부르크에서 열린 EU 에너지장관 이사회에서도 이견을 노출했다. EU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전기 가격이 급등해 혼란이 발생하자 지난 3월 전력시장 개혁안 초안을 발표했다. 초안에는 풍력·태양광·지열·수력·원자력 등 재생연료 및 비화석연료로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사업자가 정부와 고정된 가격으로 전력공급 계약을 맺고 시장 가격 급등으로 손실이 발생하면 공적자금으로 보전해준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프랑스는 신규 원전 이외에 기존 원전도 공적자금 보전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이나 독일은 풍력 등 다른 재생에너지에 투입해야 할 자금이 부족해지고 프랑스의 산업 경쟁력만 키워주는 불공정한 효과가 발생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FT는 “몇 시간 동안이나 협상을 했는데도 프랑스와 독일이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날 제기된 석탄발전소에 대한 보조금 연장 안건과 관련해서도 두 나라의 입장이 엇갈렸다. 프랑스는 폴란드, 스페인 등과 함께 보조금 연장에 찬성했으나 독일은 EU 탄소중립 달성 목표와 상충한다며 벨기에,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등과 함께 반대했다.

프랑스와 독일은 지난 4월 발표된 EU 재정준칙 개편안 초안을 놓고도 충돌 중이다. 크리스티안 린트너 독일 재무장관은 지난 16일 EU 재무장관 이사회에서 모든 회원국에 대해 단일화된 부채 감축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브뤼노 뤼메르 프랑스 재정경제부 장관은 “(독일의 주장은) 경제적·정치적 실수”라며 각 회원국이 부채 감축 목표를 집행위원회와 개별적으로 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이터통신은 양측 모두 재정준칙 관련 다른 회원국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어 올해 말에나 합의가 가능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마크롱 대통령과 숄츠 총리의 불화는 지난해부터 지속돼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불거진 에너지난, 인플레이션 대응 방안 등으로 이견을 드러내다 지난해 10월에는 정상회담까지 한 차례 연기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폴리티코는 “EU의 리더십을 이끄는 커플이 서로 각방을 쓰고 있다”면서 “독일·프랑스 엔진이 고장 나면 EU는 앞으로 나갈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 삼성 27.7% LG 24.9%… 당신의 회사 성별 격차는?
▶ 뉴스 남들보다 깊게 보려면? 점선면을 구독하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